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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집을 짓고싶은 주의 종 다윗의 터닝포인트 - 3

Gospel Barista 2021. 8. 26.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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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본격적으로 다윗의 후계자에 대해 예언을 해주신다.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He is the one who will build a house for my Name,
and I will establish the throne of his kingdom forever.
[사무엘하 7 : 13]


우선, 다윗의 후계자가 '집' 을 지을 것이라고 명확하게 선포하신다. 얼핏보면 다윗이 여호와의 궤가 거할 집을 지으려고 했던 생각과 동일하게 보일 수 있으나, 다윗이 생각한 '집' 과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다윗의 후계자가 지을 '집' 에는 차이가 있다. 다윗이 생각한 '집' 은 여호와의 궤, 즉, 하나님께서 거할 처소를 지으려고 한 것이다. 반면에, 다윗의 후계자가 지을 '집' 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짓는 것이다. 그러기에 영어성경에도 'for my Name' 이라고 Name 을 강조하고 있다. 이 미묘한 차이는 무엇일까?

이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의 차이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이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위한다고 위할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 이다. 스스로 있는 자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까?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주기를 바라고 계실까? 택도 없는 소리이다. '하나님을 위한다' 라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를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로마서 말씀에 '주를 위하여' 라는 표현이 나온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If we live, we live
to the Lord;
and if we die, we die
to the Lord.
So, whether we live or die, we belong to the Lord.
[로마서 14 : 8]


이 말씀의 영어성경을 보면 "To the Lord" 이다. "For the Lord" 가 아니다. 즉,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는 것이 아닌, 주님을 '향해' 살고 죽는 방향성을 나타내고 있는 말씀인 것이다. 즉, 우리의 삶과 죽음의 방향성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라는 것이다. 방향성의 문제는 바로 '죄' 의 문제이다. '죄' 의 헬라어가 '하마르티아' 인데 '과녁에서 벗어나다' 라는 뜻으로, 죄는 바로 방향성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가 죄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지,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라는 말씀이다.

내가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은 내가 그 대상보다 높아질 수 있다.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를 보자. 자녀가 어릴 때에는 실질적인 '위함' 은 부모가 자녀에게 행하며 양육한다. 그러다가 자녀가 성장하고 어른이 되면 부모가 쇠약해져, 자녀가 부모를 위하며 살아간다. 물론, 자녀가 어릴 때 부모님을 위하여 편지도 쓰고 꽃다발도 선물하지만, 실질적인 '위함' 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와 동일하게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간다는 이야기가 얼마나 위험한 이야기인지 깨달아야 한다. 착각하지 말자. 하나님은 우리가 위한다고 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리가 하나님보다 높아지는 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렇다면 후자인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라고 하신 부분을 살펴보자. 하나님께서는 '이름' 에 집착을 많이 하신다.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셨다. 어떤이에게는 뜬금없이 게바(베드로)라고 하시기도 하셨다. 이렇게 이름에 집착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름이 바로 그 사람의 '정체성' 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라는 것은 '여호와의 정체성을 위하여' 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정체성' 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I am who I am)' 로 밖에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스스로 계신 분' 이라는 하나님의 이름 자체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 을 나타내며, 이것이 '하나님의 정체성' 이다. 간혹, '사랑의 하나님', '찬양받기 합당하신 분', '공의의 하나님' 등 다른 말로 하나님을 표현하기는 하지만, 이는 하나님을 100% 담아낼 수 있는 표현은 아니다.

그러면 '스스로 계신 분' 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세상은 창조주 한 분과 와 그 창조주의 사랑의 대상인 피조물로 나뉘어진다. 이는 명확한 진리이며, 어떤 누구도 이를 부정할 수 없다.
'스스로 계신 분' 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 이 아니라는 것이며, 유일하신 참된 '신' 임을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라는 것은 '유일하신 창조주이신 참된 신은 하나님임을 드러내기 위하여' 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후계자가 이를 위하여 성전을 지을 것을 말씀해주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말씀을 스데반 집사가 설교를 통해 명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바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사도행전 7 : 46~50]


다윗이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려고 했으나, 결국 다윗의 후계자인 솔로몬이 지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극히 높으신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곳에 계시지 않는다고 명확히 선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거하실까?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한복음 2 : 21]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린도전서 3 : 16]


하나님의 성전은 결국 우리 자신이다. 예수님께서도 성전된 육체에 대하여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셨다. 즉,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께서 거하실 궁극적인 하나님의 성전은 우리 스스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원리인 것이다. 즉,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거룩하게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것일까? 다시 말해, 어떤 집을 짓는 것이 유일하신 창조주인 참된 신은 하나님임을 드러낼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예배하는 집'이다. 이 세상에서 예배를 받으실 수 있는 분은 유일하신 참된 신이신 하나님 외에는 없다. 즉, 하나님이 하나님임을 드러내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께 예배(제사)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의 후계자인 솔로몬이 단순한 왕궁을 지은 것이 아니라 성전을 지은 것이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예배자의 삶이야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계자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지을 것을 말씀해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다윗 후게자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신다고 약속의 말씀을 이어가신다. 다윗은 사울이 하나님을 버려서 하나님 앞에서 내쳐짐을 당하는 모습을 직접 본 당사자 이다. 이런 다윗은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후계자의 왕권도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걱정거리를 약속의 말씀으로 한방에 날려주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영원히' 이다. 다윗은 자신의 후계자에 대한 걱정이 있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해주시겠다면서 하나님의 스케일을 보여주신 것이다. '영원히' 라는 단어는 단순히 '오랫동안' 의 개념이 아니다. 말씀 그대로 '영원히' 는 천국 이후까지의 '영원히' 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원히' 라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로 가능한 것이다. 다윗의 자손으로 '예수 그리스도' 가 오시고, 예수님께서 진정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며 준비해주시는 여호와 이레의 모습이다.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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