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온 인류는 COVID-19로 인해 난생처음 겪는 팬데믹 상황을 경험했다. 이로 인해 사람 간의 교류는 단절되었고, 백신을 통한 통제사회가 눈앞에 펼쳐졌다. 자유를 보장해 주는 백신교라는 신흥종교가 태어났고, 수많은 신도들이 생겨났다. 이 신흥종교에 넘어가지 않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는 극심한 통제가 가해졌고, 교회들은 이런 상황에 대처하고자 온라인 예배로 긴급처방을 했다.
이 상황에 깨어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갈급한 자들은, 삶의 통제로 인해 생긴 '여유 시간'을 갈급한 영을 채우는 '값진 시간'으로 여기고 알차게 생활을 했고, 백신교 신도들은 자유를 만끽하며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통제의 시간을 '값진 시간'으로 채운 이들은 자신의 갈급한 영이 채워진 만큼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선포하고 싶어 졌을 것이다. 다만,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한 통제로 인해, 이 선포를 할 수 있을 때만을 학수고대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는 요한처럼 말이다.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
[요한삼서 1 : 13~14]
이때 당시에는 전화나 문자, 이메일 등의 메신저가 없었다. 직접 대면하여 만나지 않는다면, 글로 쓰는 편지가 유일한 소통의 수단이었을 것이다. 요한은 이런 상황가운데 글로 쓰기보다 직접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대면하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글로 100% 다 표현할 수 없는, 대면하여 복음을 선포할 때의 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강력하게 선포하고 싶은 것이 가득하다는 것이 아닐까?
COVID-19 팬데믹 기간 동안 영적 갈급함을 해소한 이들 또한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려왔을 것이다. 직접 대면하여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이 순간을 말이다. 우리는 얼마나 이 대면의 순간을 학수고대했는지를 점검하자. 전하고 싶은 것이 많을수록 이 순간이 더욱더 간절히 기다려졌을 것이다.
교회학교 교사들은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많은 교사들이 되기를, 교역자들은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많은 교역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대면하여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이 순간을 허비하지 않고 알차게 보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런 요한을 배척했던 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디오드레베'이다.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요한삼서 1 : 9]
이 자는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자이다. 즉, 자신을 높이는 자인 것이다. 자신보다 복음을 잘 전하는 이들에게 질투를 느끼고, 배척하고 비방하고 있다. 이 자가 배척하는 요한과 같이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는 비결은 그만큼 간절히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복음의 시선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저 자신의 인기관리에 급급한 이들은 따라 할 수 없는 절대적인 차이 이다. 유명 강사의 발표자료를 똑같이 만든다고 그 강사와 같이 강의를 할 수는 없다. 이는 강사가 강의를 준비한 시간들을 따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COVID-19 팬데믹 기간에 끊임없이 영적 갈급함을 채워나간 이들과, 통제당하는 이들을 비웃으며 자유를 만끽한 백신교 신도들과는 매울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대면하기를 간절히 바랐던 요한과, 이를 배척한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와 같이 말이다.
우리는 과연 요한과 같은지, 아니면 디오드레베와 같은지를 점검하고, 대면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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