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수많은 이들의 순교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섬뜩한 말씀을 하신다.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무덤을 만드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누가복음 11 : 47~51]
아벨은 최초의 순교자이며, 사가랴는 남유다 요아스왕 시대 때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로 우상숭배를 꾸짖다 죽임당한 구약의 마지막 순교자이다. 구약시대의 모든 순교자의 피값을 '이 세대' 가 담당한다고 선포하시는 것이다. 이 무슨 어마무시한 선포란 말인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벨의 죽임에 무슨 책임이 있다고 아벨의 피값부터 이들에게 담당하게 하시는 것인가?
기독교인들의 순교와 핍박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바라보시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왜 하나님께서는 믿는자들이 핍박받고 순교하는 것을 허락하실까?
구약시대의 제사법을 통해 이를 알아보자. 이번 묵상의 이해를 위해 중요한 부분만 살펴보면, 제사에는 제단이 있고, 제사를 드리는 제사자, 제사에 관여하는 제사장, 그리고 이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그리고 흠 없는 제물이 필요하다.
제사자가 흠 없는 제물을 조심스럽게 데리고 오면, 안수를 한다. 그리고 제물을 직접 죽인다. 그 피를 제사장이 뿌리고 남은 피를 제단 아래에 붓는다. 그 후 제물을 제단에서 태우고, 하나님께서 이를 흠향하신다.
죄인인 제사자가 흠 없는 제물에 안수할 때 제사자와 제물 사이에서 1가지씩 맞교환이 이루어진다. 바로 '죄' 와 '흠 없음' 즉, '거룩' 이다. 죄인의 죄가 제물에 전가되고, 제물의 '흠 없음' 이 제사자에 전가되어, 하나님께서 제사자는 거룩하게 여겨주시고, 제물, 즉, 죄를 불태우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불태우기 때문에 이를 기쁘게 흠향하시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로마시대 때, 기독교인들이 도미티안 황제에 의해 엄청난 핍박받는 상황 가운데 주어진 말씀이다. 이 시기에 핍박받고 죽어가는 기독교인들, 즉, 순교하는 기독교인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바라보시는지가 5째 인을 떼시는 장면에서 정확히 나온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요한계시록 6 : 9]
순교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다고 하신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제단 아래에는 제물의 피가 부어지는 곳이다. 이곳에 순교당한 이들의 영혼이 있다는 이야기는, 순교당한 이들을 제물로 받으시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제물을 죽이는 제사자는 누구인가? 바로 순교한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죽인 이들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로마가 될 것이며, 누가복음에서는 선지자의 무덤을 만들었던 바리새인들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사장은 누구인가?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히브리서 5 : 5]
그리스도, 즉,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이 되신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순교를 제사의 형태, 즉, 예배로 받으신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자들을 거룩하게 회복시키시려는 큰 그림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들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제사를 지낸 제사자는 제물인 소나 양을 직접 죽이며 피범벅이 된다. 죄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체험하게 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결단을 하게 된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자들을 죽여왔지만, 죄를 끊어내기위한 결단을 하기는 커녕, 다음 제물의 사냥을 시작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렇다면 제물로 희생된 이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핍박과 순교를 당하는 그 순간에 이 모든 제사의 형태를 이해하고 있었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심정이 요한계시록에 그대로 표출되고 있다.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요한계시록 6 : 10]
제발 자신들을 핍박하고 죽였던 이들에게 자신들의 피를 갚아달라고 애원하고 사정한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간청을 묵살하실까? 그렇지 않다. 여섯째 인을 떼실 때를 보라. 철저하게 그 피를 갚아주신다.
제물의 조건은 흠 없음, 즉, 거룩이다. 하나님께서 핍박과 순교를 허락하시는 이유는 이들을 거룩하게 여겨주셨기에, 이들을 핍박하는 자들까지도 회복시키고 싶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많은 흠 없는 제물을 희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회복하지 않으면, 지금까지의 순교자의 피를 '이 세대' 에 갚으신다.
대한민국은 조선시대에 복음이 들어오면서 수많은 순교자가 발생했다. 북한에서는 지금도 순교자가 하루하루 속출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회복하지 않으면, 이 피를 대한민국 '이 세대' 에 갚으신다. 감당할 수 있겠는가?
스데반이 순교당하는 그 시점에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을 바라본다. 그 때 예수님의 모습이 어떠셨을까?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사도행전 7 : 55]
하나님 우편에 서계시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는 장면은 많이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서계신 장면은 거의 없다. 예수님께서 스데반의 순교를 예수님께서 보좌에 앉아계시지 않고 서서 스데반을 바라보고 계신 것이다. 이것이 순교당하는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태도이다.
조선 땅에서 죽어가는 토마스 선교사, 자신에게 1000개의 생명이 있으면 조선을 위해 바치겠다던 루비 켄드릭 선교사 등 수많은 선교사들이 죽어나갈 때 예수님께서 어떠셨을까?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않으실 틈이 없지 않았을까? 이들의 희생을 통해 조선, 지금의 대한민국을 회복시키고자 하셨는데, 지금의 대한민국은 더 악한 짓을 일삼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교회 개척은 불가능해졌고, 있는 교회마저도 폐쇄시키고 있다.
누가복음의 말씀이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이어지기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곧 아벨의 피로부터
조선에 첫 발을 내딛자 마자 죽임당한
토마스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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