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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산상수훈

[산상수훈 묵상-007] 팔복 - 마음이 청결한 자

Gospel Barista 2021. 3. 2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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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 째 복은 '마음이 청결한 자' 에게 주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복' 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will see God.
[마태복음 5:8]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은 자들의 특징은 마음이 깨끗하고 순결해질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야 할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까지 해주시는 그 사랑을 입은 자가 어찌 그 마음을 더럽힐 수 있겠는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찰 것이며, 이런 자의 마음은 깨끗하고 순결해진다.

그렇다면, 마음이 깨끗하고 순결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바로 '누룩' 이 없는 상태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마태복음 16:6]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마태복음 16:11]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마태복음 16:12]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마가복음 8:15]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누가복음 12:1]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누룩' 을 주의하라고 하신다. 누룩은 빵을 부풀게 한다. 반죽한 원래 본모습이 아닌 겉으로 부풀어오르게 하며, 그만큼 빵의 속은 빈공간이 생기게 된다. 즉, 100% 꽉찬 상태가 아닌, 겉모습은 크지만 속은 텅텅 빈 상태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시는데, 그 누룩의 정체는 바로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의 교훈인  '외식' 인 것이다. '외식' 이란 '겉으로만 착한체 하는 위선자' 라는 뜻이다. 즉, 부풀어오른 빵과같이 겉으로는 있어보이고 하나님 잘 따르는것 같지만, 그 속은 텅텅 빈 상태가 되지 않게 조심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누룩을 조심해야할까?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고린도전서 5:6~8]


고린도전서 5장 8절에 보면 누룩은 악하고 악의에 찬 것이라고 한다. 즉, 누룩으로 인해 부풀어 오른 부분에는 빈 공간이 생기게 되고,  이 빈 공간에는 어김없이 '악한 것' 이 꿰차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5장 6절을 보면 누룩은 적은 양이라도 온 덩어리에 퍼진다고 한다. 이를 종합해보면, 우리의 삶 가운데 어느 한 부분이라도 외식하려는 누룩이 섞여버리면, 이 누룩이 온 덩어리인 우리의 삶 전체에 퍼지게 되고, 악한 것들이 우리의 삶 전체에 생긴 그 빈공간을 채워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룩을 주의해야한다.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시는데, 이는 우리가 계속해서 누룩을 마음가운데 품고 있거나, 품으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룩을 품고 살아가야하는 존재인가? 우리 삶에 누룩이 필요한가?

고린도전서 5장 7절에 보면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라고 한다. 즉, 우리는 존재 자체가 누룩이 없는 자이며, 우리 삶 가운데 누룩이 필요 없다.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오히려 누룩을 버리라고 하신다. 이는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우리의 삶을 부풀려서 깨끗한 척하며 숨기고 싶은 '죄' 의 대가를 치르셨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위선자의 모습이 아닌, 누룩 없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오히려 외식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를 무시하는 행위이므로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신다. 이에 마태복음 23장에 외식하는 자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 라고 하시는 것이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15]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마태복음 23:16]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태복음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태복음 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마태복음 23:29]


이렇게 누룩을 버리고 마음이 깨끗한 자들이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리게 된다. 여기서 '보다' 라는 단어의 히브리어 원어는 '호라오' 이다. 이것은 '눈을 통해 인지해서 보다' 라는 뜻도 있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라는 뜻도 있다. 또, 확장된 의미로 '무엇인가 경험으로 보다' 라는 의미도 있고, '정신적으로, 또는 내면적으로 보다' 라는 뜻도 있다. 즉,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를 인지하고 바라본다는 것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거룩한 이를 보기 위해서는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라는 말씀 그대로이다. 이 말씀은 결국 "너희가 거룩해야 나를 볼 수 있다" 라는 것이며, "너희를 보고싶다! 너희를 만나고 싶다!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라고 외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녹아들어가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기 원하신다. 잊지 말자.

이 여섯 번 째 복 또한 십자가의 관점에서 바라보자. 십자가 사랑으로 긍휼히 여기고,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은 자는 '죄' 의 대가인 십자가가 결코 만만하고, 여러번 반복해서 치를 수 있는 대가가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알게된다. 이런 자들은 '죄' 를 멀리하게 되고, 거룩함을 지키며 마음이 청결하게 되며, 이렇게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믿게된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혀 돌아가실 때,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마음이 청결한 자가 누리게 되는 하나님을 보는 복인 것이다.

 

청결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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