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투박한 로맨티스트의 프로포즈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BGM. 하기오스 - 하나님의 사랑의 고백)

Gospel Barista 2021. 4. 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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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하나님의 사랑의 고백(하기오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께서 독처하는 아담을 보시고, 사람이 혼자 사는것이 좋지 아니하니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을 지으시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나서 바로 하와를 만드시지 않고 특이한 행동을 취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창세기 2:19]


아담에게 동물들 이름을 짓게 하신 것이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굉장히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도 이름에 집착을 많이 하시는데, 그 예로 존귀한 아버지인 '아브람'을 여러 민족의 아버지인 '아브라함' 이라고 바꾸셨으고, 여왕인 '사래'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인 '사라' 로 바꾸셨다. 발 뒷꿈치를 잡은 자인 '야곱'을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인 '이스라엘' 로 바꾸시기도 하셨다.

하나님과 히브리인들이 이렇게까지 이름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름이 결국 그 대상의 '본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각종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신 이유는, 그 본질을 꿰뚫어보는 훈련을 시키신 것이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와를 바로 만들어주셔도 아담이 하와를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목적인 '돕는 베필' 이 아닌, 그 본질에서 벗어나게 바라본다면 이 둘의 관계는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이렇게 아담에게 본질을 바라보는 훈련을 시키신 후, 아담에게 드디에 돕는 베필인 하와를 주신다. 그런데 그 방법이 기이하다. 우선, 아담은 흙으로 사람을 지어서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세기 2:7]


하지만, 하와는 동일한 방법으로 만드시지 않으시고, 아담을 잠들게 하신 다음,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해서 하와를 만드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세기 2:21~22]


우선, 아담을 왜 잠들게 하셨을까? 만약 아담의 갈빗대를 취할 때 아담이 깨어있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되면 하와를 창조하는 가운데 아담의 의지가 반영이 될 수 있다. 이것을 근본적으로 막는 방법이 아담을 잠재우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창조 과정에 인간의 생각과 뜻이 개입되지 못하도록 하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아담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더 깊은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로마서 5:14]


로마서 5장 14절 말씀을 보면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 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오실 자' 는 예수그리스도 이다. 그렇다면 아담이 잠든것은 예수님께서 잠드신것과 같은데,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하시는데 언제 주무신 것일까?

성경에 보면 죽음을 맞이했을 때 '잠들었다' 고 표현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마태복음 9:24]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요한복음 11:11]


제자들은 진짜 자고있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예수님께서는 죽은 것을 잠시 잠들었다고 표현하셨다.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요한복음 11:13]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이 죽는 순간에도 성경은 잠들었다고 표현한다.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도행전 7:60]


이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의 죽음은 잠시 잠들었다가 일어나신, 사망권세 이기고 부활하신 것이며, 아담이 잠시 잠든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신랑으로써 맞이할 수 있는 신부로 불러주셨다. 아담의 신부인 하와가 아담의 옆구리를 통해 꺼낸 갈비뼈로 만들어지고 다시 아담과 하나됨과 같이, 신랑되시는 예수님께서 옆구리에 창으로 찔리심으로 물과 피를 다 쏟으셨고, 이 보혈을 통해 우리가 거룩한 혼인잔치의 주인공인 신부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세기 2:23~24]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라는 아담의 하와를 향한 투박한 고백의 본질은 바로, 신랑되시는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로맨틱한 프로포즈이다.


너는 나로 인해 거듭난 거룩한 자란다.
너는 내 안에 거하고, 나는 너의 안에 거하고 싶구나.
Will you marry me?


자! 프로포즈를 받은 자로써, 그 답변을 준비하자.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 놀라운 로맨틱한 프로포즈에 확실하게 "YES! I WILL!" 이라고 대답하자!
 

투박하지만 로맨틱한 프로포즈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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