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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사도행전

증인이 선포해야하는 증거

Gospel Barista 2022. 1. 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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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기회가 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했다. 이로인해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사람들을 피해 도망가기도 했다. 반면에 바울의 선포로 인해 신앙이 생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도 많아졌다. 즉, 바울이 가는 곳곳마다 동네가 뒤집어지고 혼란에 빠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바울과 부딪히며 논쟁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종교인, 정치인, 법조인, 지식인들이었다. 이들은 그 지역을 이끌어가는 리더의 자리에 앉아있던 자들이다. 이는 다른말로, 그 지역의 사회적 분위기를 이끌며 한 시대의 옳고 그름의 기준을 수립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이런 자들과 대립하며 논쟁을 벌였던 것이다. 이를 조금 더 현실적으로 이야기하면, 한 시대의 금기어를 선포하며 다녔던 것이다. 마치 오늘날의 백신과 같이 말이다.

이 시대의 금기어 (※출처 : Pixabay)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할 때 마다 물리적인 공격이 가해졌다. 심지어 바울이 아닌 당시의 회당장이었던 소스데네가 법정 앞에서 집단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오늘날 백신의 정체에 대해서 분석하고 발표를 하면 어김없이 영상이 삭제가 되거나 경고를 받는다. 이는 이 시대의 옳고 그름의 기준에 입각하여 제제가 가해지는 것이다. 이 시대의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정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미 COVID-19 사태로 인해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정하는 권한은 각 나라의 정부에게 넘어갔다. 이에 순응하는 국민들은 정부의 편에 서게 되고, 이를 거부하는 국민들은 반정부 세력으로 분류된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권력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셨고, 성경을 통해 세상에 명확하게 공표되었다. 하나님께서 옳다고 하는 '정의' 를 따르는 것이 '공의' 이다. 그리고, 이 정의를 벗어난 '악' 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심판' 하시는 것이 '정의' 에 입각한 '공의' 이다.

진정한 정의 (※출처 : Pixabay)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정하는 권한이 정부에 이관된 국가들 중, 이를 거부하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정의대로 공의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국민들은 반정부세력이 되어 대규모 시위 및 집회를 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성경에 입각한 시민의식으로 깨어있어야 한다. 바울이 괜히 지식인들과 논쟁만 한 것이 아니라 회당에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 하고 교육했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1000만 기독교인이 있는 대한민국은 어떤가? 그 어떤 나라보다 정부에 순응적이다. 의사들의 양심은 사라진지 오래이고, 진실을 전달해야하는 기자들의 소명의식은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다. 최근에서야 몇몇 의사들이 백신을 배양하여 분석하고 이를 발표하고 있다. 당연히 이런 소식들은 음모론 취급 당하며 거센 반박을 받고, 이런 소식을 전한 미디어들은 제제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이 2년정도 지속되다보니, 기독교인들의 시선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백신으로 고정이 되어버렸다. 더 나아가 백신이 짐승의 표인지 아닌지가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어버렸다. 백신을 맞지 않은 이들은 백신 거부로 인해 자신이 구원받은 것 처럼 착각을 하기 시작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하는 이들이 세상 기준의 각종 백신 음모론을 전달하며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해야한다고 외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그저 음모론을 자신에게 전달해준 음모론자로 취급하기 딱 좋은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면 백신에 대해서 침묵해야 하는 것인가? 그것 또한 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인가?

그 정답 또한 바울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사도행전 17 : 30~31]


이것이 바울의 선포이다. 하나님께서는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간과하셨지만, 지금 이 시대는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선포를 하면 모든 사람들이 회개를 할까? 절대 아니다. 오히려 돌 들고 찍어 죽이려고 달려들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렇기에 다음 선포가 중요하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이 선포의 내용이 가르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다. 즉,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가 바로
'하나님의 마지막 때의 심판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한 구원의 약속' 인 것이다.

증인이 선포해야하는 증거 (※출처 : Pixabay)


증거는 증인이 선포해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증인은 누구인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 : 8]


사도 바울 뿐만 아니라 우리도 증인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는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즉, 증인된 우리가 선포해야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마지막 때의 심판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한 구원의 약속' 이다.

이 증인들의 증거를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비로소 선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신앙의 관점에서의 백신의 죄성' 이다(물론, 이를 선포하려면 각자 신앙의 관점에서 백신의 잘못된 점들을 정리하고 명확하게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언제 다 선포하냐..." 싶은가?

바울이 수차례 전도여행을 한 이후에 각 지역의 교회들에게 편지를 썼던 것을 잊지말자. 우리가 사도행전을 글로 읽으니 '바울이 그저 어느지역을 돌아다니며 전도했네' 정도로 느껴지는 것이다. 바울의 심정이 어땠을 것 같은가?

"이렇게 언제 다 선포하냐..." 싶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전도여행을 멈추지 않았다. 증인으로써 증거를 미리 선포해둔 덕분에 각 교회에 편지만 써도 그 교회가 다시 올바르게 바로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지금 우리가 성경으로 그 편지들을 읽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고 신앙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린도전서 1 : 21]


하나님께서 괜히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겠다고 하셨겠는가? 답답하고 미련해보이지만,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정도(正道)이다.

한 때 한국교회는 교회가 클럽이 되었다는 기사를 인용해서 "서양(유럽과 미국)의 교회들은 죽었다" 는 선포를 유행처럼 외쳤었다. 하지만, COVID-19 를 대처하는 기독교인들의 수준을 보면 오히려 "대한민국의 교회들은 죽었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그래도 우리는 교회가 클럽이 되지는 않았다!" 라고 반박하고 싶은가? 교회가 클럽이 되지는 않았지만, 평양대부흥이 있었던 장대현교회 자리에 김일성과 김정일 초대형 동상이 세워져 북한 주민들이 날마다 우상에게 절하고 있다. 차라리 이보다는 클럽이 낫지 않겠는가?

평양대부흥의 장대현교회 자리에 세워진 것들 (※출처 : Pixabay)


이제 더 이상 바닥을 칠 것도 없어보이는 대한민국 교회이다. 이는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직후의 분위기에 취해있는 모습과 같다. 그렇다면 다시 회복해야하지 않겠는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구원의 길을 선포하자. 사회적 분위기도 초대교회와 비슷하게 기독교인들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럴 때 일수록 증인들이 선포하는 증거가 필요하다. 이 땅에서 초대교회의 모습을 되찾으며 다시 성령의 불로 타오르는 이 땅 대한민국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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