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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사복음서

수전절에 벌어진 예수님의 정체 논쟁

Gospel Barista 2021. 9. 1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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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절(하누카)은 레위기 23장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절기는 아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께서 수전절에 성전에 올라가심으로 이를 지키고 계신 모습이 나온다.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요한복음 10 : 22]

그렇다면 이 수전절은 어떤 절기일까?

이는 다니엘 7장~8장에 예언되어있는 구약과 신약의 공백기 4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시리아의 왕인 안티오쿠스 4세, 즉,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의 성전에 가증한 짓을 하게 된다. 참고로 이 왕은 자신을 신으로 부르며, 그리스로마신화의 제우스에 대한 신념이 강했던 자이다. 이 자는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관과 정면으로 부딪히자, 율법에서 하라고 한 것은 못하게 하고, 율법에서 하지 말라고 한 것은 하게했다. 어느정도까지 했냐면, 거룩하지 않은 동물인 돼지의 피를 성전 제단에 뿌리며 제사를 드리는지를 감시하고, 자신의 명령대로 행하지 않았던 이들을 고문하고 죽였다.

이 왕이 행했던 또 다른 유명한 일화가 현명한 어머니와 일곱 아들 이야기 이다. 안티오쿠스 4세가 이들에게 하나님 부인하면 살려준다고하며 협박을 했다. 하지만, 이들이 부인하지 않자, 막내아들부터 차례대로 잔인하게 죽여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이 어머니는 아들들을 격려했다.

"우리가 지금 죽어도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살리실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이름 배신하지 말고 당당히 죽자!" 라고.

이런 상황 가운데 몇명의 아들들이 죽어나가자 안티오쿠스 4세는 남은 아들들과 어머니에게 제발 한번만 하나님 부인해달라고 사정까지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끝까지 모두 순교했다.

그렇다면 이 안티오쿠스 4세가 하나님을 부인하라고 하면서 요구했던 행동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그것은 바로 '돼지고기를 먹어라' 였다. 충격적이지 않는가? 당시에는 이것이 거룩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삼겹살을 먹으면 안되는 것인가?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로새서 2 : 16~17]

우리가 먹는 것으로 비판받지 못하게 하라고 한다. 이런 행위는 그림자에 해당하는 것이고, 우리가 챙겨야 하는 것은 성전된 몸이다. 삼겹살 먹고 힘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내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런 안티오쿠스 4세의 만행에 대항하여 마카비혁명이 일어났다. 결국 이들이 안티오쿠스 4세와 싸워 승리했고, 다시 성전을 되찾았다. BC 164 에 이들이 다시 성전을 되찾고 성전을 다시 봉헌하는데, 촛불을 밝히는 깨끗한 올리브 기름이 하루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하루치의 기름으로 촛불에 불을 밝혔는데, 다음 기름이 준비하는 8일동안 불이 꺼지지 않았다. 이를 기념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전절에 초가 9개있는 촛대에 불을 붙인다. 가운데 촛대는 약간 위에 있어 나머지 8개의 촛대를 밝혀주는 역할을 하는 촛대이며, 나머지 8개의 촛대에 8일동안 하루에 하나씩 불을 밝힌다. 그래서 수전절을 '빛의 절기' 라고도 부른다. 참고로 성전에 있는 촛대는 일곱개 이다. 수전절의 촛대와는 다르다.

그리고, 기름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하루치 기름으로 8일동안 불을 밝혀주셨음에 '기름의 절기' 라고도 불리우며, 이로 인해 기름으로 튀긴 도너츠를 먹는다.

공교롭게 수전절의 유래가 된 성전 회복의 날이 당시에 12월 25일이었다. 물론, 유대력으로 따지기에 이스라엘 민족들은 수전절을 보통 11월 말에서 12월 중순 정도에 지키게 된다. 역으로, 이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성탄절인 12월 25일은 그냥 평범한 날이며, 모두 출근하고 일하며 일상생활을 보낸다.

이것이 수전절의 유래이다. 이는 성전의 거룩의 회복에 초점이 맞춰진 절기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이 절기를 지키신 것이다.

그리고 이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서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서 추궁하고 있는 것이다. 성전의 거룩을 회복한 날에 성전되시는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궁하며, 돌로 예수님을 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 하지 않는가?

이런 아이러니한 일이 지금은 없을까? 교회의 리더들이 마리아를 숭배하는 M십자가를 교회에 내걸고 있다. 거룩한 교회의 단상에 목사가 아닌 세상 사람이나 국회의원, 절의 중이나 성당의 신부들까지 세우고 있다. 찬양을 한다면서 헤드뱅잉을 하고 있고, 율동을 한다면서 아이돌 춤을 추고 있다. 당시 제단에 돼지의 피를 뿌린 짓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성전의 거룩함을 회복한 절기를 예수님께서 지키셨다. 이는 '거룩한 성전' 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몸된 성전을 얼마나 거룩하게 지켜내고 있는가? 누군가는 목숨걸고 이를 지켜내려고 피흘리기까지 싸우고 있고, 누군가는 이런 거룩한 자들을 돌로 찍어내리려고 교회로 발걸음을 향하고 있다. 우리는 어느쪽에 속한 자인지를 점검하자. 그리고 삼겹살 먹고 힘내서 거룩함을 지켜내는 싸움에서 승전보를 울리며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자.

참고로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안티오쿠스 4세는 흔히 적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한다. 이런자가 다스리는 나라에서 우리가 믿음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가? 다니엘서의 풀무불과 같은 일들이 당시의 일상생활이었다. 즉,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매일매일 순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의 믿음의 선포는 이것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다니엘 3 : 17~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이 찬양은 많이 불러봤어도, 이 신앙고백의 결단은 절대로 쉽지 않다. 휴거되지 않고 남겨진다면, 이를 결단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는 안티오쿠스 4세 보다도 더한 적그리스도의 통치하에 살아나가야 한다.

수전절의 핵심은 거룩한 성전의 '봉헌' 이다. 공교롭게 '봉헌' 의 뜻을 가진 이름이 있다. 바로 '에녹' 이다. 우리의 몸된 성전이 거룩하게 하나님 앞에 '봉헌' 되었다면, 노아의 홍수 직전에 하늘로 들려올려진 '에녹' 과 같이 우리도 들려올려질 것이다. 이것이 '휴거' 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지키신 수전절을 바라보며 지혜롭고 현명한 결단을 하자.

수전절 아홉 촛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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