외교의 기본 vs 하나님의 기준 - 1
나라를 이끌어가는데 있어서 외교는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특히 주변에 강대국들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거나, 전쟁의 위협이 있다면, 외교 전략은 그 나라의 존속이 달린 매우 중요한 나침반의 역할을 하게 된다. 강대국이 쳐들어오는데, 나라의 국방력도 약하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막아내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자주국방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를 위해 더욱 더 강대국인 나라를 내편으로 끌어들여 함께 싸우게 하고, 쳐들어온 국가가 기를 펴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게 만들거나, 위축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이것은 외교의 기본이다.
남유다의 3대왕 아사가 통치한지 36년에 북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남유다를 공격해왔다. 그리고 라마에 성읍을 지어 사람들이 남유다로 가지 못하게 막았다. 이에 아사왕은 다메섹에 사는 아람왕 벤하닷에게 도움을 청한다.
아사 왕 제삼십육년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아사가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의 은금을 내어다가
다메섹에 사는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내며 이르되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 사이에와 같이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하자
내가 당신에게 은금을 보내노니
와서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역대하 16 : 1~3]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는 외교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외교는 자선을 베푸는 영역이 절대 아니다. 이에 아사왕은 남유다를 위해 북이스라엘 군대를 내좇는 대가로 아람왕 벤하닷에게 은과 금을 보내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은과 금의 출처를 살펴보자. 이 은과 금은 왕궁의 곳간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여호와의 전의 곳간에서도 나왔다. 이는 마치, 대한민국이 주한미군의 주둔비를 지불하는데, 나라에서 운영하는 예산만으로 이 비용이 충당된 것이 아니라, 교회들도 이 비용을 십시일반 충당한 꼴인 것이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성경에 그 배경은 나오지 않지만, 크게 2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다.
첫째, 아사왕이 종교의 영역까지 모두 통제를 하고,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강제로 여호와의 전의 은과 금을 걷어간 경우다. 더 나아가, 말씀에 여호와의 전 곳간이 왕궁 곳간보다 먼저 언급되는 것을 보면, 아사왕은 국가의 예산에서 이를 충당하고, 부족한 부분을 여호와의 전의 곳간에서 충당한 것이 아닌, 여호와의 전의 곳간에서 먼저 충당한 것 처럼보여진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사왕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국가의 이익을 위해 취한것이다. '나라가 있어아 교회가 있을 수 있다!' 라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한 국가의 왕의 소견대로 나라를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국가' 라는 우상이 하나님보다 위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둘째, 제사장들이 나라를 지키고자 나라를 위해 기부한 경우다. 물론, 이런경우는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드려진 것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한 것인지는 점검해봐야 한다. 즉,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기부하는 것인가? 아니면, 나라를 지키고자하는 인본적인 선한 행위를 하고자하는 자기 자신의 소견대로 행하는 것인가?
위의 2가지 상황가운데 어떤것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사왕을 꾸짖으시는 것을 고려하면 어떤 경우든,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방법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쨌든, 아사왕의 이 요청에 아람왕 벤하닷은 남유다를 구하기위해 북이스라엘을 공격했다.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마임과 납달리의
모든 국고성들을 쳤더니
바아사가 듣고 라마 건축하는 일을 포기하고
그 공사를 그친지라
아사 왕이 온 유다 무리를 거느리고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운반하여다가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
[역대하 16 : 4~6]
이에 북이스라엘왕 바아사는 라마에 성읍을 건축하는 일을 포기하고 그쳤다. 더 나아가 아사왕은 바아사가 라마를 지으려고했던 재목들을 가지고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면, 아사왕의 외교전략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라마에 성읍을 짓는 것을 취소하게 하여 남북간의 소통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 게바와 미스바를 세웠다. 북이스라엘이 남유다를 치지도 못하고 오히려 돌아가게 만들기도 했으니, 전쟁의 위협도 잠재우고 새로운 도시도 건설하고 이보다 더 완벽한 외교전략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외교전략을 어떻게 판단하셨을까?
그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역대하 16 : 7~8]
하나님께서 선견자 하나니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아사왕에게 선포하셨다.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즉, 아사왕의 인본적으로 성공적인 외교전략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셨다. 더 아나가 아사왕이 의지했던 아람왕의 군대가 아사왕을 떠나갔다는 것을 하나니를 통해 아사왕에게 선포하셨다. 그러면서 아사왕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승리했던 전쟁을 상기시키셨다. 그렇다면 한 나라를 살리기 위해 강대국을 끌어들이는 기본적인 외교전략이 하나님 앞어서 잘못된 것이라는 것일까?
하나님께서는 이 외교전략 자체를 지적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사왕이 아람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모습을 원하셨을까?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역대하 16 : 9]
하나님께서는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 를 찾으시고 기다리고 계셨으며, 이런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풀어주신다. 이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