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 사건 이야기는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흔히 알고있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사건을 다루는 성경말씀은 이미 알고있는 내용으로 여기고 속독으로 읽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 대부분 바벨탑 사건을 '인간이 탑을 높이 쌓아올려서 자기들의 이름을 높이려다가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언어를 혼잡하게 해서 사람들을 흩으신 사건'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100% 맞다고 할 수도 없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창세기 11 : 4]
인간들은 탑 '만' 건설하려던 것이 아니다. 성경은 명확하게 '성읍과 탑' 으로 명기되어 있다. 즉, 인간들은 자신들의 탑이 있는 도시를 건설하려고 했다. 그렇다면 바벨탑이 있는 도시가 어떤 도시이겠는가?
바로 바벨론이다. 구약시대 남유다를 집어삼켰던 바벨론. 이스라엘을 집어삼켰던 로마제국의 상징에서 마지막 때 전 세계를 집어삼키려는 사탄의 왕국인 '큰 성 바벨론' 으로 이어지게 되는 바로 그 바벨론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은 그 '탑이 있는 성읍' 을 여전히 건설하고 싶어한다. '오벨리스크' 라고 불리는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을 상징하는 형상의 석조탑들이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 뿐만 아니라,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터키와 이집트 등 전 세계 유명한 대도시들에 뿌리박혀있지 않는가? 심지어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는 13개의 오벨리스크가 있다.
1000만 기독교인이 있는 대한민국에는 이런 탑이 없겠는가? 서울의 제2 롯데월드의 형상이 오벨리스크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으며, 한화건설 오피스텔 브랜드 이름은 대놓고 오벨리스크이다.
바벨탑을 세우려는 인간들을 보며 "쯧쯧쯧..." 이라며 혀를 차며 비난하는 기독교인들이 즐비한 이 땅에 바벨론 제국들이 건설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이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이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 창세기 11장의 전반부의 바벨탑 사건에 동참하는 인간이 될 것인가? 아니면 창세기 11장 후반부의 "~~를 낳았고" 로 마무리되는 생명의 족보이자, 아브라함으로 이어지는 셈의 족보에 속한 자가 될 것인가?
이런 세상의 흐름을 분별하고 옳은 길인 좁은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비법이 '바벨성읍 & 탑' 의 재료가 되는 벽돌에 숨어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창세기 11 : 3]
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고 만드려는 성읍과 탑의 재료는 '자신들이 직접 견고히 구워서 만든 벽돌' 이다. 이 성경구절을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돌을 대신하며' 라고 되어있다. 즉, 이 탑을 쌓기 전 까지는 인간들은 자신들이 구워만든 벽돌이 아닌 자연의 돌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건축 기술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순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대조적인 탑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높이는 탑인 제단이다. 제단의 재료는 무엇이었을까?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신명기 27 : 6]
그것은 바로 '다듬지 않은 돌' 이다. 굳이 왜 하나님께서는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세우라고 하셨을까?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제단은 하나님께 드릴 거룩한 제물을 태우는 곳이다. 이런 재단의 재료인 돌 또한 거룩해야하지 않겠는가? 이런 거룩해야하는 돌을 왜 다듬지 말라고 하셨을까?
'거룩' 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다듬는다고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대로의 모습이 가장 거룩하기 때문이다. 괜히 제물로 드릴 동물들이 상처가 나지 않게 구별해서 길러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눈에는 못생기고 거친 돌일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돌일 수 있다. 이 관점으로 다시 바벨성읍 & 탑의 재료를 다시 보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돌을 인간이 인위적으로 다듬고 구워낸 벽돌로 대체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거룩한 것' 을 '인위적인 인간의 눈에 보기 좋은 것' 으로 대체하는 것이 바로 바벨탑 재료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바벨탑들의 재료는 어떤것이 있을까?
COVID-19 백신을 생각해보라. mRNA 백신은 인간의 정상세포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이 돋아나도록 한다. 참고로, 코로나 바이러스는 일반적인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스파이크 단백질을 인위적으로 조작해서 만들었다는 연구결과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COVID-19 백신의 궁국적인 목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거룩한 세포에 '면역' 이라는 인간들의 눈에 보기 좋은 포장지로 포장하여 인위적인 스파이크 단백질을 돋아나게 만드는 것이다. 인체를 구성하는 기초단위인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포(다듬지 않은 돌과 같은 세포)를 인위적인 스파이크 단백질이 돋아난 세포(인위적으로 다듬고 틀에 넣어 구워서 만들어낸 벽돌과 같은 세포)로 대체해버리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거룩한 성전의 제단과 같은 인체를 바벨탑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바로 COVID-19 백신인 것이다.
짐승의 표의 후보군인 베리칩과 뇌에 심는 칩도 동일한 개념이다. '편리함' 이라는 포장지로 교묘하게 포장하여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창조하신 인간의 몸에 인위적인 칩을 몸에 주입하는 것이다. 베리칩을 통해 매매를 할 수 있으며, 회사의 근태관리부터 건강관리까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뇌에 심는 칩은 스마트기기를 생각만으로도 제어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치료의 목적도 있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이 기술들을 완성시켜줄 도구가 바로 5G 이상의 통신기술이다. 인간의 신경계의 반응속도보다도 더 빠른 통신망을 구축하여 인간과 다양한 스마트기기들을 연동시키겠다는 것이다.
잊지말자.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궁극적으로 연동되어야 하는 대상은 카드리더기도 아니고, 수많은 스마트기기도 아닌, 오직 하나님 한 분 이라는 것을.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는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연결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휴거되는 그 날 까지 치료, 면역, 편리함 등의 그럴싸한 포장지로 포장한 수많은 신기술들이 등장할 것이다. 이런 포장지를 뜯어보면 그 안에 바벨탑과 그 성읍들이 즐비할 것이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몸 안으로 침투하여 우리의 존재 자체를 거룩한 성전이 아닌 바벨탑으로 대체해버리려고 할 것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얼리어답터가 아니다.
그래도 우리를 압박해오는 세상의 신기술들이 두려운가? 돌의 위력을 무시하지 말자. 큰 칼을 차고 전쟁터로 나온 골리앗을 쓰러뜨렸던 것은 다윗이 날렸던 작은 물맷돌이었다. 벽돌을 넘어서 쇠를 두드려서 만든 큰 칼도 그저 돌 하나를 이겨내지 못했다.
세상은 벽돌로 높은 바벨탑을 쌓을 때, 우리는 다듬지 않은 돌로 하나님을 높이는 거룩한 제단을 쌓아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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