벳바게 - 예루살렘 성전 - 베다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실 때 들린 장소에 초점을 맞춰보고자 한다. 우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시기 전에 나귀를 구하러 '감람 산 벳바게'라는 동네에 들리셨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마태복음 21 : 1]
그리고 마태복음 21장 12~16절까지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고, 치료사역을 하시고, 대제사장즐과 서기관들을 꾸짖으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베다니'로 가셨다.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마태복음 21 : 17]
우선, '벳바게'와 '베다니' 2개의 마을 이름을 살펴보자. 두 이름 모두 뜻이 '무화과 동네' 이다. 하지만, 무화과의 상태가 다르다.
'벳바게'는 '무화과의 첫 열매'인 '파게'라는 단어와 '집'이라는 뜻인 '베이트'의 합성어이다.
'베다니'는 '잘익은 무화과'라는 뜻의 '테에나'와 '집'이라는 뜻인 '베이트'의 합성어이다.
그렇다면 '무화과의 첫 열매'와 '잘익은 무화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스라엘의 기후는 여름인 건기와 겨울인 우기로 나눌 수 있다. 건기는 보통 유월절부터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이 기간 동안에는 다양한 과일이 풍성히 맺힌다. 물론, 잘익은 무화과인 '테에나'도 풍성히 열린다. 반면에 우기 동안에는 열매를 맺는 나무가 없다. 기나 긴 우기 기간 6개월 동안 아무 생과일을 먹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우기를 견뎌낸 이스라엘 백성이 제일 처음 섭취할 수 있는 생과일이 바로 무화과의 첫 열매인 '파게'이다. 이 '파게'는 익지 않아서 엽록소의 맛이 그대로 느껴질 것 같은 녹색의 열매로, 당연히 당도도 '테어나'와 비교하면 현저히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긴 우기 끝에 찾아온 이 맛없는 첫 열매를 매우 사모한다. 무화과 농장 주인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아무 대가없이 공짜로 '파게'를 따먹을 수 있게 해줄 정도이다. 더 나아가 이 '파게'를 제대로 따지 않으면 맛있는 '테에나'를 얻을 수 없다.
이를 바탕으로 다시 예수님의 행적을 살펴보자. 첫 열매인 '파게'의 동네인 '벳바게'에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입성하셨다. 그리고 그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고, 치료사역을 하셨다. 그 후 무르익은 무화과 '테에나'의 동네인 '베다니'로 가신 것이다.
이는 우리의 신앙생활과 일맥상통한다.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 긴 겨울, 즉, 열매가 열리지 않는 우기를 마무리하며 맛은 없을지라도 첫 열매인 '파게'를 맺게 된다. 그 이후 몸된 성전을 거룩하게 하며,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한다. 마음같아서는 적토마와 같은 멋있는 말을 타고 광야를 누비고 싶지만, 현실은 작은 나귀타고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곤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우리의 삶 가운데 열매가 무르익어 '테에나'와 같이 달콤한 무화과가 맺혀있지 않겠는가?
이 모든 것은 맛 없는 첫 열매인 '파게'에서 시작된다. 예수님께서는 맛있게 무르익은 무화과인 '테에나'의 동네 베다니에서 '파게'를 맺지 않은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꾸짖으시고 나무를 마르게 하신다.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마태복음 21 : 19]
달콤하게 무르익은 무화과 '테에나'를 삶 가운데 맺고싶은가? 이런 '테에나'를 맺은 사람들이 부러운가? 아무리 '테에나'의 동네에 있다고 하더라도, '파게'부터 맺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파게'없이 '테에나'는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파게'없는 무화과나무를 '테에나'의 동네에서 꾸짖으시고 마르게 하신 것이다.
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과일을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포도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
[미가 7 : 1]
미가 선지자는 처음 익은 무화과인 '파게'가 없는 것을 '재앙'으로 표현한다. 우리의 삶 가운데 '파게'가 맺혀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이 '파게'가 없는 삶은, 곧, 재앙이다. 지금 우리가 하고있는 말씀묵상은 맛이 없는 첫 열매인 '파게'를 맺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기나 긴 우기인 겨울을 버텨내는 무화과나무와 같지 않을까 싶다.
예수님이 '벳바게 - 예루살렘 성전 - 베다니'와 같은 순서로 가신 것과 같이 각자의 삶 가운데 '파게'와 같은 첫 열매를 맺고 우리의 몸 된 성전을 거룩하게 하며 '테어나'와 같은 무르익은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화과나무에 비유하곤 한다. '파게'로 오신 유월절 어린양 예수님이 자신들이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었기에, 맛이 없다고 그저 나무에서 따서 버려버린 것 아닐까? 그러면서 자신들의 입에 달달한 '테에나'와 같은 열매의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파게'없이 '테에나'를 바라는 재앙과 같은 상황이지 않을까 싶다. 역으로 우리도 우리 입맛에 달달한 하나님만 바라고 있는지를 점검하자. '재앙'같은 삶은 살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