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민족의 사법부 구성
이스라엘 민족이 마실 물이 없자, 모세에게 불평을 터뜨린다. 이에 호랩산에서 지팡이로 반석을 치니 물이 나왔다.
이 사건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출애굽기 17 : 7]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이 구절이 이스라엘 민족의 상태였다. 바로 이 순간에 일어난 큰 사건이 있다.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출애굽기 17 : 8]
바로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이다. 다행히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수아가 최전방에 나서고 모세가 뒤에서 아론과 훌의 도움으로 두 팔을 들어 올려서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통상적으로 전쟁이 끝나게 되면 각종 재판이 열리기 마련이다. 전쟁 기간 동안 군사적으로 군법을 제대로 지켰는지, 행정적으로 위법한 부분은 없었는지, 어수선한 틈을 이용한 약탈과 같은 범죄는 없었는지 등을 조사하고, 이와 같은 사건들에 대한 기소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가운데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의 가족들을 데리고 방문하였고, 모세 혼자서 모든 사건들을 처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잘못된 점을 지적한다.
이튿날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서 있는지라
[출애굽기 18 : 13]
모세의 장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하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
[출애굽기 18 : 17]
그러면서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에게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사법부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참고로 사법부는 입법부, 그리고 행정부와 함께 민주주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구조인 삼권분립의 일각을 담당하며 재판을 통해 주어진 사건을 법에 따라 판결하는 기관이다. 그렇다면 이드로가 제안한 사법부의 구성을 살펴보자.
이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네게 방침을 가르치리니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그 백성을 위하여
그 사건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며
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고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큰 일은 모두 네게 가져갈 것이요
작은 일은 모두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너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네게 쉬우리라
[출애굽기 18 : 19~22]
능력 있는 사람들을 선발하여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삼고, 이들이 재판을 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해결할 수 없는 큰 일을 모세가 담당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법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몇 명의 사람들이 필요할까? 우선 출애굽 한 이스라엘 민족을 약 200만 명 정도라고 가정해 보자. 이들 중 천부장은 2,000명, 백부장은 20,000명, 오십부장은 40,000명, 십부장은 200,000명 필요하다. 즉, 다 합하면 26만 2천 명이 필요하며, 이는 이스라엘 민족의 약 13% 정도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이드로는 이 13% 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아무나 고르라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잘 살펴서 '능력 있는 자'를 잘 선발하라고 했다. 이 비율을 현재의 수능 등급과 비교해 보면 1등급이 상위 4%, 2등급이 상위 4~11% 이므로, 이스라엘 민족의 사법부는 수능 기준으로 따지면 약 2등급까지의 사람들로 선발해야 한다. 그렇다면 꾀나 공부를 잘해야 '능력 있는 자'로 선발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능력 있는 자'의 기준이 언어, 수리, 사탐, 과탐, 영어의 과목들로 평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드로가 제안한 기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였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이를 위해서는 이에 걸맞은 시험을 보거나 면접을 보지 않았을까? 아니면 믿을만한 사람들에게 추천을 받았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스라엘 민족의 사법부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당시 기준으로 '능력 있는 자'가 되어야 했다. 적어도 지금 수능에서 2등급 수준의 성적을 받을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의 사법부의 인원으로 선발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기준을 오늘날의 모습에 대입시켜 보자. 악이 선이 되고 선이 악이 되는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백성을 올바로 이끌어가고 옳은 길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학생의 신분 때에 주어진 과목들을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지식을 습득해야 하며, 이와 더불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여 공부하라고 선포되어야 한다. 학생의 신분을 겪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기에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는 길임을 인식시켜줘야 한다.
하지만, 이와 반대되는 선포를 하는 이들이 있다. "교회의 부흥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학업과 학원이다"와 같은 말을 하면서 말이다. 이 말대로라면 학교와 학원의 교사들은 교회의 부흥을 앞장서서 가로막는 악한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되어버린다. 더 나아가 학생들에게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제공해 준 꼴이 되어,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단순히 교회에 왕래만 하는 이들을 양성하게 된다. 이런 선포를 하면서도 당당하게 교회를 활보하고 다니는 자들의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을 넘어서 분노가 솟구쳐 오른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 : 14~16]
크리스천은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그것도 산 위에 있는 동네를 밝힐 만큼 높은 위치에서 빛을 발해야 한다.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두어서 온 집안을 밝게 비출 만큼 높이 있어야 한다. 즉, 단순히 빛을 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높은 곳에서' 빛을 발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크리스천으로서의 빛의 사명이다.
대한민국 건국 당시의 기독교인은 2% 수준이었다고 한다. (누군가는 10%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 글의 목적은 건국 당시 기독교인의 정확한 비율을 따지고자 함이 아니다) 이렇게 적은 기독교인들이 국가를 이끌어가는 국회의원과 같은 리더의 자리에 있었기에 제헌 국회를 기도로 시작하고, 임시헌법 전문에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뜻을 같이하여 안과 밖으로 합심해서 하나님 나라 건설에 기초가 되는 나라'임을 새겨놓을 수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즉, 크리스천으로서 주어진 곳에서 리더가 되어 선한 영향력으로 빛을 발했던 역사가 대한민국 건국 초기 크리스천들의 역사인 것이다. 교회학교에서는 이런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선포되어야 한다.
정작 모세도 이드로의 제안대로 능력 있는 사람들을 선발하여 사법부 요직에 배치한다.
모세가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을 택하여
그들을 백성의 우두머리 곧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으매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되
어려운 일은 모세에게 가져오고
모든 작은 일은 스스로 재판하더라
[출애굽기 18 : 25~26]
누군가는 분명히 '재판관 되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야' 라던지 '사법부의 일원이 되면 피곤해' 등의 힘 빠지는 워딩을 나열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능력 있는 자'가 되기 위한 거룩한 갈망을 품고, 높은 곳에서 이 세상을 밝히 비추는 빛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지, 나태하고 세상에 안주해 있는 자의 것이 아니다.
사법부는 정해진 법 안에서 사건을 조사하고 판결을 해야 한다. 사법부 스스로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하게 되면 권력의 불균형이 발생하게 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교회의 역할을 점검해 보자.
물론 모든 교회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죄라고 하신 동성애를 죄가 아닌 것으로 선포하고,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을 허용하는 교회들이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을 스스로 개정하여 하나님의 법치를 훼손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모세오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자신들 스스로 개정하지 않았다. 이를 폐지하거나 이와 다른 별도의 십계명을 스스로 제정하지도 않았다. 이를 고려하면 오늘날의 이런 잘못된 교회들의 행태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다. 이 얼마나 두려운 상황인가. 이스라엘 민족 중 아간 한 사람의 불순종의 죄를 이스라엘 민족의 죄로 여기셨던 하나님께서 지금의 한국교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지 심히 걱정이 앞선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이 계신지를 시험했던 그 순간 아말렉이 이스라엘 민족을 공격해 왔다. 과연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하나님이 계신지를 시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땅 대한민국 주변에는 북한, 중국, 러시아와 같은 아말렉과 같이 한 순간에 공격해 올 수 있는 나라들이 즐비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다행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했던 여호수아와 모세, 아론과 훌 덕분에 이스라엘 민족은 승리를 거두었다. 그렇다면 이 땅 대한민국을 승리로 이끌 자들은 과연 준비되어 있을까? 어설프게 하나님의 법치를 훼손하는 것에 동참하지 말고, 그리고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에 사법부가 구성된 시점을 살펴보자. 이 시점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기 직전의 상황이다. 하나님께서는 헌법과도 같은 십계명을 주시기 직전에 사법부를 미리 구성하게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하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에도 사람을 먼저 만드신 후 "아... 순서가 헷갈렸다... 잠깐 옆에 서있어 봐... 땅이랑 바다랑 먹을 거랑 다 만들어줄게..."라고 하지 않으셨다. 모든 것을 세팅하신 이후에 사람을 만드셨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부르시고 철저하게 교육을 시키시고 권능을 주신 후에 파송하셨다.
성경에 다양한 기적들이 표현되어있다 보니 이런 '준비'에 대한 것을 간과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준비를 하신 이후에 하나님의 계획을 실행하신다는 것을 놓치지 말자. 하나님께서도 준비를 하시는데, 피조물인 우리도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예를 들어 시험을 준비한다면 철저하게 공부하면서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 이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더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공부가 다가 아니야!"를 외치면서 시험공부를 하지 않게 만들어놓고 시험을 잘 볼 수 있게 기도를 해주는 행위는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이를 이루시는 방법에 위배되는 모습인 것이다. 이런 선포와 기도를 해주는 교역자나 교회학교 교사가 있다면 정말로 무책임한 자이다. 아무리 교회에서 종교다원주의를 반대한다고 해도, 학생들에게 "공부가 다가 아니야!"와 같은 선포를 하고 있다면 다음세대를 무너뜨리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크리스천 리더인 초대 대통령이 왜 그렇게 교육에 초점을 맞췄을까를 고민해봐야 한다. 조선 땅에 목숨 걸고 들어온 선교사들이 왜 학교부터 만들었는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신학교로 시작한 대학교들이 왜 세계적인 대학교로 거듭났는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준비과정이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통해 드러나고 이루어지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우리 스스로가 준비되어 있는지를 철저하게 점검하자. 물론 준비의 과정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힘들 수도 있다. 준비하며 좌절을 할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우리의 사명임을 인지한다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해서 준비된 자로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가 되어있지 않겠는가?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능력 있는 자'를 선발한다면, 기꺼이 '준비된 자'로서 중요한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