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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산상수훈

[산상수훈 묵상-014] 예수님의 기준 - 간음

Gospel Barista 2021. 4. 1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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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마귀가 이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죄악으로 끌고들어가는 영역이자, 수많은 사람들이 쉽게 넘어지는 음란과 간음에 대한 예수님의 기준이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27~28]


실제로 간음을 해야 간음한 자로 인식되어 죄인으로 취급받는 것이 아니라,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 마다 '간음한 자' 라고 한다. 그 이유는 '마음' 에 이미 간음을 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간음의 영역에 대해서 '남자들의 본능' 으로 포장하여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것을 정당화 시킨다. 길거리에 지나가는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를 바라보는 것, 야시시한 옷을 입고 춤추는 여자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 여름에 수영장이나 해변가에서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을 흐뭇하게 쳐다보는 것, 심지어 야동을 보는 것까지 모두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사춘기 시기부터 마음속에 이런 음욕을 품고 사는것이 정상이라고 여긴다. 더 나아가, 나이가 들어도 성욕이 왕성한 사람들에 대해서 위인 취급을 한다. 이것이 세상의 모습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에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도 이미 간음한 자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간음한 여인을 향해 어떻게 질책하시는지 살펴보자.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야고보서 4:4]


'간음한 자'는 '세상과 벗된 것' 이며, 이는 결국 '하나님과 원수 됨' 이라고 하신다. 세상이 말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 그리고 세상에서 위인취급 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기준으로는 하나님의 원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기준을 따를 것인가, 예수님의 기준을 따를 것인가. 결단은 우리의 몫이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태복음 5:29~30]


마음에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것 또한 간음한 자라고 하시는데, 뜬금없이 오른 눈과 오른손이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내고 찍어버리라고 하신다. 이게 무슨 연관이 있을까?

간음의 시작점은 '마음속에 있는 음욕' 이다. 이 마음속의 음욕은 어디로부터 들어오는 것일까? 바로 우리가 바라보는 것들과 우리가 행하는 것들로 부터 들어오게 된다. 우리가 눈으로 바라보는 것과, 우리 손으로 행하는 것들이 음욕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음욕의 통로가 될 바에야, 차라리 눈을 빼고, 손을 찍어서라도 그 통로를 차단하고, 거룩함을 유지하여 천국에 가는 것이 사지 멀쩡하게 지옥에 가는 것 보다 유익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예수님께서는 오른쪽 눈과 손에 대해서 말씀하셨을까? 이는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후보생이었던 말고의 오른쪽 귀를 자른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쪽 귀를 떨어뜨린지라
[누가복음 22:50]


말고는 대제사자의 종이였다. 즉, 차기 대제사장의 후보생이었다. 그러기에 산헤드린공회에서 결정한 일에 앞장서서 행하였다. 이런 말고의 오른쪽 귀를 베드로가 잘라버렸다. 대제사장이 되는 사람은 신체 중 오른쪽에 흠이 있으면 안된다. 즉, 오른쪽 귀가 잘린 말고는, 그 순간 평생을 바쳐온 대제사장의 후보생의 삶이 끝나버린 것이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다시 산상수훈의 말씀을 보면, 오른쪽 눈을 빼고 오른손을 찍어버리면, 대제사장으로 살아갈 수 없다. 대제사장 후보생이 대제사장을 못할지라도, 지옥에 가지않고 천국에 가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시는 것이다. 어설프게 주의 종이라고 하면서 목이 곧은 백성으로써 음란의 통로를 다 열어놓고 거룩한 행세를 하며 마음으로 간음할 바에야, 교역자가 아닐지라도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음란의 통로를 틀어막고 하루하루 거룩함을 지켜나가는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더 유익하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제일처음 한 일이 무엇이었을까?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창세기 3:7]


바로 서로 벗은 줄을 알고 신체를 가렸다. 이는 죄가 들어오면서 한 몸을 이루는 하나님이 맺어주신 아름다운 부부의 관계에서 서로가 서로를 음욕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즉, 죄가 음욕의 문을 열어준 것이다. 이는 죄가 음욕의 문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내 삶 가운데 음란의 통로가 있는가? 음욕의 문이 활짝 열려있는가? 이 문의 열쇠인 죄를 버려버리자. 이 더러운 문의 열쇠를 안주머니 깊숙히 간직하지 말고 성령의 불로 녹여 없애버리자. 예수님께서는 이 죄의 통로를 찍어 내어서라도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어설프게 세상의 기준을 쫓지 말고, 예수님의 기준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내자.

 

음욕의 통로 문의 열쇠, 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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