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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서의 죄악 vs 대한민국의 죄악 [표리부동]

Gospel Barista 2022. 2. 13.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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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서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수많은 죄악이 명기되어 있다. 공교롭게 에스겔서에 명기되어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과 대한민국의 죄악이 소름돋을 정도로 일치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이를 상세하게 비교해보고자 한다.

그 열 네 번째 주제는 바로
'표리부동[表裏不同]' 이다.
※표리부동 : 겉과 속이 다름

겉과 속이 다름 (※출처 : Pixabay)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에 대하여 말하며
각각 그 형제와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 보자 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My people come to you, as they usually do,
and sit before you to listen to your words,
but they do not put them into practice.
With their mouths they express
devotion,
but their hearts are greedy for
unjust gain)
그들은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에 있었음을 알리라
[에스겔 33 : 30~33]


이 부분은 특히 한국 교회 교인들에게 해당되는 사항이다.

에스겔서 33장 말씀에서의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들어보자며 모인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른다고 한다.

이 모습은 흡사 주일에 교회에 모여드는 교인들과 유사하다. 수많은 교인들이 '목사님이 어떤 설교를 할지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 는 식의 설교 평론가로써 예배자리에 앉아있다. 예배가 끝난 후에는 지인들과 세상에서 가장 인자한 표정과 목소리로 "할렐루야!", "샬롬" 등의 인사를 하며 그 입에서 사랑의 인사를 남발한다.

교회에서의 인사 (※출처 : Pixabay)


하지만, 정작 이들은 교회 건물을 떠나 주자장에서부터 짜증과 화가 남발하고 앞 차가 빨리 나가지 않는다고 빵빵거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그리고 이런 자들은 사회생활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술자리에 녹아들며 술에 취하기도 하고, 고사를 지내거나 제사를 드리는 세상풍속의 우상을 기꺼이 섬기기도 한다. 더 나아가 성경책은 펼쳐보지도 않으면서 인맥유지를 위해 팔꿈치 엘보우 치료를 받아가며 골프를 치기도 한다.

대통령 후보들은 대부분 유명한 종교시설을 순방한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다는 모 후보는 자신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절에 가서 합장하고 온갖 종교행위를 다 하고 다닌다. 그저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내용을 영어 말씀으로 살펴보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들은 입으로는 'Devotion', 즉, '기도, 헌신, 예배' 를 표현하지만, '부당한 이익(Unjust gain)' 을 따른다는 것이다. 이 관점으로 하나하나 살펴보자.

우선, '기도' 하자고 외치는 이들이 있다. 맞는 이야기이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쉬지말고 기도하라' 라고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도하자고 외치는 이들이 부당한 이익을 따른다면 어떻게 될까? 산상수훈에서 외식하는 자로 분류되는 '큰 길 어귀에 서서 기도하는 자' 가 되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큰 길 어귀에 서서 기도하는 사람이 어디있어?"

라고 생각되는가? 실제 큰 길 어귀에 서서 기도하는 이들은 거의 없지만, 산상수훈에서 지적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하는 이들' 이다. 이 관점으로 보면 자신의 SNS 에 자신의 신앙생활을 과시하고자 자신의 기도제목이나 기도시간 등을 올려놓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정말 중보기도가 필요하여 기도제목을 공지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신앙생활을 과시하기위한, 즉, 자신이 기도하는 신실한 신앙인임을 드러내기위한 부당한 이익이 목적이라면 정확하게 '사람에게 보이려고 큰 길 어귀에 서서 기도하는 사람' 이지 않겠는가?

다양한 과시의 장으로 변해버린 SNS (※출처 : Pixabay)


그 다음으로 '헌신' 을 외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이들은 주로 교회에서 봉사하는 이들을 향해서 이 표현을 쓰곤 한다. 교회에서 교회학교 교사나 성가대원으로 헌신하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하나님께서 그 손길 하나하나 기억하실 것이다. 하지만, 입으로는 헌신을 외치면서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교회학교 교사의 사례를 살펴보자. 교사로 헌신하려는 자들이 굳은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즉, 편하게 교사를 하고싶은 것이다. 교회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대상이다보니, 예배 후에 다양한 교육들이 펼쳐지기 마련이다. 이런 교육들은 교사들의 헌신이 필수적이다. 더 나아가 성전을 청소하거나 분리수거 또한 교사들의 몫이 되는 경우가 많다. 교회학교 교사라는 직함은 달고있고 싶으나, 정작 교사로써 마땅히 해야하는 일들은 남에게 미루고 자신은 편안하게 교사를 하겠다는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이들이 정확하게 에스겔서 33장에서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는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인 것이다.

더 나아가 눈에 띄는 일만 하려는 교사들이 있다. 교회학교 교사를 하다보면, 아이들 앞에서 찬양인도를 하거나 교육 프로그램 진행 등 많은 이들의 앞에 서야하는 기회가 생기기 마련이다. 아이들에게 어떤 말씀을 가르치며 양육할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눈에 띄는 자리만 탐내는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교사들의 모습 또한 에스겔서 33장의 이스라엘 민족과 묘하게 오버랩이 된다.

주목받는 자리만 찾아다니는 이들 (※출처 : Pixabay)


마지막으로 '예배' 를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특히, 현재의 COVID-19 사태를 통해 '예배' 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선포되고 있다. '현장 예배', '온라인 예배' 등의 신조어가 생겨났고, 현장 예배를 사수하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코로나 전파를 최소화 하기위해 온라인 예배를 고수하는 교회도 있다. 예배를 드리게 해달라고 국무총리에게 구걸하는 목사도 있고, 자체 백신 패스를 적용하며 백신 접종자만 입장을 허용하는 교회들도 있다.

이런 다양한 주장들로 인해 한국 교회는 의견 충돌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온라인 예배를 제 2의 종교개혁이라고 주장하며 목숨걸고 현장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을 몰상식한 교회들로 취급 한다. 역으로 현장 예배만을 진정한 예배로 인정하며 온라인 예배를 예배로 인정하지 않고, 온라인 예배만을 고수하는 교회들은 목숨걸고 예배를 사수하지 않는 교회로 낙인이 찍히고 있다. 물론, 예배를 목숨걸고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예배를 지키자고 하면서 우상을 겸하여 섬기고, 거짓 증언을 하며 전도사 자리에 앉아있는 이와 동역하는 것은 무슨 경우란 말인가?

예레미야애가에서 초막, 절기, 안식일을 폐하시고,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시고, 제단을 버리시고 거룩한 성소를 미워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언제까지 하나님의 사랑만을 강조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지만, 죄를 미워하시는 거룩하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것은 특정한 예배의 형태가 아니라 회개하고 거룩함을 회복하는 것임을 잊지말자. 거룩하신 하나님께 거룩하게 나아가는 것이 주기도문을 통해 날마다 고백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긴다는 것이다.

대형교회 목사가 국무총리에게 예배를 허락해달라고 구걸함으로 인해 마치 예배의 주관자가 국무총리인 것 처럼 되어버렸다. 옳바른 정교분리의 개념을 선포해도 모자를 판국에, 교회들이 알아서 굽신거리며 정부의 지침을 목이 빠지게 갈망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 이라고 하신 말씀은 버림바 되어,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이들은 교회 출입을 금지시켜버렸다. 백신 접종자만 만민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버리고 세상의 주장에 이렇게 순종적인 교회들이 넘쳐나고 있다.

'진리를 버리는 것' 이 곧 '부당한 이익' 을 취하는 것이다. 그럴싸한 말과 행실로 비진리를 포장하며 선동하는 것이 곧 '부당한 이익' 을 취하는 것이다.

예배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난무하는 시대 (※출처 : Pixabay)


이런 자들이 바로 에스겔서 33장에서의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과 동일한 죄의 모습인 것이다. COVID-19 사태로 한국 교회의 이런 모습이 극대화 되고 있다. COVID-19 사태를 허락하신 분 또한 하나님이시다. 이 사태를 극복할 수 있는 비법을 모세를 통해 배워나갔으면 한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사이에 우상숭배를 했다. 하나님께서 이 모습을 보시고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에게 가나안 땅에 함께 가시지 않으시겠다고 선포하신다.

이 때 모세의 모습은 어땠을까? 모세가 회막을 진과 멀리 떨어진 곳에 쳤고,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갔다. 그 때 백성들은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았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니 하나님께서 임하셨고, 이 모습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당분간 다양한 형태로 예배가 드려질 것이다. 나와 이 민족과 대한민국 교회의 죄악을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회개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예배하자. 죄악의 무리에 머물면서 어설픈 회개 코스프레가 아닌, 하나님 앞에 철저한 회개로 나아가며 거룩하게 구별되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의 모습으로 나아가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자. 이것이 마지막 때를 살아내는 비법인 것이다.

에스겔서 33장의 이스라엘 민족들은 에스겔을 그저 고운 음성으로 사랑노래를 하는 음악을 잘하는 광대 정도로 여겼다. 그러니 에스겔의 선포대로 행할리 만무하다. 이런 자들에게 에스겔의 선포대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되는 것이다. 이 진노 가운데 에스겔이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선지자였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라는 것이 결론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하는 목사님들을 그저 말 잘하고 찬양을 잘부르는 가수 정도로 여기고 콘서트나 강연 입장료 개념의 헌금을 교회에 수납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의 말씀이 임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위의 모습들 중 우리에게 해당되는 모습이 있다면 회개하고 돌이키자. 이것이 우리가 살 길이자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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