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다양한 지적과 요구를 한다. 그 중 방언과 예언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선포하고 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He who speaks in a tongue edifies himself,
but he who prophesies edifies the church.
[고린도전서 14 : 4]
'방언' 은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 은 교회의 덕을 세운다고 한다. 그러면서 바울은 모두가 방언을 넘어서 예언하기를 소망하라고 권면한다.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고린도전서 14 : 5]
우선, '덕을 세운다' 는 의미의 영어단어 'edify' 의 어원을 살펴보자. edify 는 '주택, 건물'을 의미하는 라틴어 aedes 와 '만들다'를 의미하는 facere 의 합성어이다. 즉, 덕을 세우는 것은 건물을 쌓아올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유럽의 으리으리한 성당들은 몇 백년 동안 쌓아올린다. 자기 자신의 덕이나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은 한 순간에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건축물을 쌓아올리듯이 긴 시간동안 끊임없이 노력해야하는 것이다. 그 노력이 '방언' 과 '예언' 이다.
방언은 우리가 그래도 잘 알고있다. 성령세례를 통해 방언의 은사를 받고, 방언으로 기도한다. 그렇다면 예언은 무엇일까? 우리가 점쟁이처럼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예언일까?
성경학자들이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을 분석했는데,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예언이 92%,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예언이 7%, 그리고 예수님과 구원까지 이어지는 예언이 1% 였다고 한다. 즉, 예언이 무조건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마음은 미래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현재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현재의 삶이 미래를 만들어나가기 때문이다. 이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면, 하나님께서는 미래를 아시고, 우리를 향한 계획이 있으시다. 그러기에 현재를 올바르게 살아내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우리가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예언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리가 이렇게 살면 안됩니다!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이러이러한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런 것들이 그 좋은 예 이다. 이 관점으로 예언을 통해 교회의 덕을 꾸준하게 세운다고 생각해보라.
"교회에서 아이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이유는 교회가 재미 없기 때문입니다!" 라는 말같지도 않은 궤변에 대해서 단호하게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 예언을 날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교회를 향해 재미있으라고 명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시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향해 재미를 추구하셨다면, 예수님의 12제자는 모두 역대급 개그맨이 되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베드로의 'ㅂ' 자만 들어도 배꼽이 빠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교회에 요구하시는 것은 '교회 다움' 이다. 즉,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거룩한 곳' 인 것이다. 재미를 추구하고 싶으면 교회에서 하지 말고 세상에 나가서 하시라!" 라고 말이다.
이런 예언을 꾸준하게 선포한다고 생각해보라. 교회에서 왕따가 되고 제명대상 1호가 될 것이다. 누가 예언을 하고 싶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예언하기를 원한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할까? 그 비법이 바로 '방언' 이다. 즉, 방언으로 자기의 덕을 올바르게 세우는 자들이 가득한 교회가 되어야 '예언' 의 선포를 받아들일 수 있는 텃밭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바울은 모두가 '방언' 을 사모할 것을 먼저 이야기 하고, 그 이후에 '예언' 까지 사모하며 성도들과 교회가 모두 올바르게 덕을 세우는 교회가 되기를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네 교회는 어떠한가? 방언 기도는 점점 사라지고, 방언으로 기도하는 자들은 미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공교롭게 기도의 부르짖음이 줄어들면서 교회의 다양한 문제들이 수면위로 드러나고, 자신의 덕이 제대로 세워져 있지도 않은 자들이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예언이랍시고 교회에 지적질을 한다. 이 지적질을 받은 자들은 기분이 상해서 부서별 자존심 대결이 펼쳐지게 되고 부서별, 성전별 다툼으로 이어게 된다.
고린도교회를 향한 바울의 처방전은 우리네 교회들을 향한 처방전이기도 하다. 고린도교회를 향한 현재의 예언이 먼 미래 우리네 교회를 향한 예언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각자의 덕을 방언을 통해 먼저 잘 세우자. 그리고 교회의 덕을 차근차근 세워나가며 이 악한 마지막 때에 올바른 교회들이 굳건히 세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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