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빌립보 가이사랴지방에 이르렀을 때,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에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마태복음 16 : 14]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마가복음 8 : 28]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누가복음 9 : 19]
그 이후 다시 한 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에 대해 베드로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태복음 16 : 16]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마가복음 8 :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누가복음 9 : 20]
이 베드로의 대답에 대해 예수님의 칭찬은 마태복음에만 나와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태복음 16 : 17]
베드로의 이와 같은 고백이 어떤 고백이길래 "복이 있도다" 라고 하시는 것일까?
우선, 빌립보 가이사랴 지역이 어떤 곳인지 살펴보자.
갈릴리 호수 북방 40㎞ 지점, 헤르몬 산 남쪽 완만한 경사지에 위치한 도시이다. 구약 시대에는 ‘바알 갓’이라 불렀다(수 11:17).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가장 아름답고, 풍요로운 지역 중 하나인데, 북동쪽에 위치한 헤르몬 산이 풍부한 수원 역할을 했다. 원래 이 도성은 가이사 아구스도가 헤롯 대왕에게 하사한 도시였는데, 후에 헤롯 빌립 2세는 이 도시를 새롭게 정비하고 황제를 기린다 하여 ‘가이사랴’로 불렀고,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 ‘가이사랴’와 구별하기 위해 빌립(빌립보)의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은 헬라, 로마 문명의 중심지로, 대부분 이방인이 거주했다. 즉, 수많은 이방신을 섬기는 신전들로 가득차있는 곳이 바로 빌립보 가이사랴이다.
이 가운데 예수님께서 질문하신 것이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다.
이 죄악 한복판에서 이 질문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다.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이 빌립보 가이사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할 수도 있다. 수많은 이단들이 판치고 있으며, 이슬람, 불교, 힌두교, 카톨릭 등 수많은 잡신 숭배 종교들이 있으며, 교회의 모습을 갖추고는 있지만 하나님을 배신한 교회들도 많이 있다. 심지어 어떤 목사는 '철학자 예수' 에 대해서 강연을 하기도 하고, 대선후보로 나왔던 어떤 이는 분당의 어떤교회의 성도인데 '혁명가 예수' 라고 외치고 다닌다.
이는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 하는 상황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 가운데 우리는 예수님을 누구라 하는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의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기도한다. 베드로의 이 고백 이후, 예수님께서 다음과 약속을 하신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태복음 16 : 18~19]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한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반석' 은 무엇일까?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곳이 어디인지 잊지 말자. 이방 잡신들을 섬기고 숭배하는 신전이 가득한 빌립보 가이사랴이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실 때 죄악 가득한 그 땅에 바로 세우시지 않으시고 '반석' 위에 세우신다고 하신다. 여기서 '반석' 은 '베드로' 이며,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한 자이다. 죄악 가득한 그 땅에 막무가내로 교회를 세우시지 않고, 예수님을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자들을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이 반석 위에 흔들림 없이 서있는지 점검하자.
그리고, 예수님께서 "내 교회" 를 세우신다고 하신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예수님께서 주인되시는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교회로 인해 하늘의 하나님의 나라와 이 땅이 동일하게 흘러간다고 한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이다. 이 모든것이 교회가 예수님이 주인되시는 교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늘날의 상황을 보면, 이 땅과 하나님 나라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크다. 이 모든 것이 교회가 교회로써 굳건한 믿음의 반석위에 있지 못하고, 예수님이 주인되는 교회가 이니기 때문이다. 음부의 권세를 두려워하여 벌벌 떨고 있다. 세상을 이미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되시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마태복음 16 : 20~21]
왜 예수님은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말라고 하셨을까? 빌립보 가이사랴의 상황과 같이 이방 잡신들을 믿는 이들에게 얘기해봤자 믿지 않을것이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경고하시면서 얘기하시지는 않았을것이다. 왜 굳이 경고하시면서까지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얘기하지 말라고 하셨을까?
사람들 귀에 이 얘기가 들어가면, 마귀가 예수님에게 행했던 2번 째 시험과 같이, 진짜 메시아인지, 그리고 진짜 하나님의 아들인지 시험하려고 달려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루는 것이 아니게 된다. 그러기에 제자들에게 엄중히 경고하시면서 입단속을 시키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알리신 것이다.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직접 예수님이 메시아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내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메시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게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의 반응은 다음과 같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Peter took him aside and began to rebuke him.
"Never, Lord!" he said.
"This shall never happen to you!"
[마태복음 16 : 22]
한글 성경에는 '항변' 으로 표현되었으나, 영어 단어를 보면 'Rebuke' 이다. 이는 '질책하다, 꾸짖다' 라는 뜻이다. 하나님 뜻대로 가시려는 예수님을 향해 베드로가 질책하고 꾸짖으며, 이런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것이라고 외친다. 이런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태복음 16 : 23]
믿음의 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라고 불과 몇 분 전에 말씀하셨는데, 베드로의 얘기를 듣고 '사탄' 이라고 꾸짖으신다.
믿음의 고백을 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 한 번의 주문과 같은 고백으로 구원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순간의 생각으로 '사탄' 으로까지 절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항상 주야로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하며, 전심으로 하나님 바라보고 목숨다해 하나님 사랑하며 매 순간순간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틈을 보이지 말자.
베드로에게 '사탄' 이라고까지 꾸짖으신 이유를 살펴보자.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게 되면 모든것이 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모시고 있는 랍비가 고난을 받게 된다는 것이 제자로써 허락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다시 살아나신다고 하셨지만, 이미 베드로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고난' 과 '죽음' 에 집중했던 것이다. 베드로의 생각은 충분히 합리적인 생각이며, 우리가 베드로였어도 똑같이 행동했거나 아무말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선을 그으신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것이며, 이런 자가 바로 '사탄' 이라고.
내가 어떤 멋있는 믿음의 고백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어떤자라도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면 '사탄' 이 될 수 있다. 명심하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3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 곧,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살아나가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신 뒤 제자들을 향해 명령하신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 : 24]
예수님께서 반석 위에 세우신 교회들이 따라야 할 명령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삶의 모습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흔히, 십자가를 지고 따라간다고 하면 삶의 고난을 피하지 않고 견디면서 이겨내는 삶을 생각한다. 하지만, 십자가는 단순한 고난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는 사형 도구이다. 이것을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은, 철저하게 나를 부인하고, 나를 죽이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의지하며 좇아오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좇으며, 어떻게 고난당하시고 돌아가셨는지 잊지 말라는 것이다. 죽을 각오하고 좇아오라는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신 곳이 빌립보 가이사랴이다. 죽을각오하고 목숨다해 예수님을 좇지 않으면, 그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같이 이방 잡신들 믿으며, 우상숭배하며, 쾌락을 좇고,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목숨걸고 예수님 좇는 삶이 불합리해 보일 수 도 있으며, 힘들게 느껴질 수 도 있고, 억울하게 느껴질 수 도 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께서 약속의 말씀은 주신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태복음 16 : 27]
예수님 다시 오실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목숨다해 예수님을 좇는 삶이 인간의 생각으로 불합리해 보이고, 힘들게 느껴지고, 억울하게 느껴진다 하더라고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순종하자. 예수님께서 분명히 약속해주셨다.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예수님의 약속을 잊지말고 그 약속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자. 그리고, 마음 중심을 향해 질문을 던지며 하루하루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자.
"너는 예수님을 누구라 하느냐?"
'말씀 묵상 > 사복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0) | 2021.10.05 |
---|---|
하나님의 명령. 영생 (0) | 2021.10.03 |
수전절에 벌어진 예수님의 정체 논쟁 (0) | 2021.09.19 |
잃어버린 한 마리 양 (0) | 2021.09.14 |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갈등 (0) | 2021.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