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6장에 바울이 자신이 받은 핍박을 나열하고 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고린도후서 6 : 4~5]
많이 견뎌야하고, 환난과 궁핍, 그리고 고난이 있는 상황이다. 더 나아가 매맞고, 갇혀있고, 난동을 겪어야하는 상황 가운데 수고로운 일을 기꺼이 해야하며, 잠을 자지 못하고 굶어야 했다고 한다. 이 핍박들은 거의 북한의 강제수용소에서나 겪을만한 일들이다. 괜히 전세계 기독교 핍박국가 1위가 아닌가보다. 성경에 나와있는 기독교인 핍박의 방식대로 기독교인을 핍박하고 있으니 성경적(?) 이라고 해야하는지 고민이 된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이 핍박들을 견뎌냈을까?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in purity, understanding, patience and kindness;
in the Holy Spirit and in sincere love;
in truthful speech and in the power of God;
with weapons of righteousness
in the right hand and in the left;
[고린도후서 6 : 6~7]
우선 '깨끗함' 이다. 이는 물리적으로 깨끗한 것도 해당되겠지만, 영어 성경에서는 'purity' 이다. 즉, 순수하고 순도가 높다는 의미이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순결한 '거룩' 이 될 수 있다.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 : 16]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라고 명령하셨다. 명령을 하실 때 그 이유까지 선포하는 친절한 사령관이 어디있겠는가? 그냥 "까라면 까!" 가 보통의 군대 사령관의 모습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스스로가 거룩하시니, 하나님께서 자녀삼아주신 우리도 거룩하라' 고 말씀하신 것이다. 더 나아가 '거룩' 은 '거룩하지 않은 것' 과 공존 할 수 없다. 이 말씀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고 싶으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지식(understanding)' 이다. 우리는 이 부분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예배만 잘 드리고 다양하게 봉사하면 하늘나라 상급이 쌓이는데 굳이 공부를 잘 해야되?"
라는 분위기가 한국교회에 만연해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공부를 무조건 잘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대한민국 교육과정을 거치게 하셨다면, 그 또한 성실하게 임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된 자의 모습이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집중하고, 성실하게 숙제하고, 시험기간에 착실하게 시험공부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된 도리이다. 성적은 성실하게 공부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시험시간에 실수할 수도 있지만, 심은대로 거두는 성경의 윈칙대로 성적을 받는다.
바울은 핍박을 견디는 비법 중에 '지식' 을 두번 째로 언급하고 있다. 그 만큼 핍박을 견딜 때 중요도가 높은 것이다. 왜 그럴까?
지난 COVID-19 상황을 되돌아보라. 백신에 대해 언론이 떠들어대는 소리만 듣고 믿는 자들은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하지만, 스스로 이에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분석한 자는 우리의 몸된 거룩한 성전에 더러운 것을 넣지 않겠다는 다부진 결단을 하고 백신패스를 견뎌냈다. 이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면 '지식' 이 없이 '거룩' 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지식' 이 없으니, 교회에서 교역자들이 백신을 권면하고, 정부에 예배를 허랙해달라고 구걸하고 있던 것이다.
지식은 꼭 학창시절에만 쌓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 때는 매 순간순간 기독교인 핍박이 시작될 수 있는 시기이다. 그 만큼 더 깨어 기도하며 '지식' 을 습득하는데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세아 4 : 6]
북한과 유사한 통치를 했던 북이스라엘을 향한 호세아를 통한 하나님의 외침을 들어보라.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지식' 이 없으면 망한다. 이것이 호세아를 통한 경고이다. '지식' 을 매 순간순간 쌓는 것이 기독교인 핍박의 시대를 준비하는 자의 모습이다. 국민의 2% 밖에 안되는 기독교인이 세운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 2% 의 기독교인이 모두 지식인으로써 이 나라를 이끌어가던 리더들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들이 세상의 지식만 쌓았겠는가? '지식' 중에서도 제일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 이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11 : 9]
이사야가 외친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가 실현되는 '그 날' 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 다음으로는 '오래 참음' 이다. 이는 그저 이 악물고 쌍욕하면서 견디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 : 4]
'오래 참음' 은 '사랑' 의 첫번 째 모습이다. 즉, 핍박 가운데 '사랑' 이 기반 된 '오래 참음' 이 필요한 것이다. 생각해보라. 핍박가운데 '사랑' 이 기반이 된 '오래 참음' 을 누가 실현할 수 있겠는가?
바로 당신이다. 예수님이 그러했듯, 스데반이 그러했듯, 손양원 목사님이 그러했듯, 자신을 죽이는 이들을 용서해달라고까지 하나님께 기도한 분들도 계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첫번 째 계명, 그리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두번 째 계명을 명심하자. 핍박 가운데 "하나님. 우리를 핍박하는 저 새끼 죽여주세요!!" 라고 기도하기 보다, "하나님. 핍박받는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이 핍박을 잘 견디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며 견뎌내라는 것이다. 우리를 핍박하는 '저 새끼' 가 죽으면 두번 째 '더한 새끼' 가 온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 다음으로는 '자비함' 이다. 영어로는 'kindness', 즉, 친절함이다. 핍박받는 와중에 친절하게 자비를 베풀 수 있을까? 핍박 중에 '사랑이 기반이 된 오래 참음' 을 실현할 수 있는 비법이 바로 '친절한 자비' 이지 않을까 싶다. 함께 핍박받는 이들이 배고파하면 자신의 빵을 뜯어줄 수 있는 자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고통에 집중하기보다 왕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께 집중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는 친절함이 필요한 것이다.
그 다음은 '성령의 감화' 이다. 영어 말씀을 보면 'in the Holy Spirit' 이다. 이는 우리가 성령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성령 충만' 을 이야기 하는데,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충만해지는 상태를 나타낸다. 즉, '우리' 라는 경계 안에 성령님이 채워지는 상태이다. '성령의 감화' 는 우리가 성령님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한계가 없는 성령님 안에 우리가 들어가는 것이다. 성령 충만과는 차원이 다른 상태이다. 우리도 '성령 충만' 을 뛰어넘어 '성령의 감화 감동된 자' 로 살아가자.
그 다음은 '거짓이 없는 사랑' 이다. 핍박 가운데 '거짓 없는 사랑' 이 쉬울 것 같은가? "이 핍박을 면하게 해주시면 하나님 더 사랑할께요!!" 라는 사랑을 빙자한 거래를 하고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한다. 이 핍박을 허락하신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라는 고백을 선포할 수 있는 자가 진정 '거짓이 없는 사랑' 을 실천하고 있는 자의 모습이다.
그 다음은 '진리의 말씀' 이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내용들이 말씀에 기반한 것이 아니면 소용 없다. 핍박 가운데 우리가 성경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은가? 성경만 갖고있어도 사형에 처해질 것이다. 목숨을 걸고 성경을 읽던지, 아니면 핍박 이전에 미리 성경을 묵상하고 암송하고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이다. 우리의 능력으로 핍박을 이겨낼 수 있다고 착각, 아니, 교만하지 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견디고 이겨낼 수 있다.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전투능력이다. 이 중 비교도 되지 않는 전투능력이 바로 '핵 무기' 이다. 즉, 어떤 무기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전투능력이 결정된다. 우리는 이 영적 전쟁인 핍박 가운데 (공)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공)의' 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정의' 대로 행하는 것이다. 즉, 기독교인을 핍박하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정의' 대로 '공의의 심판' 이 이루어진다는 '믿음' 이라는 엄청난 무기를 갖고있으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바울의 핍박을 견뎌낸 비법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도 이 비법을 갖춰야하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이 마지막 때에는 기독교인 핍박이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이 핍박을 준비된 자로써 기꺼이 견뎌내며 끝까지 믿음을 지켜 휴거되는 크리스쳔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말씀 묵상 > 바울서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바울의 연보 사역 (1) | 2023.04.03 |
---|---|
훈훈한 삼각관계 (0) | 2023.03.28 |
그리스도의 편지 (0) | 2023.03.13 |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0) | 2023.03.07 |
'I am what I am' vs 'I am who I am' (0) | 2023.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