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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사복음서

레위기의 화목제로 바라본 마태복음의 칠병이어 기적

Gospel Barista 2024. 7.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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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 외에도 칠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다. 이 칠병이어의 기적을 레위기의 제사법 중 화목제의 관점으로 묵상해보고자 한다.

칠병이어


우선, 칠병이어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마태복음 15 : 32~38]


내용은 오병이어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예수님께로 나아온 사람들을 먹이시기 위해 제자들이 갖고 있던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어 마리에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었다. 이를 통해 남자만 계수했을 때 4,000명이 먹고 일곱 광주리가 남았다.

이 이야기와 화목제를 비교해 보자. 우선,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제사법이다. 이 외에도 화목제를 드릴 수 있는 3가지 조건이 있다. 하나님께 감사함을 표할 때 감사제, 하나님 앞에서 서원을 할 때 서원제, 그리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싶을 때 자원제로써 화목제를 드릴 수 있다. 여기서는 레위기 7장에 나오는 감사제로써의 화목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축사'하신 것이 'When he had given thanks'로 표현되어, 하나님께 '감사'를 표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께 드릴 화목제물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만일 그것을 감사함으로 드리려면
기름 섞은 무교병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과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 구운 과자를
그 감사제물과 함께 드리고
또 유교병을 화목제의 감사제물과 함께
그 예물로 드리되
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그것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로 돌릴지니라
[레위기 7 : 11~14]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는 기름 섞은 무교병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과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구운 과자를 감사제물과 함께 드리고, 유교병을 감사제물과 함께 예물로 드린다.


이 내용과 칠병이어의 이야기와의 연결고리를 하나하나 짚어보자.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로마서 3 : 25]


우선, 바울은 예수님이 화목제물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예수님 자체가 화목제물이므로, 레위기의 화목제 규례에서 화목제의 감사제물은 '예수님'께서 담당해 주셨다고 할 수 있겠다.

그다음으로 기름을 섞거나 바른 무교병과 무교전병, 그리고 누룩이 없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구운 과자가 있어야 한다. 즉, 누룩이 없는 '무교병'과 '기름'이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유월절 다음날부터 7일간 무교절을 지키며 집안에서 누룩을 제거하고 무교병을 먹는다. 이를 통해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은 누룩이 없으신, 다시 말해 죄가 없으신 분이심을 나타낸다. 즉, 무교병 또한 '예수님'께서 담당해 주셨다.

그렇다면 무교병이신 예수님께 기름이 섞이고 발라졌을까?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마태복음 26 : 7]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요한복음 12 : 3]


칠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실 당시에는 예수님께 기름을 바르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난 뒤 예수님께 향유가 발라졌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의 사역을 완수하신 후, 다시 말해 율법을 완성시키신 이후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과거의 행적들을 종합적으로 바라보면 그 행적 안에 녹아있는 하나님의 마음이 새롭게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이 칠병이어의 기적이 이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렇게 '무교병'과 '기름'까지도 '예수님'께서 담당해 주신 것이다.

기름


그다음에는 누룩이 들어간 유교병이 준비되어야 한다. 제자들이 갖고 있던 '떡'은 영어로 Loaves로 Loaf의 복수형이다. 이는 '모양을 만들어 한 덩어리로 구운 빵 한 덩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유교병이라고 할 수 있다. 한글로 '떡'이라고 번역이 되어, 가래떡과 같은 실제 떡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원어의 뜻은 '빵'이다. 즉, 유교병까지도 정확하게 세팅이 되어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떡과 물고기를 가지고 축사를 하셨다. 오병이어의 이야기에 이 축사의 모습이 조금 더 정확하게 묘사가 되어있다.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마태복음  14 : 19]


레위기의 화목제에서는 예물을 거제로 드린다고 한다. 거제는 제물을 들어 올리며 하나님께 감사함을 표하는 제사법이다. 공교롭게 예수님께서는 떡을 들으시고 하늘을 우러러(Looking up to heaven) 축사, 다시 말해 감사함을 표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감사제로써의 화목제의 과정을 착실히 밟아가고 계신 것이다.

축사하신 이후에는 떡과 물고기를 제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나눠주셨다. 레위기의 화목제에서는 예물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 나눠줘야 한다. 화목제물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고 피를 뿌린 것은 유대인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민족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모두 제사장이었을까?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 : 9]


모두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부르심을 받은 존재들이다. 즉,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통해서 화목제의 예물인 떡과 물고기를 왕 같은 제사장인 이스라엘 민족에게 나눠주신 것이다. 정확하게 레위기에 나와있는 화목제의 규례를 따라서 진행된 기적이 바로 칠병이어의 기적인 것이다.

왕같은 제사장


화목제는 제사법 중에서 유일하게 제사를 드린 제사자와 제사장 모두가 제물을 취하여 먹을 수 있는 제사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생활을 할 때에는 개별적으로 고기를 도축해서 먹을 수 없었다. 오직 화목제를 통해서만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특히 감사제의 경우에는 그 고기를 제사를 드린 당일에 모두 다 먹어야 한다.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레위기 7 : 15]


생각해 보라. 소 한 마리를 잡았는데 혼자서 그 고기들을 하루 안에 다 먹을 수 있겠는가? 절대로 불가능하다. 화목제물의 고기를 하루 안에 다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수많은 지인들과 함께 먹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 있으면 오히려 주 안에서 대접하면서 이를 지인들과 나눠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인들과 화목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지인들과 함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제사가 바로 화목제인 것이다. 역으로 화목제물의 고기를 함께 먹으며 감사를 나눌 수 있는 지인 또는 이웃들이 없으면 화목제를 드릴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괜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음식을 나누어 먹는 화목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칠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감사제로써의 화목제를 드리신 것이다. 남자만 계수했을 때 4,000명의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것을 감사하고 싶으셨을까?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마태복음 15 : 29~31]


예수님께서는 아픈 자들을 치료하고 이를 감사하기 위한 화목제를 드리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치료받은 자들이 드리지 않고 예수님께서 화목제를 드리셨을까?

생각해 보라. 저 당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부정한 자로 살아가야 한다. 경제활동도 거의 못했을 것이며, 주변에 지인도 사귈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접촉해서 다른 사람들까지 부정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항상 죄인 된 자로서 긴장감 속에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자들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치료가 되어버렸다. 과연 이런 자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감사의 화목제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은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치료받은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물고기와 떡을 전달받아서 함께 먹음으로써 하나님께 감사함을 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은 단순히 치료해 주시고 끝! 이 아니다. 의사로서의 사역에 집중을 하시기보다는 아픈 이들을 치료하신 후 그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이끄시는 사역에 집중하신 것이다. 이것이 칠병이어 이야기에 녹아있는 예수님의 깊은 마음인 것이다.

이웃과 감사함을 나누는 것


우리는 대학 입시, 취업, 등의 성취감을 크게 느낄만한 경우에는 하나님께 '감사'를 하며 기도도 하고 찬양도 하고 헌금도 드린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소홀히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는 '감사'를 해도, 주변 이웃들에게는 질투심을 유발할까 봐 비밀로 하는 경우도 꽤 있다. 화목제의 감사제의 특징은 이웃들과 함께 먹을 것을 나눠먹는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있으면 이웃들에게 음식을 베풀며 감사할 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음식과 함께 이웃들과 나누는 것이 성경적인 방법인 것이다. 물론, 음식을 베풀면서 감사할 거리만 자랑을 한다면 그것은 '꼴불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감사할 거리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이는 단순히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주문을 외우며 살아가는 삶이 아니다. 감사할 때 드리는 제사인 화목제를 생각하며, 사소한 일에도 감사의 예배로 우리의 삶을 채워나가는 것이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인 것이다. 이런 삶을 살아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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