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생명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 이유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는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을 논하는데, 그 대상의 수가 몇 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한 사람이라도 그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예수님을 심문한 대제사장인 가야바를 향한 성경의 한줄평은 다음과 같다.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요한복음 18 : 14]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대중을 위한 한 사람의 죽음을 유익하게 여기는 이 관점은 우리가 살아가고있는 21세기에도 만연해있다. 한 여성의 인생의 자유를 위해 태아를 죽이는 낙태를 허용하자는 사람들, 사람의 계급을 나누고 노예로 부리는 사람들, 돈을 위해서 인신매매를 하는 사람들 등 모두 근본적으로는 한 사람의 죽음을 자신을 위하여 또는 대중을 위하여 유익하게 여기는 관점의 열매들이다. 희생 당하는 그 한 사람이 자신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못하나보다.
이런 세상 가운데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어떤 관점을 갖고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할까?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마태복음 18 : 12~13]
100 마리의 양 중에서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소중히 여기시는 것이 목자되시는 예수님의 관점이다.
어두운 가야바의 관점이 뒤덮는 이 세상 가운데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으로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 비춰내야 하지 않겠는가? 다만, 이 세상은 빛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이 예수님의 관점을 없애려고 안달이 난다. 즉, 예수님의 관점을 품고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는 올바를 성도들을 억압한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흐름이다.
이런 우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 : 15]
이 악한 세상가운데 우리를 데려가시기 위함이 아닌, 이 세상 가운데 우리가 악에 빠지지 않게 지켜주시기 위해 기도하셨다. 즉, 우리는 이 악한 세상 가운데 도망칠 생각을 하지 말고, 악과 동화되지도 말고 버텨내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버티는 모습을 위해서도 기도하셨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한복음 17 : 17]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두운 세상 가운데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거룩함을 지켜 밝히 빛을 발하는 모습으로 버텨내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신 것이다.
최근 전 세계가 시끄러운 이슈가 있다. 이는 대중의 집단 면역을 위해 한 사람의 부작용은 감수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관점이다.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났던 가야바의 권고사항대로 이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야바의 심문에 굴복했다면 우리도 굴복해야겠지만,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승리하셨다. 세상의 관점으로는 예수님께서 결론적으로 십자가형에 처해졌으니 패배한 듯 하지만,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다 이루셨고 사망권세를 이기셨으니 예수님께서 승리하신 것이다. 우리도 이 악한 세상 가운데 거룩하게 구별되는 것이 패배한 듯 보이겠지만, 끝까지 거룩하게 견디며 휴거되는 승리의 맛을 느껴봐야하지 않겠는가? 끝까지 거룩함을 지켜내며 승리의 좁은 문을 향해 기쁨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자.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태복음 24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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