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동행했으나 패배한 전쟁
우리는 흔히 "하나님과 함께하면 무조건 잘되고, 승률 100% 이다." 라고 생각한다. 이 명제가 '참' 으로써 성립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 편에 섰을 때의 이야기이다. 즉, 나를 위해 하나님을 내편으로 끌고왔는지, 내가 하나님 편에 선 것인지 분별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미묘한 차이를 정확하게 보여준 사건이 바로 사무엘상 4장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쟁이다.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사무엘상 4 : 1~2]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벌였는데 이스라엘이 패했다. 이 때 4,000명 가량이 전사했다. 이 전쟁은 왜 벌어진 것일까? 성경에는 단순히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라고 되어있다. 아무 이유 없이 블레셋과 싸우러 갔던 것일까?
우선, 블레셋이라는 나라를 알아보자. '블레셋' 은 '외국인, 나그네, 이주자의 땅' 이라는 뜻이며, '함' 의 자손이며 지중해의 그레데섬에서 일찍이 가나안으로 이주하여 원주민 아위족속을 멸망시키고 가나안의 원주민 역할을 했던 강력한 해양민족이다. 주요 5대 성읍으로는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이 있다. 가사와 아스돗 사람들은 '다곤신' 을 섬겼는데, 이는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물고기 모양의 우상이다. 아스글론 사람들은 '아스다롯' 을 섬겼는데 이는 풍요와 다산의 여신이다. 에그론 사람들은 파리모양의 우상인 바알세붑을 섬겼다. 즉, 강력하게 우상숭배를 하던 민족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과 블레셋간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아브라함은 창세기 21장에서 아비멜렉과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여기서 아비멜렉은 블레셋 사람이었다.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
[창세기 21 : 32]
출애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땅이 아닌 광야로 이끄셨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을 하게되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출애굽기 13 : 17]
블레셋 사람들은 이정도로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던 민족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수아를 리더삼아 가나안땅을 정복할 당시에도 이미 블레셋은 지중해 연안 주요 5개도시를 요새화 하고 도시연합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곧 애굽 앞 시홀 시내에서부터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북쪽 에그론 경계까지와
블레셋 사람의 다섯 통치자들의 땅
곧 가사 족속과 아스돗 족속과 아스글론 족속과
가드 족속과 에그론 족속과
또 남쪽 아위 족속의 땅과
[여호수아 13 : 3]
사사시대에도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과 블레셋 민족은 다툼이 끊임없었다. 사사 삼갈이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이기도 하였고, 삼손 이야기도 블레셋 사람들과의 이야기이다.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사사기 3 : 31]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이스라엘 민족에게 블레셋 민족의 존재는 눈엣가시같은 존재인 것이다. 항상 괴롭힘을 당하다가, 사사가 세워질 때 물리치곤 했던 상대였던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자마자 이들이 블레셋과 싸우러 나갔던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사무엘을 새로운 사사 정도로 인식한 것이다. 새로운 사사가 세워졌니 당연히 전쟁을 일으키면 승리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여 자신들의 한을 풀고자 전쟁을 일으킨 이스라엘 민족은 처참하게 패하고 말았다. 무려 4,000명이 전사한 것이다. 처절한 패배였다.
패배한 후 이스라엘 민족은 '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블레셋 민족에게 패배하게 하셨는지' 에 대한 고민을 한다. 하지만,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된다.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사무엘상 4 : 3~4]
사사라고 생각했던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 진영에 퍼졌다. 이것을 계기로 블레셋과 싸우면 승리할 것 이라는 승리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가득했던 전투였다. 하지만 패배하자,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여호와의 궤를 실로에서부터 자신들의 진영으로 가져와 자신들 안에 있게해서, 이 여호와의 궤로 인해 자신들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하게 하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을 승리의 부적 정도로 생각한 것 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주시는 것' 과 '내가 하나님 편에 서는 것' 을 잘 구별하고 선택해야한다. 미세한 차이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이는 천지차이이다. 천국과 지옥으로 나뉠 수 있는 차이이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정확하게 "'하나님. 내 편이 되어주세요.' 라는 기도를 조심하십시오." 라고 연설하였다.
즉, 하나님을 끌어다가 내 편을 만드는 것이 아닌, 내가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이 성도로써의 삶이라는 것이다. 착각하지 말자. 성도의 주어는 '나', 목적어는 '하나님' 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들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보면, 이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위해 하나님을 자신들의 진영으로 끌고왔다. 제사장인 홉니와 비느하스까지도 함께 끌고왔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하나님을 승리의 부적처럼 생각하였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각자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기 때문이다. 자신들 주변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대로 행하였다. 전쟁을 치르면서 승리의 확신을 얻고자 여호와의 궤를 여호화의 전에서 끄집어내어 자신들의 진영으로 가져온 것이다.
이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이 다음말씀에 잘 나타나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사무엘상 4 : 5]
땅이 울리도록 승리의 확신의 함성을 지른 것이다. 이 소리를 들은 블레셋 사람들의 반응은 "두려움" 이었다.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히브리 진영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찌 됨이냐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사무엘상 4 : 6~8]
모든 승리의 조건이 다 갖춰졌다. 하나님도 함께계시고, 적군도 두려움에 떨고있다. 이런 전쟁에서 어찌 패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결과는 끔찍했다. 여호화의 궤는 빼앗겼으며,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고, 여호와의 궤를 빼앗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엘리도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서 죽었다. 이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3만명이나 죽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소견에 옳은대로 하나님을 이용한 대가이다.
우리도 우리의 모습 속에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이용하고 있는지 점검하자. "하나님. 내편이 되어주세요!" 가 아닌, "하나님. 제가 하나님 편에 서겠습니다!" 라는 고백을 하며,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며 승전보를 울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