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군대가 북한의 주민들을 해방시키고자 북진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첫 번째 함락 목표도시의 위치는 휴전선으로부터 약 20km 떨어진 곳이다. 휴전선 인근에는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들이 빈 틈 없이 깔려있는 것은 이미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때마침 대한민국 군인들이 휴전선을 넘어 진격을 할 때 모든 지뢰들이 고장이 나서 작동을 하지 않았다. 어리둥절하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신기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대한민국 국인들이 목표지점 3km 앞까지 진격을 하여 진지를 구축했다는 전보가 전달되었다.
자! 이 상황 가운데 당신이 대한민국 군 통솔권자로서 지시를 내려야 한다면 어떤 지시를 내릴 것인가? 군인들의 긴장감이 고조되었을 테니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술 한 잔씩 마시고 자게 할 것인가? 아니면 이 기세를 살려서 곧바로 공격명령을 내릴 것인가? 다음 날 공격을 할 것이기에 개인화기 및 중화기 무기들을 손질하도록 지시할 것인가? 제정신에 전투를 할 수 없을 것 같으니 마약을 조금씩 복용하라고 지시할 것인가?
여호수아의 리더십을 앞세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진격하기 위해 요단강을 건넜다. 신기하게도 요단강이 스스로 흐름을 멈추고, 강에 길이 생겨났다. 이스라엘 민족은 요단강의 마른땅을 밟으며 강을 건넜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발을 내딛은 것이다. 그리고 길갈에서 첫 번째 진을 쳤다. 참고로 길갈은 요단강으로부터 약 16km, 여리고 성으로부터 북동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이다.
자! 이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어떤 지시를 내리셨을까? 이곳에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한 가지 명령을 내리신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 5 : 2]
전투를 치러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이다. 게다가 목표한 성이 걸어서 약 1시간이면 갈 수 있을 정도로 적의 땅 깊숙이 침투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명하신다. 할례를 행하면 당연히 회복의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서 회복의 시간은 한, 두 시간이 아닌, 몇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도 육체가 회복되어야 하므로 움직일 수도 없다. 훈련도 할 수 없고, 빠르게 이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누워만 있어야 한다. 적의 영토에서, 그것도 적군의 요새 바로 앞에 진을 치고 이런 명령을 전달받았다고 생각해 보라. 이런 군대의 군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 것 같은가?
"미친 거 아니야? 우리가 회복할 때 적군이 쳐들어오면 우린 죽는데? 우리를 방패막이 삼으려는 거야?"
"결국 우리를 가나안 땅으로 이끄셨네... 근데 이렇게 바로 죽이려는 거야?"
이런 생각들을 하지 않겠는가? 조금 더 현실적으로 접근해 보자. 군인으로서 전쟁에 참여한다는 것은 '언제든지 자신이 포로로 잡힐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이때 선택지는 2가지가 있다. 끝까지 모진 고통을 감래 하면서 조국을 배신하지 않고 포로로서 하루하루 삶을 버티는 것과, 적군으로 투항하는 것이다. 이 관점으로 '할례'를 바라보자. 이 시점에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나는 어떤 상황이 와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이스라엘 민족입니다"라는 고백을 몸에 새겨 넣는 것과 같다. 즉, 전쟁 중 포로로 붙잡힌다면 적군으로 투항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할례를 했어도 투항하면 되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투항해서 가나안 민족이 되었는데 몸에 할례가 되어있다면 그저 적군인 이스라엘 민족으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가나안 민족의 종교는 음란행위가 동반되기에 할례를 받은 자임이 드러날 수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지시하신 것은 가나안 땅 정복 전쟁에서 투항할 생각하지 말라고 배수의 진을 치신 것과 같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속 깊은 뜻이 담긴 명령이라고 할지라도, 할례 이후 회복기간에 공격을 받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 또한 대비를 해놓으셨다.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여호수아 5 :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어떻게 건넜는지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 이 소문으로 인해 아모리, 가나안 지역 왕들의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초 자연적인 기적이 동반되는 적군의 군대를 향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런 군대가 자신들의 요새 3km 떨어진 곳에 진을 치고 있다면 일단 지켜보지 않겠는가? 40년 전 전설같이 내려오는 애굽 군대가 홍해에 수장된 이야기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면서 말이다.
"그래도 이런 자연 현상은 어쩌다 한 번 일어난 것으로 생각하고, 가나안 군대가 쳐들어왔을 수도 있는 것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여기서 놓치고 있는 한 가지를 상기시켜 보자. 그것은 바로 '만나'와 '메추라기'이다.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여호수아 5 : 12]
만나는 할례를 행한 이후 유월절을 지키고 무교절에 가나안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그쳤다. 그전까지는 만나와 메추라기가 매 끼니마다 전투식량으로써 공급되었다는 것이다.
이상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조상의 가문을 따라 계수된 자니
모든 진영의 군인 곧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며
[민수기 2 : 32]
이스라엘 군대의 수는 민수기 2장 32절 말씀 기준으로 약 60만 명이었다고 가정해 보자. 1인 1 메추라기를 먹는다고 생각하면 매일 3번씩 60만 마리의 메추라기가 이스라엘 군대에 스스로 날아오지 않았겠는가? 매일 이런 광경을 매일 3번씩 봤다면 아무리 가나안 족속의 군대라고 해도 섣불리 접근하지 못하고 관찰을 하지 않았겠는가? 날아가는 메추라기를 잡아서 어떤 종인지 확인도 해보고, 몰래 근처에 가서 만나도 주워 먹어보고 하지 않았겠는가? 영화 '나 홀로 집에'에서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등장하는 비둘기 할머니만 봐도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60만 마리의 메추라기를 보고 넋을 잃고 쳐다만 보고 있지 않았겠는가?
하나님께서 이렇게 시간을 벌어놓으신 덕분에 이스라엘 백성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할례를 받았다.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여호수아 5 : 8]
적군의 땅에서 함락시켜야 하는 성 바로 앞에서 할례를 받고 회복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심정은 어땠을 것 같은가? '할례'의 의미를 생각하며 비장한 각오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시간이지 않았을까?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타이밍'이다. '할례'를 명하신 타이밍은 전쟁에서 전투가 이루어지기 직전이다. 물론, 여리고성을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함락시키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치열한 목숨을 건 전투를 치를 각오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영적 전쟁과 전투가 끊임없이 펼쳐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영적 전쟁을 준비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정체성'이다. 그러기에 전투 직전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할례'를 명하시며 하나님의 백성임을 한 사람 한 사람 몸에 새기신 것이다. 이에 순종하는 자들은 전쟁 중에 포로로 잡힌다 할지라도 투항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것임을 목숨 걸고 결단한 사람들인 것이다. 이런 자들이 전쟁에서 우리를 승리로 이끄실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승전가를 부르며 진격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이런 결단을 했는가? 우리네 영적 전쟁의 적군 앞에서 무서워 벌벌 떨고만 있지는 않은가? 이럴 때 일수록 우리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더 명확히 하며 목숨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순종할 것임을 결단해야 한다. 여리고성으로 진격하기 직전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할례를 행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말이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사도행전 7 : 51]
이 말씀이 우리를 향한 질타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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