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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복음 다방' 입니다

말씀 묵상/성경 인물전

아모스 -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Gospel Barista 2021. 9.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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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선지자는 약간 이력이 특이하다.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아모스 1 : 1]

드고아 목자 중 한 사람인 아모스가 하나님께 받은 마음인데, 드고아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진 곳이다. 즉, 남유다 사람인데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받은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남한 사람인데 북한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북한에 가서 그 마음을 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오죽 돌이키지 않았으면 남유다 사람을 통해서도 선포하게 하셨을까? 아모스 입장에서는 목숨걸고 선포해야하는 상황인데, 이 말씀에 순종한다. 목숨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아모스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마지막때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모스는 하나님께 어떤 마음을 받았을까? 그 축약본이 아모스 1장 2절 말씀이다.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아모스 1 : 2]

하나님께서 부르짖으시고 절규하고 계신 것이다. 그 이유는 3절부터 이어지는 말씀인데, 말씀하시는형식이 다 똑같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다메섹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음이라
[아모스 1 : 3]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느 지역의 3~4가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는데, 그 죄가 어떤것인지 설명을 해주신다. 그 후 어떻게 벌하실지를 명확히 말씀해주신다.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겠다' 라고 하지 않으시고,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라고 표현하신다. 즉, 하나님께서는 벌을 내리시고 싶어하시는것이 아니라 벌을 돌이키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각 지역마다 3~4가지 죄가 있어 어쩔 수 없이 벌을 돌이키지 못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죄에서 돌이켜 다시 전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하나님께서도 벌을 돌이켜주실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벌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자.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떨까? 마음 찢어지시고 펑펑 울고계시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벌하시는 지역은 다메섹, 가사, 두로, 에돔, 모압, 남유다, 북이스라엘 이다. 즉,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 모두 벌하시겠다는 것이다.

특히, 다른 지역과 다르게 아모스 2장 6절부터 북이스라엘을 향한 죄를 더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벌하시는 상황을 묘사해주고 있다. 그 가운데, 남유다 선지자 아모스를 세우신 이유가 명확히 말씀하신다.

또 너희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너희 청년 중에서 나실인을 일으켰나니
이스라엘 자손들아 과연 그렇지 아니하냐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나실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또 선지자에게 명령하여
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아모스 2 : 11~12]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에 선지자와 나실인을 세우셨는데,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나실인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전해야하는 선지자들에게 예언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선지자가 하는 예언은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보여주시고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아모스 3 : 7]

세상이 타락해가고 죄로 가득한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복음' 인데, 세상은 이를 선포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 무조건 세상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세상이 못하게하고 넘어뜨린다고 넘어지는 선지자들도 문제다. 세상을 이미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담대하게 선포하면 이길 수 있는데, 눈 앞은 상황만 보고 담대하게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기에 하나님께서 목숨다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아모스를 세우시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지금, 각종 이단과 더불어 WCC등 다양하게 하나님을 배도하고 있다. 우상숭배한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 이를 발판삼아 더 심하게 배도하고 있다. 이 가운데 말씀 그대로의 복음을 선포하는자가 있는가? 그 이전에 나는 이를 선포하고 있는가?

아모스 4장 까지는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벌하시겠다는 강력한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신다. 그 미지막을 이렇게 장식하신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보라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이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니라
[아모스 4 : 12~13]

죄악 가득한 북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선포하신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만나기를 준비해라. 죄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이미 확정되었으니 각오해라'

죄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이미 확정되었지만,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 또한 아모스 5장부터 쏟아내신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애가로 지은 이 말을 들으라
[아모스 5 : 1]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애가, 즉, 슬퍼하는 노래이다. 하나님께서 죄에서 돌이키지 않은 북이스라엘 민족을 보시고 죄를 심판하시지만,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슬피 울고계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살 방법을 알려주신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아모스 5 : 4]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살기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의 개념이 아니고, 유일무이한 구원의 길인 것이다. 아모스서에 보면 어디 한군데 벌하지 않으시는 곳이 없다. 즉, '옆의 나라 의지하지 말고 나만 바라봐라!' 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놓치지 말자.

아모스는 북이스라엘 사람들의 죄악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아모스 5 : 7]

공의의 하나님 앞에서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고 공의를 땅에 던져버렸다는 것이다. 입에 쓴 쑥을 먹지 않고 뱉어내듯이 정의를 배척하고, 죄를 향해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함 없이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던 것이다. 이들이 회복해야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But let justice roll on like a river,
righteousness like a never-failing stream!

[아모스 5 : 24]

정의라는 것은 물과 같이, 높은 곳에서 흘러내려와야 한다. 즉, 정의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며, 인간이 정의를 정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정의에 입각한 공의의 심판이 반드시 있는데, 마르지 않는 강과 같이 하나님의 공의가 순탄하게 흘러내려가야한다는 것이다. 영어 성경을 보면 "a never-failing stream!" 이다. 절대 실패가 없는 하나의 흐름이다. 흐름이 끊기거나 흐름이 과해서 여러방향으로 퍼지는 것이 아닌, 꾸준하게 흘러가는 하나의 흐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의' 라는 흐르는 물줄기는 '정의' 라는 강줄기를 따라 흘러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오는 '정의' 와 그 '정의' 대로 행하는 '공의' 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정의' 에 입각한 '공의' 의 심판을 행하신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없도록,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순탄하게 흐르게 하자. 하나님을 경외하자. 이것이 믿음의 시작이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찢어지신다. 하나님 마음 그만 아프게 하자.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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