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서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피고인은 피의자의 신분을 유지한다. 즉, 재판이 확정될 때 까지는 범인이 아니며, 죄인이 아니다. 그러기에 피의자는 법정에서 자신은 죄가 없음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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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연쇄살인범이나 정치범들의 재판과정을 보면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향해 따가운 시선을 보내며 욕하기 바쁘다. 하지만, 이들도 결정적인 증거가 있는 경우에는 그 범죄를 시인할 수 밖에 없다.
이와 동일한 상황이 요한복음 15장 22절에 펼쳐진다.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15 : 22]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죄' 에 대해서 명확하게 선포하셨다. 이는 법정에서 피고인인 우리의 죄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신 것이다. 정작 죄인인 우리가 연쇄살인범과 같이 뻔뻔하게 목을 곧게 세우고 하나님 앞에서 무죄임을 주장하고 있지는 않는가?
예수님께서는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라고 명확하게 선포하셨다. 즉, 예수님의 말씀 자체가 우리의 죄를 명확하게 증명하는 증거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누가복음 5 : 8]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8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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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와 마태는 모두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죄를 시인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첫 걸음이다. 명백한 증거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무죄로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씀되시는 예수님을 믿는다면 베드로와 마태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명백한 증거 앞에서 괜히 우기면 괘씸죄가 추가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몸소 우리의 죄의 증거가 되셨을까?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 : 13]
그것은 바로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스스로 죄인임을 시인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꿇는 이들을 부르러 오신 것이다. 죄인을 어떻게 부르시고 계실까? 아니, 어디로 부르시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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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바로 죄인이 들어갈 감옥이 아닌, 죄인으로써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거룩의 결정체인 하나님 나라이다. 하지만, 대제사장도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는 상태로 지극히 거룩한 지성소에 들어가면 즉사했다. 어떻게 죄인이 지극히 거룩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는 우리의 죄를 명확하게 증명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우리의 죄의 대가를 치르셨기에 가능하게 되었다. '죄의 삯은 사망' 이다. 즉, '죄' 는 무조건 '삯' 이 치뤄져야 한다. 이 대가를 우리 죄의 증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십자가형을 통해 치르신 것이다.
우리의 죄를 증명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의 대가를 직접 치르시면서 우리를 죄인이 아닌 의인으로 여겨주시는 것이다. 우리의 죄의 대가는 치뤄졌으니, 우리에게서 죄를 더이상 찾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외치는 증인인 것이다.
이것이 '은혜' 라는 것이다. 죄인일 수 밖에 없는 우리이다. 하나님 앞에서 어찌 감히 얼굴을 들 수 있겠는가? 이런 우리에게 오히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은혜' 아니면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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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증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셨다. 은혜 입은 자로써 어찌 우리가 이 명령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다만, 예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가 죄인으로써 살아가도록 만드는 증인이 되신 것이 아니다. 죄인인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만드는 증인이 되셨다는 것을 놓치지 말자. 그렇다면 우리도 이와 같은 증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랍시고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는 죄인들의 죄만 증명하며 죄인들의 수를 늘려서 감옥의 수가 부족하게 만드는 증인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나게 하여 죄인의 수가 줄어들게 만드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세상을 밝히 비추며 어둠을 빛으로 밝혀내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썩어가는 세상이 더 이상 썩지 않도론 소금으로써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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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이 증인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인으로 여겨주시는 이들을 데리러 오실 것이다. 더 나아가 스스로 의인이 된 죄인들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명확하게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라고 대법관 취임식의 취임사와 같은 선포를 하셨다. 이 땅에서 은혜입은자 답게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 순간에 일절 핑계를 허용하지 않으시는 판사 앞에 긴장하며 앉아있는 피고인이 될 것인가? 지혜로운 선택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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