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서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수많은 죄악이 명기되어 있다. 공교롭게 에스겔서에 명기되어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과 대한민국의 죄악이 소름돋을 정도로 일치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이를 상세하게 비교해보고자 한다.
그 열 두 번째 주제는 바로 '아름다움' 이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 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에스겔 28 : 17]
이 말씀 또한 두로왕에게 선포하신 말씀이므로 이스라엘의 죄라고 할 수는 없으나, 대한민국의 상황과 일맥상통하는 죄로 볼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대한민국은 다방면에서 세계1위의 자리에 올랐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성형수술' 이다. 물론, 의학적 치료를 목적으로하는 성형수술도 많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땅 대한민국은이미 치료가 아닌 아름다움을 추구하기위한 성형수술이 판을 치고 있다.
TV만 틀면 성형수술을 한 아름다운 연예인들이 성형수술의 달콤한 유혹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 세계를 휩쓸고있는 K-POP 스타 및 아이돌들이 TV 뿐만 아니라 SNS와 YouTube 까지 점령하며 외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세상문화가 외모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이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반응이다. 다양한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율동' 이라는 명목하에 아이돌급의 의상을 입히고 춤을 추게 하고 있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성형수술을 하고있다. 심지어, '걸작품' 이라는 어린이 찬송가의 찬양을 제일 좋아한다며 거의 매주 교회학교에서 준비찬양을 인도하는 교사마저도 성형수술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걸작품' 찬양의 고백은 그저 가요를 흥얼거리듯이 날려버린지 오래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 '아름다움' 을 경계하시는 것일까? 이는 마음이 교만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마음이 교만해지는 이유가 '아름다움' 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서를 통해서 두로왕에게 명확하게 '아름다움으로 인해 교만해진 마음' 을 지적하고 계시다. '아름다움' 을 추구하고, 이 욕구를 충족시켜나가다 보면 충분히 마음이 교만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교만은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명확하게 심판의 이유, 즉, 죄로 지목하신 것이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성형수술을 하면서 이렇게 고백을 한다.
"성형수술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더 당당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다!"
착각하지 마라. 성형수술을 통해 회복되는 것은 자신감이 아닌 교만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때 우리가 채워야 하는 것은 자신감이 아닌 성령충만이다. 예수님이 마귀의 3가지 시험을 이기실 때 자신감을 내세워 이기신 것이 아니다. 성령에 인도하심에 따라 3가지 시험을 이기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에 대해서 합리화할 생각하지 말자. 그저 핑계거리일 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무엘상 16 : 7]
사람은 외모를 보며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하나님의 시선은 '중심' 을 향하고 계신다. 우리는 외모를 가꾸기 보다 우리의 중심을 가꿔야한다. 아무리 명품으로 외모를 치장해도, 그 사람의 중심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으면, 그저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은 바바리맨과 동일한 것이다.
외모의 아름다움만 추구하며 하나님의 걸작품을 인위적으로 가공한 영적 바바리맨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외모의 아름다움보다 우리의 옳바른 중심을 세워나가며 하나님을 대면한 모세와 같이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 이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걸작품' 이라는 어린이 찬양의 가사를 공유하며 마무리 하고자 한다.
흙으로 빚어서 생기를 불어 넣어
살아 숨쉬는 사람을 만드셨죠
너는 걸작품 하나님의 최고의 작품
나도 걸작품 하나님의 최고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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