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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사복음서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갈등

Gospel Barista 2021. 9. 12.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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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7장은 예수님을 믿는자와 믿지 않고 죽이려는 자들간의 갈등으로 가득하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주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증거삼아 예수님이 그리스도 이심을 믿고 있는 상황이다.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요한복음 7 : 31]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의 주축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다. 이들은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하며, 예수님을 잡아오라고 아랫사람들을 보냈다고 한다.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The Pharisees heard
the crowd whispering such things about him.
Then the chief priests and the Pharisees
sent
temple guards to arrest him.
[요한복음 7 : 32]

'아랫사람' 이라고 표현되어 있어서 자신들의 비서쯤 되는 이들을 보내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영어성경을 보면 'Temple Guards' 로 되어있다. 즉, 성전을 지키는 경비병을 보낸 것이다. 어쨌든, 이 경비병들은 결론적으로 예수님을 체포하지 못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명령은 지금으로 따지면 체포영장이었을텐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요한복음 7 : 46]

성전을 지키는 경비병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설교를 들어봤겠는가. 이들의 증언이 지금까지 예수님이 말씀하심 같이 말하는 이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이에 대제사장의 체포명령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잡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전을 지키는 경비병의 거룩한 양심이 당시의 권력의 실세인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명령을 꺾어버린 것이다.

이런 경비병들을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미혹' 된 자로 분류하며 저주를 퍼부었다.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요한복음 7 : 47~49]

이 때 예수님께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들은 니고데모가 등장하여 이들에게 당당히 맞서 싸운다. 이에 질세라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니고데모의 주장에 답변을 피하며 자신들의 논리를 펼치며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며 지역감정을 끌어올린다. 그리고 이 다툼이 끝난 후 모두 각자의 집으로 되돌아갔다.

이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갈등의 흐름을 보라. 절대 어느 한 쪽 물러서지 않는다. 다만,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명백한 증거가 있다. 바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동안 성전에서 선포하신 말씀들이다. 괜히 예수님께서 '증인' 이 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은 객관적인 증거 또는 팩트가 아닌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고 있다. 심지어 자신들과 반대편에 서는 이들을 미혹된 자로 여기며 저주까지 퍼붓고 있다.

이렇게 보면 마치 예수님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들의 갈등으로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내막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들이다. 즉,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들끼리 예수님의 정체를 놓고 심한 갈등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 갈등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발생하고 있다.

성경에 분명히 유월절 어린양 예수님는 승천하셨으며, 신랑되실 예수님께서 거룩한 신부들을 데리러 공중재림을 하시고,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을 심판하러 지상재림을 하신다고 선포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전염병이 돌고, 지진이 나며,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고, 난리와 난리소문을 들을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지금 이 시점에 어느하나 성취되지 않은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 성취된 예언들을 증거삼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다시 오신다는 것을 증언하는 증인들과 선포들이 넘쳐나야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이런 선포를 외치면
"야... 세례요한때도 마지막때라고 했어...", "기후변화 때문에 잠시 지구가 아파하는거야. 탄소배출이나 줄일생각해..." 이와같은 반박에 부딪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은 예수님을 그저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 유월절 어린양으로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다.

착각하지 말자.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이것은 명백한 진리이며, 이것이야 말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자 은혜이다. 하지만, 여기에만 머물러 있다면 예수님의 정체를 반쪽만 알고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휴거되는 교회들에게는 신랑되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자 왕으로써 이 땅을 심판실 분이시다. 이것이야 말로 유월절 어린양 예수님의 은혜 입은 자로써 우리가 바라봐야하는 예수님의 정체인 것이다.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갈등은 예수님께서 지상재림 하셔야 종결이 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때가되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며 이 갈등이 마무리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집은 어디일까? 다시 말해, 신랑되실 예수님을 거룩하게 기다리는 신부들의 집은 어디일까? 바로 신랑이 예비해놓은 집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에 대한 올바른 증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휴거' 를 통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휴거되지 않은 자들, 즉, 땅에 속한 자들은 자신들의 이 땅의 집으로 돌아가 7년 대환란을 직격탄으로 감당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이 차이가 우리가 돌아갈 집을 결정한다. 공중에 들리우며 영광스러운 휴거에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남겨진 자로써 땅에 속한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예수님의 정체성 논쟁을 하기 전에 우리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자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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