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남유다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BGM. 하기오스 - 주의 마음 구하며)

Gospel Barista 2021. 10.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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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 과 '죄' 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이 2가지 명제가 '참' 이라고 인정한다면, 거룩하신 하나님께 죄인의 모습 그대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회개하고 거룩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괜히 대 제사장이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철저하게 회개를 하겠는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출처 : Pexels)


죄인이 자신의 죄를 깨달으면 회개를 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신다. 그래야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죄인의 죄는 어떻게 깨닫게 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로마서 3 : 20]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를 깨달을 수 있다. 말씀되시는 예수님께서도 죄인의 죄인 됨을 선포하셨기에,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다고 하셨다.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15 : 22]


죄인의 죄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데, 죄의 길로 작정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다. 오늘 날의 수 많은 사람들을 보라. 성경말씀을 스스로 읽고 묵상하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지하철만 타도 웹툰이나 웹소설을 보는 이들은 많아도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이들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성경을 꼭 지하철에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언제 어디서 읽을 것인가?

흔한 지하철 광경 (※출처 : Pexels)


성경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들기 전에 성경책을 펴거나 성경 어플을 켠다. 피곤에 쩔어 잠들기 일보 직전의 정신상태로 성경을 읽으니 그 내용이 기억이 나기는 커녕 증발되기 일수이다. 자신이 어디까지 읽었는지 기억이나 하면 다행인 수준이다.

만약 우리의 모습이 이런 상태라면, 우리는 과연 우리의 죄를 깨달을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경우 하나님께서는 '심판' 이라는 강력한 방법을 사용하신다. 다만, 이 심판은 하나님께서 즐겨사용하시는 방법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사용하시기 싫으신 방법이지만,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죄인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용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 있는 수 많은 하나님의 심판은 뭐냐?"

라고 따지고 싶은가?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죄의 분량을 생각해보라. 이것이 수 많은 심판의 이유이다.

그리고 죄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해보자.

하나님께서 남유다 백성을 심판하시려고 작정하셨다. 이 때의 하나님의 마음을 예레미야에게 나누셨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땅에 사는 자를
이번에는 내던질 것이라
그들을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슬프다 내 상처여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라
이는 참으로 고난이라 내가 참아야 하리로다

[예레미야 10 : 18~19]


심판 받을 남유다의 이스라엘 백성을 "내 상처" 로 표현하신다. "내 뼈중의 뼈, 살 중의 살이라" 라는 아담의 하와를 향한 고백이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고백이었기에, 심판 받을 이스라엘 백성이 곧 하나님의 상처가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상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의 상처로 이어지며 예수님의 모형인 아담의 하와를 향한 고백은 예수님의 신부인 '우리' 를 향한 고백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심판의 고통을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 라고 표현하신다. 이것이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스스로 중상을 입을만한 상처를 내시면서도 사랑하는 죄인들이 죄를 깨달아야 하나님과 함께하며 서로 사랑할 수 있기에, 기꺼이 이 고통을 감수하시는 것이다.

"슬프다 내 상처여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 (※출처 : Pexels)


이 고통은 실수로 커터칼에 손가락이 베이는 정도의 아픔이 아니다. '중상' 은 말 그대로 중환자실에 입원할만한 큰 상처로 인한 고통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 고통을 감수하시는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의 죄의 대가를 하나뿐인 아들인 예수님께 치르게 하신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을 포함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중상을 입을만한 상처를 내지 않도록 해야하지 않겠는가?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다면, 하나님의 심판이 쏟아지기 전에 회개하자.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회개하며 거룩하게 하나님께 나아가자. 이것이 우리가 취해야하는 모습이다.

 

BGM. 주의 마음 구하며(하기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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