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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사복음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Gospel Barista 2025. 2.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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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라면 주기도문은 수 백번, 아니, 수 천 번은 외웠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주기도문을 이렇게 주문처럼 외우는 게 맞나?'라는 의문이 들고, 주기도문의 한 문장 한 문장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이런 의문이 들정도의 기독교인이라면, 주기도문 대부분의 내용은 그래도 쉽게 이해를 한다. 바로 이 부분만 제외하고 말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And forgive us our debts,
as we forgive our debtors.
[마태복음 6 : 12]

이 부분에서 심한 충격과 함께 멘붕(?)이 온다.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는 '죄 사함'의 문제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주는 행위'에 달려있다는 '조건부 구원(?)'으로 인식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부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충격, 멘붕


"이 구절의 원어를 살펴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주기 위하여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세요!'라는 뜻입니다!"라고 설교를 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실제 마태복음 6장 12절 말씀은 영어(as)와 헬라어(호스) 모두 정확하게 '~와 같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자신의 생각을 잘못된 성경의 원어적 해석기법들을 통해 뒷받침하는 행위는 일반적인 성도들은 히브리어나 헬라어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에 벌일 수 있는 일종의 사기 수법 중 하나이다.

위의 해석이 잘못된 해석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다 알려주신 뒤 바로 이어서 나오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6 : 14~15]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의 내용을 한 번 더 명확하게 반복하신다. 이 구절의 영어(if)와 헬라어(에안)는 더욱더 명확한 조건문이다. 즉,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주기 위하여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세요!"라는 해석은 잘못된 해석이다.

원어 타령


이 구절에 대한 또 다른 해석으로는 '나에게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해 주라는 뜻이겠거니...'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다. 그러면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마무리를 짓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한 근거 말씀으로 마태복음 18장의 10,000 달란트 빚진 자 비유를 제시한다. 이 비유는 임금이 10,000 달란트 빚진 종의 빚을 탕감해 주었는데, 이 종이 자신에게 100 데나리온 빚진 동료의 목을 붙잡고 빚을 갚으라고 하며 옥에 가두었다. 이 소식을 다른 동료들이 주인에게 알렸고, 이 주인은 빚을 탕감해 줬던 종을 다시 옥에 가두고 빚을 갚도록 했다. 결국 큰 빚을 탕감받은 자답게 다른 사람의 작은 빚을 탕감해 주라는 말씀인 것이다. 그런데 이 비유의 흐름은 주기도문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다른 흐름의 말씀이 같은 내용이라고 선포하고 설교를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 비유의 마무리는 이렇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태복음 18 : 35]

이는 주기도문의 흐름과 동일하다. 우리가 먼저 용서를 해야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이와 같이 용서해 주신다는 것이다. 이 흐름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공감이 되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아도 주입식 교육과 같이 닥치고 외워야 하는 구절일까?

내가 용서한 대로 나를 용서해주신다고?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예를 들어보겠다. 부모와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가정을 생각해 보자.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에게 핸드폰을 사줄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핸드폰을 사주는 순간 이 자녀가 핸드폰을 이용한 인터넷, SNS, 게임 등에 빠져서 공부를 뒷전으로 여길 수 있는 Risk가 존재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부모가 다음과 같은 전략을 수립했다.

핸드폰 Risk


엄마가 자녀에게 "아빠한테 가서 "핸드폰 사주면 공부 열심히 해서 학교에서 1등 할게요!"라고 이야기하면 아빠가 핸드폰을 사주실 거야!"라고 이야기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이 아이는 아빠한테 가서 엄마가 말한 대로 핸드폰을 사달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이때 아빠의 정상적인 반응은 "그러면 전교 1등을 한 성적표를 갖고 오면 그때 핸드폰 사줄게!"이다. 사실, 이 반응은 핸드폰을 사주지 않겠다는 반응과도 같다. 이 상황에서 아빠가 이런 반응이 아니라 이미 핸드폰을 사 와서 자신에게 핸드폰 사달라고 요청하는 자녀에게 선물로 줬다고 생각해 보라. 이 아빠의 마음은 무엇이겠는가? "아빠는 네가 전교 1등 할 것을 기대하며 핸드폰을 미리 사줄게. 전교 1등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라는 마음이지 않겠는가?

하나님과 예수님도 우리를 향해 같은 마음일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기도할 것을 알려주셨다. 이 상황에서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계획을 이미 갖고 계셨다. 특히 오늘날의 우리를 향해서는 이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 즉, 우리의 용서하는 행위를 통한 조건부로 구원을 받는 개념이 아니라, 이미 우리를 용서하셨으니 용서받은 자답게 용서하며 살아가라는 마태복음 18장의 비유의 대로의 의미인 것이다.

주기도문


이것이 주기도문에서의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의 진정한 뜻인 것이다.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 죄의 대가를 치르셨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용서받았다. 이미 용서받은 자답게 우리에게 죄를 지은 자들이 회개하고 용서를 구할 때 지체 없이 용서해 주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복된 크리스천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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