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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

증인으로서의 삶이란?

Gospel Barista 2024. 4.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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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들이 추구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겠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추구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는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 : 8]


예수님의 증인


이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자 결단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품게 된다. 이 질문에 답이 되는 말씀이 요한일서에 녹아있기에 묵상을 해보고자 한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This is the one who came by water
and blood--Jesus Christ.
He did not come by water only,
but by water and blood.
And it is the Spirit who testifies,
because the Spirit is the truth.
For there are three that testify:
the Spirit,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 three are in agreement.
[요한일서 5 : 6~8]


우선, 요한일서 5장 8절에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의 영어 구절은 'the three are in agreement.'이다. 이는 '이 셋은 일치한다' 또는 '이 셋은 합의점을 갖는다' 정도로 직역할 수 있다. 즉, 성령과 물과 피는 성삼위일체와 같이 '셋인데 하나'의 개념이 아니라, '각각의 3개의 개념이 동일한 것을 가리키는 개념'인 것이다. 그러기에 요한일서 5장 7절에 '증언하는 이가 셋'이라고 표현되는 것이다.

증언하는 이가 셋


그렇다면 이 셋이 증언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요한일서 5 : 5]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다. 그리고 이를 믿는 자들이 세상을 이기는 자들임을 함께 선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3개의 개념이 어떻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우선, 물은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받으신 물세례를 의미한다. 이때의 모습을 살펴보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3 : 16~17]


예수님께서 물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님께서 내려오셔서 예수님 위에 임하셨고,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즉,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물세례를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온 세상에 직접 선포하신 사건인 것이다. 그러기에 물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고 있는 증거로서 채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물세례


그렇다면 피는 어떨까? 여기서 피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때의 모습을 살펴보자.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마태복음 27 : 54]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누가복음 23 : 46]


예수님께서 직접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그리고 그 현장에 있던 백부장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은 예수님의 고백과 이를 지켜본 자들의 고백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선포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즉, 피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고 있는 증거로서 채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십자가


마지막으로 성령님이다. 요한일서 5장 6절에 대놓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로 임하셨음을 증언하는 이'라고 선포되어 있다. 그것도 '성령은 진리니라'라고 못을 박으면서 말이다. 이 정도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는 증인으로 채택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증거와 증인으로 채택된 3가지의 개념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증명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개념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3가지, 물과 피와 성령님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자.

물세례와 성령 세례로 거듭나는 것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는 증인으로서의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물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고 선포하신 것을 기억하자. 물세례는 단순히 물에 풍덩 들어갔다가 나오는 물놀이가 아니다. 이 세상을 향해 '이제부터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겠노라' 선포하는 것이다.

간혹 크리스천 중에서 이 물세례와 성령 세례를 신앙생활의 목표로 삼는 이들이 있다. 물론, 목표로 삼을 만큼 중요하고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는 이벤트로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이를 삶의 목표점에 두라고 하지 않는다. 성령님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부탁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선물 받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는 1차원 적인 삶을 살아서는 되겠는가? 받은 선물을 어떻게 우리 삶 가운데 녹여내는지가 더 중요하다. 물세례와 성령 세례 자체가 목표였던 자들은 교회에서 물세례를 받고, 방언 기도를 시작하면 목표를 이루게 되므로 신앙의 목표가 사라진다. 이렇게 되면 신앙의 동기부여가 없어진 상태, 다시 말해 영적 그로기 상태가 되어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나아가곤 한다. 이런 영적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성령 세례 이후 끊임없는 성령충만을 통해 성령에 이끌리는 삶이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

영적 그로기 상태


그렇다면 남은 증거 중 하나인 '피'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요한일서가 쓰일 당시, 요한의 무리들은 '영지주의'라는 이단 사상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었다. 구약에서 천사가 사람의 모습으로 온 사례가 있으니, 예수님은 영적인 존재로 치부하고, 육신은 그저 타락한 것으로 여기며, 더 나아가 육신은 타락해도 되는 개념으로 이어지는 사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실제 인간의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증언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개념이었던 것이다. 즉, 피는 십자가를 의미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걸어가는 삶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는 삶인 것이다. 이 길은 협소하여 찾는 자가 매우 적은 것이 특징인 길이다. 이 특징에 꽂혀서 무조건 소수자 편에 서야 한다고 삐딱한 시선을 갖지 않도록 주의하자. 각자의 십자가를 지는 것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는 삶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1회성 이벤트로 시작되지만, 그 이후에는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는 연속적인 개념이 되어야 한다. 수학에서 연속함수는 3가지 정의를 만족해야 한다.

1. 모든 x값에 대하여 f(x)가 존재해야 한다.
2. 좌극한, 우극한의 값이 동일해야 한다.
3. 특정한 x0에서의 함수 f(x0)와 극한값이 동일해야 한다.

연속함수 (출처 : 교학사 교과서)


우리의 신앙의 그래프도 위의 3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연속함수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프의 x축을 시간으로 정하고 y값을 신앙의 정도를 표현했을 때, 우리의 삶의 모든 시간들이 단 하나의 y값을 가져야 한다. 우상숭배를 겸하며 신앙의 대상이 2가지 또는 3가지의 y값을 가지는 순간이 있다면 위의 3가지 조건 중 2번과 3번의 조건이 불만족하게 되어 그래프의 연속성이 깨진다. 반면에, 어느 한순간이라도 신앙을 버린 순간이 있다면, 1번 조건에 위배되므로 신앙 그래프가 연속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 그래프를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가? 증인으로서의 삶은 이 땅에서 생을 마감하거나 휴거 되는 그 순간까지의 신앙 그래프가 연속적인 삶이 되어야 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충만한 삶을 지속하면서, 이 세상에서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 이 가운데 어느 한순간이라도 신앙을 버리거나,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런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삶인 것이다. 증언하는 이가 셋인데, 이 세 가지 모두가 삶 안에 녹아들어 있는 삶을 살아내는 자가 증인인 것이다. 우리 각자의 삶의 신앙그래프를 그려보자. 위의 3가지 연속함수의 조건을 만족하는가? 이런 증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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