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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창세기

아브라함의 부동산 거래 방법

Gospel Barista 2022. 6. 22.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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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부동산은 가장 핫 이슈 중에 하나이다. 정부의 무리한 시장개입으로 집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를 공급과 수요의 단순한 시장논리로 접근하여 공급을 늘려야 시장의 가격이 낮아진다는 근거없는 정책을 펼치며 부동산 시장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영끌해서 무리하게 집을 구매한 이들은 집값이 떨어지고 대출금리가 치솟는 상황을 눈물을 머금으며 지켜볼 수 밖에는 없는 실정에 놓여있다. 그렇다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부동산 거래를 어떻게 했었는지를 살펴보자.

부동산 거래


사라가 127세까지 살고 기럇아르바(헤브론) 에서 죽었다. 이에 아브라함은 당시 헤브론 땅의 주인인 헷 족속에게 가서 사라를 매장할 땅을 달라고 요청한다.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창세기 23 : 3~4]


이에 헷 족속은 아브라함에게 원하는 묘지를 사용하라고 허락한다. 헷 족속이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를 장사할 것을 금할자가 없다며 아브라함을 위로하듯 얘기한다. 이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은 어땠을까?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매
[창세기 23 : 7~9]


우선, 아브라함은 헷 족속에게 몸을 굽혀 인사했다. 사실, 헤브론 땅은 아브라함이 원래 살았던 땅이었다. 헷 족속이 소유하기 이전에 아브라함이 거주하며 제단을 쌓았던 곳이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창세기 13 : 18]


자신이 살다가 이사나온 집의 집주인에게 다시 그 집을 구입하기 위해 몸을 굽히며 인사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어떤 기분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정중하게 몸을 굽히며 사라의 매장지로 '막벨라 굴' 을 요청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이다.

'충분한 대가' 의 영어 성경을 보면 'the full price' 이다. 즉, 적당한 금액이 아닌 가장 비싼 가격을 지불하겠다는 것이다. 좋은 매물을 싸게 구입하는 것이 부동산을 매입하는 사람의 기본 원칙이다. 이를 무시하고 아브라함은 가장 비싼 가격으로 막벨라 굴을 구입하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엄청난 부자이고 자신의 아내를 장사할 곳을 구입하는 것이기 때문일까? 만약에 그랬다면 몸을 굽히며 얘기하진 않았을 것이다. 삼성전자 부회장인 이재용이 돈이 많으니 안양에 있는 집을 강남의 집값으로 지불하겠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이재용이 몸을 굽힐 것이 아니라 집을 파는 사람이 이재용에게 감사하다며 몸을 굽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이런 태도는 무엇 때문일까?

더 이상한 것은 헷 족속의 반응이다.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에게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에게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에게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창세기 23 : 11]


아브라함이 최고 금액을 쳐주겠다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아브라함이 찍은 밭과 굴을 그냥 공짜로 사용하라는 것이다. 헷 족속은 돈 욕심이 없고 무소유의 정신으로 무장된 족속인 것일까?

아브라함은 땅 주인 에브론에게 밭의 대가를 지불하겠으니 받으라고 다시 한 번 간곡히 요청했고, 에브론은 땅 값은 은 400세겔이라고 구체적인 금액을 제시한다. 1세겔은 4일치의 임금이다. 1일치 임금을 1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1세겔은 40만원이고, 400세겔은 1억6천만원이다. 어쨌든 아브라함은 이 금액을 지불하고 밭과 굴이 아브라함의 소유가 되었다.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헷 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인이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가
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창세기 23 : 16~18]


헷 족속은 결국 땅 값을 받을거면서 아브라함에게 왜 공짜로 묘지를 사용하라고 했고, 왜 아브라함은 공짜로 묘지를 사용하라는 이에게 몸을 굽혀가며 굳이 최고 가격을 주겠다고 했을까?

우선, 이스라엘 민족의 묘지에 대한 개념을 알아야 한다. 어느 한 곳을 묘지로 사용한다는 것은 그 묘지와 그 땅의 소유가 그 묘지의 주인에게 있음을 나타낸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 민족의 묘지는 대대손손 매장지로 사용하게 된다. 즉, 단순히 죽은자를 장사하는 곳의 개념이 아닌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 묘지를 합법적으로 구입해서 그 땅의 소유권까지 확보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신 자손들의 매장지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이 관점으로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공짜로 사라를 매장하라고 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1회성으로 사라의 매장지를 허락하는 것이고 땅의 소유권을 넘기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런 헷 족속의 생각을 알기에 최고 금액(the full price) 을 지불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왜 이 헤브론 땅에 이렇게 집착한 것일까? 아마도 사라가 헤브론에서 죽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헤브론 땅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가나안 땅의 일부이며, 그 중에서도 물이 풍부한 몇 안 되는 땅이다. 이 땅의 소유권을 합법적으로 아브라함이 갖게 된 것이다. 이 때 당시에는 희년에 땅의 소유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제도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제도를 만들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 가운데 가장 좋은 땅을 아브라함의 소유가 되게 하신 것이다. 이 상태로 희년이라는 제도가 실행되면 이 땅의 소유를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돌려받아야 한다. 즉, 이 사건은 가나안 땅 가운데 가장 비옥한 땅의 법적 소유권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있음을 선포하는 사건인 것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겠다는 예언을 녹여내신 사건인 것이다.

사실, 창세기 23장의 내용은 예배 설교로 심도있게 다뤄지는 말씀은 아니다. 하지만 이 말씀에 녹아있는 하나님의 예언은 그저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이런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도 주관하시고 이끌어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가? 불평불만을 쏟아내지 말고,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이끄실지를 기대하며 그저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하자.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던 사건이 감탄할 수 밖에 없는 간증거리로 변해있을 것이다.

이 산지를 내게주소서

P.S
참고로, 우리가 잘 알고있는 '이 산지를 내게주소서' 라는 찬양도 헤브론에 대한 이야기이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이 산지(헤브론) 을 자신에게 달라고 요청했고, 여호수아는 갈렙의 요청대로 그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삼게한 것이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 소유의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인 갈렙이 되찾은 것이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여호수아 14 :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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