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경기는 수많은 사람들을 열광시킨다. 최근에 치뤄진 카타르 월드컵을 보라. 전 세계 사람들이 경기 결과에 따라 울고, 웃고를 반복했다. 카타르 월드컵의 공식 경기영상을 사용하려면 1초에 20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금액을 지불해서라도 중요한 장면들은 계속해서 방송에 나온다. 그 때의 감격스러운 장면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이다.
이런 감격스러운 장면들은 결국 세계적인 운동선수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바울이 이런 운동선수들의 모습을 통해서 고린도교회에 선포하는 메시지가 있다. 그 메시지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Do you not know that in a race all the runners run,
but only one gets the prize?
Run in such a way as to get the prize.
Everyone who competes in the games
goes into strict training.
They do it to get a crown that will not last;
but we do it to get a crown that will last forever.
[고린도전서 9 : 24~25]
바울은 육상선수를 예로 들었다. 다같이 목표지점을 향해서 뛰어가더라도 결국 상을 받는 자는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1등만이 상을 받는데, 1등처럼 달려가라고 선포하고 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같은가? 1등에게만 주어지는 상이기에 값진 상이 된다. 경주에 참가한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상을 준다고 생각해보라. 결국 참가상을 받기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할 것 같은가? '상' 은 '상' 다워야 한다. 월드컵도 4년에 한 번 열리는 대회이기 때문에 그 트로피의 값어치가 높은 것이다. 그 트로피는 실제로 월드컵 우승을 경험한 선수들만이 만질 수 있다. 그래서 월드컵 전에 월드컵 트로피가 월드컵 참가국을 순회하는데, 역대 월드컵에서 우승을 경험한 선수가 그 트로피를 가져온다. 아무나 만질 수 조차 없는 트로피이기에 선수들이 목숨걸고 뛰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값진 상을 차지하는 자들은 어떻게 훈련을 할까? 바울은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라고 선포하고 있다. 실제로 세계적인 축구선수들의 삶을 보면 기겁을 한다. 철저하게 절제된 삶을 살기 때문이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표현하면, 수많은 것들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몸의 근육량을 유지하기위해 단백질 위주의 식단을 구성하고, 탄수화물의 섭취는 철저하게 줄인다. 우리 입맛을 자극하는 나트륨의 맛을 느낄만한 음식은 거의 섭취하지 않는다. 일반인이 이런 삶을 얼마나 견뎌낼 수 있겠는가? 바울이 얘기한 '절제' 라는 단어의 파급력이 조금은 느껴지는가?
'절제' 라고 하면, 약간의 부정적인 뉘앙스와 함께 '억지로 참는 것' 으로 인식하기 쉽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 말씀을 영어로 보라. '절제' 로 번역된 단어는 'strict training' 이다. 이는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훈련' 을 견뎌낸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적인 선수들은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대부분 개인 훈련과 팀 훈련을 소화한다. 즉, 허비하는 시간 없이 철저하게 엄격한 훈련을 통해 단련하는 것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훈련을 하다보면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훈련을 견뎌야되지?" 와 같은 '현타' 가 오기 마련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바울은 왜 이렇게 엄격한 훈련을 통해 1등을 하기위해 노력을 해야하는지를 명확하게 선포하고 있다. 달리기 선수들은 이 땅에서 썩어 없어질 승리자의 관을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세상에서 썩어 없어질 관이 아닌, 썩지 않는 영원한 면류관을 위해서 노력하라고 선포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 훈련의 원동력이다.
축구선수들은 월드컵 트로피를 보면 가슴이 뛸 것이다. 월드컵 트로피는 이 세상에서 썩어 없어질 것인데도 불구하고 축구선수들은 이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바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우리는 '썩지 않는 영원한 면류관' 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지를 점검해야한다.
이 '썩지 않는 영원한 면류관' 은 헬라어로 '스텝하노스' 이다. 누군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 바로 '스데반' 이다. 이 면류관은 순교한 스데반에게 주어진 면류관이다.
다시 한 번 물어보겠다. 하나님 나라에 가서 순교한 스데반에게 주어진 면류관인 썩지 않는 영원한 면류관 '스텝하노스' 를 받을 생각을 해보라. 콧구멍이 벌렁벌렁 하는가? 그렇다면 이를 쟁취하기 위해 우리 삶을 '절제' 하며 ' 엄격한 훈련(strict training)' 을 할만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 아니, 우리에게 선포하는 메시지이다. 아무리 삶이 바쁘고 고단해도, 우리의 신앙을 위해 우리의 삶을 '절제' 하고, 신앙적으로 '엄격한 훈련' 을 통해 성장하자. 그래야 뜀박질에서 1등하고 상을 받을 수 있다.
바울은 스데반을 죽이는데 총괄을 했던 자이다. 이런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스텝하노스' 를 받자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심정이 어떨 것 같은가? 바울의 이런 진심어린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말자.
우리 모두 다같이 이 뜀박질에서 1등해서 천국에서 '스텝하노스' 를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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