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사복음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여인을 비난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진정 바보인가?

Gospel Barista 2022. 12. 1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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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 한 여인이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다. 이를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분개하며 이 여인을 맹비난한다.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마태복음 26 : 7~9]


이 말씀은 매우 유명한 말씀으로 수많은 목사들이 이 구절로 설교를 한다. 이들 설교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진정 '바보'이자 '멍청이'로 묘사된다. 이런 바보들 가운데 예수님의 장례를 유일하게 준비한 이 여인과 같이 신앙생활을 해야한다는 맥락으로 설교를 마무리한다.

"바~보~"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자. 예수님의 제자들은 진정 바보라서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이 여인을 비난했을까? 이들은 왜 '가난한 자들' 에 초점을 맞췄을까?

이 질문에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25장의 말씀을 유심히 살펴봐야한다. 예수님께서 모든 천사와 함께 재림하실 때,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시겠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라고 하신다. 이들이 이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태복음 25 : 35~36]


제자들은 자신들이 직접 예수님께 이와같이 대접한 적이 없었기에 "언제 저희가 예수님께 이렇게 대접했죠?" 라고 물어본다. 이 때 예수님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 : 40]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도와주고 대접하는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이라고 선포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이 말씀이 마음에 새겨져 있는 상태이다.

작은 자


천국에서 누가 더 큰 자인지를 예수님께 묻던 제자들이다. 당연히 '자신들을 위해서 예비된 나라' 에 들어가기 위해 모든 삶의 초점을 맞추고 작은 자,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 수 있는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 않겠는가? 이 상태에서 베다니의 한 여인이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버린 장면을 눈 앞에서 목격한 것이다. 제자들의 눈은 뒤집히는 것은 당연하다.

즉, 제자들은 진정 바보 멍청이라서 이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다. 그저 천국에 강한 소망을 두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선포하신다.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6 : 10~13]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말씀이었을 것이다. 작은 자에게 베푸는 것이 예수님께 베푸는 것이라고 배운 제자들이다. 그러나 이 제자들은 자신들의 눈 앞에 실제로 계신 예수님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작은 자, 곧 가난한 자에게만 베풀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제자들의 눈 앞에서 한 여인은 실제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며 귀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으면서 예수님께 베풀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행동을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라고 평가하심으로 제자들의 생각을 바로잡으신 것이다.

우리도 제자들과 같은 모습이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전도' 하라고 하니 교회 같이가는 대가로 금전적인 대가를 주거나 식탐을 만족시켜주는 행위를 하는 이들이 있다. '내 증인이 되리라' 라고 하는 말씀만 머리속에 있고,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 은 없기 때문이다.

교회가는 대가?


교회학교에서 교사로써 '가르치는 것' 에만 초점을 맞추는 이들이 있다. 교회학교 교사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가르치는 행위' 가 아니라 '무엇을 가르치는가' 이다. 즉, 가르치는 내용에 '예수 그리스도' 가 없다면, 교회학교 교사가 아니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처럼 사람들을 지옥으로 끌고가는 맹인인 것이다.

선생님


교회에서 '직급' 하나 받았다고 어깨를 피고 목이 곧은 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 교회에서 직급을 받게되니, 그 직급이 감당해야하는 책임은 지지 않고, 그 직급의 권리만 누리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직급' 이라는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직급' 이라는 인식이 있다면 결코 이를 가볍게 여기지 못할 것이다. 포켓몬빵 스티커를 모으듯이 여기저기 다양한 부서에서 다양한 직급을 모으며 날로날로 목이 곧아지는 삶을 살지 않고, 그저 자신에게 맡겨진 직급을 하나라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성실하게 임하지 않겠는가?

새로운 직급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5 : 48]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온전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삶이 온전해 질 수 있을까?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 : 2]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봐야 한다. 제자들은 천국 갈 생각에 눈 앞에 계신 예수님을 놓쳤으나, 베다니의 한 여인은 그저 예수님께 자신의 시선을 고정했다. 이것이 제자들과 이 여인의 차이점이다. 우리의 시선이 예수님께 고정되어 있는지를 점검하자. 아무리 말씀대로 행한다고 해도 그 중심에, 그리고 우리의 시선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면 그저 바보취급 당하는 제자들과 다를바 없다.

그리고 혹시나 우리의 시선이 잘못된 것을 알았다면 속히 돌이키자. 이 사건을 계기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긴다. 자신의 잘못이 지적되어 기분 나쁘다고 돌이키지 않으면 가룟 유다와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예수님께 시선을 집중하고 온전한 삶을 살아내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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