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는 지정학적으로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위치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즉, 유럽의 문화와 아시아의 문화가 유입되고 뒤섞이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교통과 상업의 요충지였고, 철학과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인정받는 곳이다. 이런 설명을 읽으면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오늘 날에 교통과 상업, 철학과 문화 예술분야 모두 인정받는 도시는 어디일까? '뉴욕' 정도가 이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다양한 문화 예술의 중심지이자, 교통과 상업, 경제의 중심지이며, 학문적으로도 유명한 대학들이 즐비한 도시이다. 이 뿐만 아니라, 자유의 여신상, 센트럴파크 등 여행객들이 관광할 만한 요소들도 많이 있고, 전세계 핵인싸들이 모이는 곳인 타임스퀘어도 있다. 유명한 마천루들이 즐비하며, 노란색 택시들이 경적을 울리며 시끄럽게 도로를 누비고, 냄새나고 더러운 지하철이 운영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범지대인 할렘가로 유명한 흑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도 있다. 이 모든 것을 '뉴욕' 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통합시키는 도시인 것이다.
이런 곳에 세워진 에베소 교회는 바울에게 있어서 특별한 존재이다. 이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설립한 교회이며, 3차 전도여행 때에는 약 3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체류하며 친히 목회했던 교회이다. 이렇게 애정이 넘쳐나는 에베소 교회를 향해 바울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에베소서 4 : 14]
과연 에베소 교회는 이 바울의 설명을 듣고 어떻게 행했을까? 요한계시록에서 에베소 교회를 향한 평가를 보자.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요한계시록 2 : 1~3]
바울이 설명한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 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 을 행했다. 이것이 에베소 교회를 향한 평가이다.
흔히 요한계시록의 7교회를 향한 평가를 보면서 책망을 받지 않은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에만 집중한다. '에베소' 교회는 그저 '처음 사랑을 버린 교회' 로 낙인을 찍고 본받지 말아야 할 교회로 인식한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요한계시록 2 : 4]
우리는 각 교회를 향한 칭찬과 책망을 보면서 칭찬의 모습은 본받고 책망의 모습은 우리도 동일한 행위를 하고있지 않는지 점검해야한다. 책망이 하나라도 있는 교회는 모두 쓰레기 같은 교회로 인식해서 처단해야하는 교회로 취급하는 단세포적인 이분법적 접근을 해서는 안 된다. 이 관점에서 에베소 교회를 향한 칭찬의 바탕에는 바울의 에베소 교회를 향한 애정어린 옥중서신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설명한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하기 위한' 것은 무엇일까?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에베소서 4 : 11~13]
각자의 부르심대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이다. 에베소 교회가 바울의 설명과 요한계시록에서 칭찬받은 내용과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 각자의 부르심대로 사도로, 선지자로, 복음 전하는 자로, 목사와 교사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갔을 것이다. 우리도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대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하자.
에베서 교회가 행한대로 그대로 한다면 자칫 '처음 사랑을 버린' 교회가 될 수 있다. 각자의 부르심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처음 사랑'이 버려지고 잊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 바로 '복음(Gospel)' 이다. 복음이 없는 부르심은 처음 사랑이 잊혀지는 결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괜히 전신갑주에서 복음의 평안의 신을 신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에베소서 6 : 15]
우리는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고 부르심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 요한계시록의 에베소 교회를 향한 칭찬만 듣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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