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명령은 참으로 기이하다.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호세아 1:2]
거룩하고 순결하신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라고 하신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작은 모형이 되는 가정을 이루는데, 거룩하고 순결한 여인이 아닌, 창녀와 결혼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호세아는 하나님의 이 말씀에 자기 생각과 말을 앞세우지 않고 순종한다.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호세아 1 : 3]
과연 호세아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결혼이 장난도 아니고, 쉽게 번복할 수 있는것도 아닌데, 결혼의 대상으로 음란한 여자인 창녀를 찍으신 것이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호세아는 원망이나 불평, 불만 없이 그대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의 이름을 통해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쏟아질 것을 알려주신다. 이런 자녀들을 향한 호세아의 호칭은 이것이다.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Say of your brothers, 'My people,'
and of your sisters, 'My loved one.'
[호세아 2 : 1]
한글 단어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영어성경을 보면, 아들들에게는 My People, 딸들에게는 My Loved One 이다. 즉, 내가 사랑하는 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호세아를 통해 보여주시고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자녀들을 이렇게 부른 호세아는, 그 자녀들의 어머니이자 음행을 행했던 자신의 아내를 향해 그 음행의 댓가가 치뤄져야함을 강력하게 선포한다. 하지만, 그 뒤에 있는 호세아의 고백을 보면 또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호세아 2 : 19~20]
이것은 호세아의 혼인선서이다. 이 음행한 여인과 영원히 살건데, 공의, 정의, 은총, 긍휼을 기반으로 결혼을 하며, 진실함으로 결혼하여, 음행한 여인이 하나님을 알도록 이끌겠다는 선서인 것이다.
이 선서에 기반한 호세아의 음행한 여인을 향한 사랑고백은 다음과 같다.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호세아 3 : 3]
즉, "나만 바라봐라! 나도 그리하겠으니, 과거의 삶에 잡혀있지 말고 나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알아가자!" 라는 것이다.
호세아서의 흐름을 보면, 이런 호세아의 고백 다음 부터는, 북이스라엘을 향해 예정되어있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선포한다. 이 때 당시 북이스라엘은 전성기 시대를 보내고 있었다. 그 가운데 이렇게 이끌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기 보다는, 우상을 숭배하며, 음행하며, 하나님 앞에서 엄청난 죄악들을 쌓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북이스라엘이 이렇게 까지 하나님을 배도하게 된 이유를 성경은 명확히 알려준다.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호세아 5 : 4]
음란한 마음이 있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되고, 이렇게 되니 이들의 행위는 당연히 죄악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이렇게 죄악으로 가득한 북이스라엘을 향한 호세아의 눈물겨운 외침은 "하나님을 알자!" 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호세아 6 : 3]
그냥 적당히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힘써 여호와를 알자!" 이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알아가려고 하는 삶이 죄악 가득하고 하나님 앞에서 음행한 북이스라엘을 향한 호세아의 외침이자 하나님의 외침이다.
"제발 나를 알아다오... 음란한것으로 마음을 채우지 말고... 제발 나를 바라보고 나의 마음을 알아다오..."
이런 하나님의 간절한 외침인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쏟아질 것이 예언되고 있는데, 죄인들을 다 혼내고 이 땅에서 다 쓸어버리는것이 하나님의 마음일까?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호세아 11 : 8]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죄악된 북이스라엘을 쓸어버리는것이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은 '거룩' 그 자체이기 때문에 '죄'를 보시면 그 진노의 잔을 그 죄 위에 쏟으실수 밖에 없는 존재이시다. 그래서 진노를 쏟으시기 전에 친구인 선지자들에게 그 마음을 전하시고 선포하게 하신다. 그 목적은 '다 죽여버리겠다!' 가 아니고, "나는 너를 놓을 수 없다. 죄를 향해 진노를 쏟을지라도 나는 너를 버릴 수 없다! 내 안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어서 내가 너를 놓을 수 없다! 제발 돌이켜다오!!" 이다.
이것이 호세아의 선포를 통해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북이스라엘을 향한 마음이다. 이런 관점에서 다시 호세아의 아내를 보면, 음행한 여인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음행한 북이스라엘 사람들과 같다.
"이미 음행한 북이스라엘이지만, 돌이켜다오. 지금부터라도 순결한 나의 아내가 되어다오."
이와같은 하나님의 북이스라엘을 향한 마음을 호세아의 결혼을 통해서 보여주신 것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보자. 호세아와 동명이인이 성경에 등장한다.
이는 모세가 땅을 정탐하러 보낸 자들의 이름이라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불렀더라
[민수기 13 : 16]
바로 여호수아이다. 즉, 호세아와 여호수아는 같은 이름이며, 이름의 뜻도 같다. 그 뜻은 '구원자' 이다. 성경에서 진정한 구원자는 누구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그렇다면 호세아의 신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볼 수 있으며,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죄인된 우리. 하나님 앞에서 음행 가득한 우리. 하나님 알아가기보다 세상 문화를 더 바라보는 우리. 하나님께 전심으로 나아가기보다 세상을 향해 전력질주해나가는 우리.
호세아서의 창녀 고멜은 북이스라엘이자 우리의 모습이다. 신랑되시는 예수님께서 이런 창녀와 같은 우리를 신부로 맞이하고 싶어하신다.
호세아서에서 표현하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사랑고백에 보답하는 우리가 되자. 창녀와 같은 우리지만, 지금부터는 순결한 신부로 나아가자. 아래 말씀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읽어보며, 하나님 마음을 알아가는데 힘쓰는 우리가 되자.
에브라임(OOO)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OOO)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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