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 맹세에 대한 기준에 이어서 나오는 기준이 바로 그 유명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에 대한 말씀이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태복음 5:38]
우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말씀의 목적을 살펴보자. 레위기에서는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배경이 되는 사건이 있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의 어머니가 이스라엘 여인이요
그의 아버지는 애굽 사람인 어떤 사람이 나가서
한 이스라엘 사람과 진영 중에서 싸우다가
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며 저주하므로
무리가 끌고 모세에게로 가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슬로밋이요
단 지파 디브리의 딸이었더라
그들이 그를 가두고 여호와의 명령을 기다리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그 저주한 사람을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그것을 들은 모든 사람이
그들의 손을 그의 머리에 얹게 하고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지니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그의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담당할 것이요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레위기 24:10~16]
엄마는 이스라엘 사람이고, 아빠가 애굽사람인 어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과 싸우다가 홧김에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자를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치라고 하시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라고 판결을 내리셨다. 비록, 그가 아빠가 애굽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법의 규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추가적으로 명령을 하신다.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짐승을 쳐죽인 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이며
사람이 만일 그의 이웃에게 상해를 입혔으면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짐승을 죽인 자는 그것을 물어 줄 것이요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일지니
[레위기 24:17~21]
이 명령을 듣고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한 자를 돌로 쳤다. 약간 뜬금없는 명령이라고 느껴질 수 있는 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의 명령을 도대체 왜 하신것일까? 그것도 굳이 왜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한 자에 대한 판결을 하시는 그 중간에 이 말씀을 하신것일까? 도대체 이 명령의 대상은 누구인 것인가?
우선, 이 사건을 통해 사람을 쳐죽이거나, 짐승을 쳐죽이거나, 이웃에게 상해를 입힐만한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돌로 맞아죽어야 하는 이의 부모가 가장 유력한 후보이다. 자신의 자녀를 돌로 쳐죽인 이들이 얼마나 밉겠는가? 아무리 하나님께서 내리신 판결이다 할지라도, 눈앞에서 자녀가 돌에 맞아 죽는다면, 이 죽임에 가담한 이들을 향한 분노로 가득찰 수 있다. 이 '죄의 대가에 대한 분노' 를 갖지 말라는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의 기준을 말씀하시는 분이, 스스로 이 기준을 어기겠는가? 이 관점으로 보면,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는 죄는 돌에 맞아죽을만한 죄인 것이다. 이를 깨달으면, 자신의 자녀를 죽인 자들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똑바로 교육시키지 못한 자신들이 보여야 한다.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신앙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자신들에게 책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애굽 사람인 아빠와 이스라엘 사람인 엄마가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더더욱 자신들의 시각을 점검해야 했을 것이다.
거류민에게든지 본토인에게든지
그 법을 동일하게 할 것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레위기 24:22]
더 나아가, 돌로 사람을 치는 이들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돌로 사람을 쳐서 죽이는 것이 한방에 깔끔하게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절대 아니다. 수많은 이들이 돌로 수차례, 수십차례를 쳐야 한다. 즉,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각인시키게 된다. 이 모습을 본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는데, 내가 살인을 하면, 나 또한 이렇게 죽을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
신명기 말씀을 보면 더 명확하게 말씀하신다.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그런 악을 너희 중에서 행하지 아니하리라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
[신명기 19:20~21]
두려워하게하여 다시는 악을 이스라엘 백성중에서 행하지 않게 하기위해,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일부 목사님들은 이 말씀들에 대해서 설교하면서, "한대 맞으면 두대 때리고 싶은게 인간의 죄성인데, 이를 방지하고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고 하신 것이다." 라고 설교한다. 맞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하나님의 마음은, 악을 행하지 않도록 애시당초 이런 일을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함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이 관점으로 동일한 말씀에 대한 예수님의 기준을 살펴보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태복음 5:39~42]
한 대 맞았으니, 한 대만 복수해주라는 것이 아니다. 악한자를 대적하지말고 한 대 맞으면 반대편도 대주고, 하나 달라고 하면 두개 더 주고, 오리를 같이 가자고 하면 십리를 동행해주고, 구하고 꾸고자 하는 이를 거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악을 행한자에게 오히려 선을 베풀면서 그 안에 있는 악을 제하게 하라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나는 계속 맞고다녀야하나?' 라고 생각하면, 약간 억울할 수도 있다. 이런 자들에게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17~21]
원수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으니,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이 원수를 어떻게 갚지?' 라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는 것이다. 우리가 원수를 선하게 대하는 것이 숯불을 그 원수의 머리에 쌓아 놓는 것과 같다. 악을 악으로 갚으면, 이 악에 대한 또 다를 복수심이 생기게 되어 더한 악을 행하게 된다. 죄가 죄를 낳는 격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쫓는 이들의 모습이 절대 아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내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쫓는 이들의 모습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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