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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열심' 이 아닌 '전심' 으로

Gospel Barista 2021. 6. 2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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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저를 사용해주세요!" 우리가 흔히 열정 가득할 때 하는 기도이다. 이런 열정을 갖고 열심히 교회일에 힘쓰며 봉사를 한다. 이런 열정과 열심은 참 귀하다. 하지만 이런 열심이 때로는 본질을 잃어버릴때가 있다. 교회에서 4,5개 부서에서 봉사를 하면서 내가 해야하는 것은 하지않고 무조건 교회일만 한다거나, 열심히 봉사하다보니 피곤해서 예배시간에 졸다못해 자는 경우, 이것저것 하다보니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 등이 그 좋은 예 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이런 모습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일까? 이 열심 가운데 있는 나의 본질을 점검했으면 한다.

누가복음 10장 38절부터 42절에 나오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마르다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한다. 그런데 자기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이 집에 오셨는데 그의 발치에 앉아서 그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집에 대교구장님이나 당회장 목사님이 오신다고 생각해보자. 오시기 전부터 집안 대청소를 하고, 오시면 차 내드리고, 신선한 과일 깎고 예쁘게 썰어서 내드릴것이다. 하물며 교회 목사님이 오셔도 이정도인데, 예수님이 오신것이다. 마르다 입장에서는 가장 좋은 것으로 선별해서 준비를 했을것이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을 대접하는 일에 동생 마리아는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예수님 발치에 앉아서 이야기만 듣고 있는 것이다. 이에 마르다는 예수님께 부탁한다. "예수님. 제 동생이 저를 돕지 않고 저 혼자 일하고 있어요. 동생보고 저좀 도와주라고 얘기좀 해주세요!" 마르다의 말투를 보면 너무나도 당당하다. 즉,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나름의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가히 충격적이다.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 : 41~42]


아니 이게 무슨말씀인가. 예수님이 집에 오셨는데, 왕중의 왕이신 예수님을 대접하는것이 중요한게 아니라는것인가?

예수님은 명확히 말씀하신다.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우리는 예수님이 오신 이유와 그 본질을 정확히 알아야한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 :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0 : 45]


성경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정확히 동일한 말씀으로 우리에게 알려준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것이 아니고 섬기시려고 오셨다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합리적인 생각을 해보면, 마르다의 행동이 옳은 행동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집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다. 섬김을 받으러 오신분이 아니고 섬기려 하고, 심지어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위해 오신 분이다. 이런 분이 집에 오신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한마디라도 더 듣는것이 좋은편이고, 마리아는 이것을 선택한 것이다. 결국 이 마리아는 이 사건 이후 훗날에 예수님의 돌아가심을 예비하며 향유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을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린다. 베드로 마저도 예수님이 십자가형으로 죽으신다고 했을때 "주님! 그리하지 마옵소서!" 라고 외쳤다.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했던 거의 유일무이한 사람이 마리아였던 것이다.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마태복음 26 : 12]


우리의 생각으로는 납득이 잘 가지 않는 마리아의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다음 말씀과 같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6 : 13]


다시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 마르다에게 몇 가지만 혹은 한가지만이라도 족한다고 하신다. 예수님이 집에 왔을때 물 한잔만 대접했다고 가정해보자. 예수님은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다고 하시지만, 주변 사람들의 자신을 향한 시선을 생각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하시고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께 물한잔만 대접했다고? 예수님을 위해서 이것밖에 할 수가 없나?' 이 시선을 생각했다면 최선을 다해 대접하는게 맞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한다고 열심을 갖고 여러가지 봉사를 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한다고 위할 수 있는 존재인가? 결코 아니다! 예수님이 "한가지라도 족하니라" 라고 하신 말씀을 잊지말자.

그렇다면 우리는 '열심'을 앞세우기 전에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바로 '전심'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열심이 아닌, 우리의 진심을 넘어선 '전심' 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사무엘상 7 : 3]


사무엘상 말씀과 같이 우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기 위해서는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우리 중에서 제거해야한다는 것이다. 아스다롯은 가나안인들이 믿는 풍요의 신의 배우자이다. 즉, 이방 신의 배우자이다. 결국은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성경은 이 메시지를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안에 있는 누룩을 제거해야하며, 우상숭배 하지 말고 거룩함을 지키라고 한다. 순결하게 거룩함을 지키는 것. 이것은 단순히 해도되고 안해도되는 선택 가능한 개념이 아닌, 전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전제조건이며, 하나님의 명령임을 잊지 말자.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 : 16]


거룩함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바라보는 자들을 위해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실까?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역대하 16 : 9]


하나님의 눈이 전심으로 향하는 자들을 찾기 위해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신다고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실만큼 애타게 찾고계신다는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우리가 되길 기도한다.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자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푸신다고 한다. 우리의 능력과 하나님의 능력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우리의 열심을 앞세워 우리의 능력으로 이룬 것과, 전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룬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자는 일회성 '열심'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 을 품고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게 된다.

하나님께 전심으로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다윗은 양치던 소년이었다. 어린 양치기 소년이 어떻게 하나님 마음에 합한자로 이 시대까지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리우고 있을까?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사무엘상 16 : 13]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자 다윗의 삶의 원동력은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이다. 나의 열심을 앞세워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아닌,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어, 전심으로 하나님께 향하는 자가 다윗인 것이다. 이 악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번지점프를 해보자! 우리의 생명줄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베풀어 주시며 우리의 삶을 이끄실 것이다. '열심'이 아닌 '전심'으로! 본질을 놓치지 말자!

아버지의 손을 전심으로 붙잡는 아기의 손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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