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the Gospel Cafe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복음 다방' 입니다

말씀 묵상/사복음서

물에 빠진 베드로

Gospel Barista 2021. 10. 21. 14:53
728x90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먼저 배타고 이동하라고 하시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다. 해가 저물어 배는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멀어진 상태이며, 바람까지 거슬리도록 불어 제자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었다.

성난 물 위의 배 (※출처 : Pexels)


이 와중에 예수님께서 밤 사경에 바다위로 걸어오셨다. 제자들은 유령이라 하며 놀랐으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안심시키신다.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마태복음 14 : 27]


이 때, 베드로는 진짜 예수님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예수님인것 같은데 확신이 필요했는지, 예수님께 한가지 제안을 한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마태복음 14 : 28]


예수님께서 이 제안에 대하여 간결하고 단호하게 대답하신다.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마태복음 14 : 29]


이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바로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서 예수님께로 갔다. 예수님과 같이 물 위에 서서 걸어간 것이다. 이 순간 베드로의 시선을 살펴보자.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마태복음 14 : 30]


바람을 보는 순간 무서워 빠져갔다고 한다. 예수님 말씀을 듣고 그 순간 믿음으로 뛰어들었으나, 그 시선이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주변 환경을 보는 순간 두려움이 마음속에 들어와서 빠져간 것이다.

우선, 바람을 본 순간의 타이밍을 보자.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해서 기적을 체험한 순간이다. 마귀가 예수님께 행했던 3가지 시험 중 첫 번째 시험을 살펴보자. 40일 금식기도를 마치신 직후에 돌을 떡으로 만들어 보라는 시험을 했다. 제일 배고픈 순간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 금식기도를 마친 직후 이다. "해냈다! 드디어 마쳤다! 다 끝냈다!" 등과 같이 우리가 성취감을 느낀 순간이나 무엇인가 해낸 직후 우리 마음이 뿌듯함을 느끼는 그 순간에 마귀는 우리의 시선을 돌리려고 한다.

우리의 시선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 :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봐야한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중간중간, 끝나고 난 후' 등의 조건에 따라 봐도 되고 안봐도 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순간이라도 예수님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를 온전하게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다.

바람을 본 순간의 베드로의 마음을 살펴보면, 바로 '무서워' 이다. 즉, 두려움이 들어온 것이다. "물에 빠지면 어떻게 하지? 내가 계속 물 위를 걸을 수 있을까? 바람이 나를 넘어뜨리면 어떻게 하지? 등등" 수많은 두려운 생각이 들어왔을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 단순하게 베드로의 믿음이 부족한 것을 문제삼는 이들이 많이 있다. 맞는 이야기이지만, 하지만 아래와 같은 한 밤중의 성난 바다가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과연 우리가 그 자리에 서있었다면 베드로와는 상황이 달라졌을까? 자만하지 말자.

밤에 성난 바다의 모습 (※출처 : Pexels)

어찌됐건,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 딴생각을 했다. 이미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을 바라본다면, 그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두려울 것이 없는데, 주변 환경을 보게되면 두려움이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요한계시록 21 : 8]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지옥가는자 첫 번째 조건이 바로 '두려워하는 자' 이다. 우리 마음 속에 두려움이 있는가? 주변 환경으로 인한 두렵고 떨리는 무서운 마음이 있는가? 그렇다면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점검하자.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세우시면서 3번이나 명령하시는 것이 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수아 1 : 5~9]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으로 진격해 들어가야하는 자다. 전쟁을 치뤄야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 가운데 주변 상황을 바라본다면, 두려움이 들어올 수 밖에 없다. 이 가운데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두려울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라고 하신다. 아무 근거없이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이 아닌, 가장 확실하고 든든한 약속을 해주시면서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어떤자였을까?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이 두려워 벌벌 떨었으나, 이 가운데 여호수아는 이와 같은 고백을 한다.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민수기 14 : 6~9]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데 무엇이 두려운것인가? 저들을 두려워하지말고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라고 외치던 자이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최우선인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 온 회중은 여호수아를 돌로 쳐 죽이려고 하는데, 그 순간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났으며, 이들이 두려워 하던 죄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모든 상황을 겪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리더로 세워지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여호수아에게,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시고 명령하신다.

"내가 너와 함께할테니 두려워하지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다시, 베드로의 상황으로 돌아오면, 이 두려운 마음으로 인해 물에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 때 베드로의 외침은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이다. 단순하게 살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부르면서 주님께 구하고 있다. 가라앉기 시작하는 그 짧은 순간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찾은 것이다. 그 순간 자기를 구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 때 예수님의 반응은 어땠을까?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마태복음 14 : 31]


물에 빠진 베드로를 즉시 손을 내밀어 붙잡아주시는 주님 (※출처 : Pexels)


즉시! 손을 내밀어 붙잡으셨다. 사실, 예수님 앞에서 다른것을 바라보고 다른생각을 한 베드로다. 믿음 없이 주변 상황을 보고 두려워하며 물에 가라앉고있는 베드로이다. 정신차리라고 죽기 직전까지 물고문 하다가 살리셔도 될텐데, 베드로가 외치자 마자 그 즉시 붙잡고 끌어올리신다. 이것이 넘어지고 있는 자, 가라앉고 있는 자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의 손길이자 하나님의 마음이다. 부르짖는 즉시 살려내신다. 우리 주변에 넘어지고 있거나, 가라앉고 있는 자가 있는가? "적당히 저러다 돌아오겠지." 라는 생각하지 말고 애통하고 긍휼한 마음으로 붙잡고 끌어올리자.

예수님께서는 그리고 나서 베드로를 꾸짖으신다. 그 내용은 '왜' 의심했냐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그 중심을 보신다. 우리의 중심이라는 것은 바로 삶의 동기이다. 즉, 우리 삶의 '왜' 를 보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동기를 점검하자. 나는 '왜' 사는 것인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로마서 14 : 8]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길 기도한다.

베드로의 행동을 보면, 예수님인지 의심하면서 시험한 것이 아닐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4 : 7]


분명히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했는데, 베드로는 시험한 것 아닌가?

명확히 알자. 베드로는 물 위에 있는 존재가 예수님이라고 하는데, 진짜 예수님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
Lord, if it's you," Peter replied,
"tell me to come to you on the water."
[마태복음 14 : 28]


그렇기 때문에 질문의 첫 단어가 '주여, Lord' 로 시작한다. 그래서 주님이시거든 자신을 물 위로 걷게 하실 수 있다는 믿음으로 요청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오라! Come!" 이니, 베드로는 바로 물 위로 뛰어들었다. 즉, 예수님이 아닐 것이라는 의심이 아닌, 예수님임을 알지만 확실한 징표를 보여달라는 믿음의 선포인 것이다.

기드온의 이슬에 젖은 양털 사건도 동일하다.

양털 (※출처 : Pexels)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사사기 6 : 36~40]


기드온의 첫 고백도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으로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말씀을 더 확실한 징표를 보여달라는 믿음의 선포이다. 그 믿음의 징표를 보여주시니 앞뒤 안가리고 물불 가리지 않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진격해나간다. 이것이 시험하는 자와 믿음의 선포를 하는 자의 차이이다.

믿음의 선포를 통해 더 큰 믿음으로 주님 말씀하시면 순종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이기는 자가 되자!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