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승전보를 울리며 승승장구하던 시기의 이야기이다.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30,000명을 다시 불러모았다. 그 목적은 다음과 같다.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사무엘하 6 : 2]
즉, 여호와의 궤를 자신이 있는 곳으로 가져오기 위함이었다. 우선, 이 말씀에서의 '바알레유다' 는 사무엘상 7장1절의 '기럇여아림' 과 같은 곳이다. '바알레유다' 는 '유다의 바알' 이라는 뜻으로 이스라엘 안에 있는 '바알' 을 강조하는 이름이다. 그런데 왜 굳이 성경은 이곳을 '바알레유다' 라고 했을까? 이는 여호와의 궤가 '기럇여아림' 의 아비나답의 집으로 들어가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함으로써 아무 탈 없이 여호와의 궤가 그곳에 머무르기 시작한 상황과, 지금의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가져가려는 상황을 대조적으로 다른 상황임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이어지는 말씀이 더 공포스럽다.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그룹' 은 라이프성경사전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존재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존엄과 거룩을 파수하는 일종의 호위 천사를 가리킨다(출 25:18). 이 천사들은 하나님의 엄위하심과 지존하심 및 그분의 능력의 탁월하심을 강조할 때 주로 등장하는 영적 존재로서 하나님의 보좌를 지키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이외에도 그룹은 에덴 동산에서 생명나무를 지키는 수호자로(창 3:22-24), 언약궤를 지키는 존재(출 25:18-20)로 나타난다. 따라서 그룹은 성전의 성물에 많이 새겨져 있는데, 성전 지성소의 법궤 위 속죄소에는 그룹 둘이 서로 마주보며 날개로 속죄소를 덮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민 7:89; 삼상 4:4; 히 9:5). 또, 성막의 네 덮개 중 가장 안쪽에 위치한 첫 번째 덮개에(출 26:1), 지성소를 가리는 휘장 위에(출 26:31) 청색 자색 홍색실로 수가 놓아져 있다. 이는 솔로몬 성전(왕상 6:23-28; 대하 3:14), 에스겔 성전(겔 41:17-25)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즉, 그룹은 하나님의 보좌, 언약궤, 생명나무 등을지키는 천사이다. 그런데 여호화의 궤가 이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여호와의 궤에게 접근했다가는 그룹들에 의해 죽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즉, 이 여호와의 궤를 옮기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룩하게 구별되지 않으면 옮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윗은 이런 준비가 되어 있었을까? '왕' 으로써 30,000 명을 뽑아서 가면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고 계신 여호와께서 기쁘게 바라보실까?
다윗의 이런 모습을 역대상 13장에서 조금 더 자세히 다뤄주고 있다.
다윗이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지휘관과 더불어 의논하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좋게 여기고
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
우리가 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와
또 초원이 딸린 성읍에 사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전령을 보내
그들을 우리에게로 모이게 하고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역대상 13 : 1~3]
다윗이 지휘관들을 모아서 '이스라엘 온 회중이 좋게 여기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사람들을 불러모아 여호와의 궤를 가져오자고 제안을 한다. 그 이유는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다. 즉, 사울이 왕인 시절에는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에 있었으니, 하나님의 뜻을 여호와의 궤에게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을 문제제기 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사울의 문제점이 여호와의 궤에게 묻지 않았던 것이었을까?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사무엘상 15 : 2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사무엘상 15 : 26]
사울의 문제점은 '여호와의 말씀을 버린 것' 이다. 여호와의 궤에 묻지 않은 것이 아니다. 사울은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에 여호와의 궤가 있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았을 것이다. 다윗은 사울이 왕에서 끌어내려지고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알고 있었다. 이런 사울의 전처를 밟지 않기 위해 사울이 왕인 시절의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울의 문제점을 잘못 짚은 것이다.
다윗이 제안한 2가지 조건도 살펴보자.
'이스라엘 온 회중이 좋게 여기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선, 다윗이 제시한 첫 번째 조건은 대중의 의견이다. 즉, 우선순위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것 보다 대중의 눈치를 먼저 신경쓰는 것이다. 이는 백성을 두려워했던 사울의 모습과 같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사무엘상 15 : 24]
하나님을 경외하는 리더라면 백성들이 싫어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를 따라야한다. 하지만, 다윗은 백성들의 뜻에 집중하여 일을 진행하려고 한 것이다.
두 번째 조건은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인데, 실질적으로 제단을 쌓는다거나 기도를 하는 등의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행동은 하나도 없었다. 즉, 실질적으로 '하나님의 뜻' 을 구하는 척 하면서, 대중을 그럴싸하게 설득하여 자신의 뜻대로 여호와의 궤를 가져오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백성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뭇 백성의 눈이 이 일을 좋게 여기므로
온 회중이 그대로 행하겠다 한지라
[역대상 13 : 4]
백성들이 이 일을 좋게 여기고 그대로 행하겠다고 다윗의 생각에 동의를 했다. 여호와의 궤가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의 땅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거의 만장일치로 백성들이 동의 했을 것이다. 이로인해 여호와의 궤 수송작전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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