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에베소서 5 : 8~9]
이 구절은 굉장히 유명한 말씀이다. 이 말씀을 읽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지... 우리(나)는 빛의 자녀지...' 정도의 느낌을 받으며 '빛의 자녀들 처럼 행해보자!' 정도의 적당한 결심을 한다. 이는 마치 배우자 기도의 1순위는 '믿음' 이라고 외치면서 '외모', '학벌', '경제력' 등 세상의 기준으로 연애상대를 찾으러 다니는 젊은이들의 모습과 흡사한 느낌이랄까?
그렇다면 이 말씀이 이렇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갈 수 있는 구절인지 살펴보자. 에베소서는 바울이 감옥에서 쓴 옥중서신이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은 빌립보, 가이사랴, 로마 등 모두 세 차례 감옥에 투옥된 것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 중 바울의 투옥기간과 필체의 성숙함 등을 근거로 로마에서 2년 정도 수감되었을 때 에베소서를 포함한 4개의 서신들(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빌립보서) 을 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 감옥에서 썼다고 하니 뭔가 새롭게 느껴지는가? 헐리우드 영화에 나올 법한 미국의 더럽고 난폭한 죄수들이 가득한 어둠속에 뒤덮힌 감옥이 떠오르는가?
이런 오해를 없애기 위해 로마의 감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오늘날의 근대화된 국가들은 감옥을 형벌의 개념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감옥은 사람을 가두고 그 사람을 교정하고 교화시키는 곳으로 활용된다. 우리가 흔히 '교도관' 이라고 부르는 직업의 정식 명칭은 '교정직 공무원' 이다. 즉, 죄수의 탈옥을 막는 사람들이 아니라, 죄수가 죄를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교정해주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로마의 감옥은 어땠을까? 로마의 감옥은 '형벌' 의 개념이 아니다. 즉, 사람을 교정하고 교화시키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로마의 감옥은 그저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형 집행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가두어두는 곳으로만 활용되었다. 로마의 시민권이 있는 경우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빛을 볼 수 없는 지하실의 감옥이 아니라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가택연금의 형태로 감옥살이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에베소서를 쓸 당시의 바울은 가택연금 상태로 재판을 기다렸지만, 자신을 고소한 유대인들이 오지 않아 재판 없이 풀려났다. 이는 바울이 로마의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가택연금이었어도 감옥은 감옥이다. 로마의 병사들이 매일 바울을 지키고 감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병사의 모습에 빗대어 전신갑주의 말씀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싶다.
로마라는 나라를 우습게 보지 말라. 특히 로마의 감옥을 쉽게 생각하지 말라. 이 시기의 황제는 기독교인 핍박으로 유명한 네로황제였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였지만, 고소를 당한 상태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소를 당한 사람은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다. 특히 도주의 우려가 있으면 출국 금지 조치가 취해지거나 구속을 시킨다. 바울은 유대인들에 의해서 고소당하여 삶의 제한을 받는 가택연금 상태였다. 코로나 때 자가격리를 생각해보라. 대부분의 국민들이 자가격리만으로도 힘들어했다. 바울은 밖에 군인이 지키고 있는 자가격리를 2년정도 한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참고로 그 이후에 바울은 풀려난 후, 다시 마머틴 이라는 감옥에 투옥된다. 이 감옥은 지하로 들어서는 환기구 같은 구멍 하나만 있고, 그 구멍으로 죄수를 지하로 넣는 구조로 되어있다. 주로 사형수가 집행을 기다리는 감옥으로, 천국으로 가기위한 마지막 관문으로 불리운다. 이 감옥이 헐리우드 영화에 나올법 한 감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바울의 2차 투옥 때에는 사형이 결정된 상태였기 때문에 힘든 시기를 보내며 디모데전후서를 썼다.
바울이 에베소서를 썼을 당시의 상황은 2차 투옥된 마머틴 감옥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지만, 그래도 가택연금 개념의 감옥에 수감되어 재판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집의 문 밖에는 자신을 감시하는 로마 병사들이 지키고 있고, 자신이 어떤 형을 받게될지를 기다리는 상황 가운데 에베소 교회를 향해 "너희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자신의 미래에 불투명한 어둠이 들이닥치고 있는 상황 가운데 이 선포를 한 것이다.
우리는 결과를 알고 말씀을 보는 경향이 있다. 바울이 감옥이라고는 하지만 집에서 생활했고, 2년만에 아무일 없이 풀려났으니 '그러려니...' 하고 이 상황을 넘길 수 있다. 이 상황을 현실적으로 묘사해보자. 당시 로마는 전세계 패권국가였다. 지금의 패권국인 미국의 법원에서 "당신은 미국에 있는 한인들에게 고소당했으니 미국의 감옥에 갇혀야 합니다. 다만 재판 때 까지는 감옥이 아닌 호텔방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당연히 방 문 앞에는 FBI 가 지키고 있을겁니다." 라고 연락을 받았다고 생각해보라. 마음이 편할 것 같은가? 그 갇혀있는 호텔방에서 한국에 있는 자신이 속해있던 교회를 향해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십시오!" 라고 편지를 쓸 정신이 있을 것 같은가? 하루종일 불안감에 휩싸여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어떻게 변론을 하고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지를 고민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이런 상황가운데 에베소 교회를 향해 "너희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라고 선포할 수 있었을까? 이 비결이 다음 말씀에 녹아있다.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for which I am an ambassador in chains.
Pray that I may declare it fearlessly,
as I should.
[에베소서 6 : 20]
바울은 자신을 '쇠사슬에 매인 사신' 으로 표현하고 있다. 영어로는 'Ambassador in chain' 이다. 흔히 Ambassador(앰버서더) 는 '대사' 를 의미한다. 이는 외국에서 자신의 나라를 대표하는 역할의 외교관이다. 예를들어 일본 도쿄에 있는 대한민국 대사인 주일 한국 대사를 'The Korean ambassador in Tokyo' 라고 한다. 이 관점으로 바울의 표현을 보면 '쇠사슬에 묶여있는 대사' 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나라를 대표하는 대사일까? 베냐민 지파 유대인이므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대사일까?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But our citizenship is in heaven.
And we eagerly await a Savior from there,
the Lord Jesus Christ,
[빌립보서 3 : 20]
바울은 자신의 시민권(Citizenship)은 하늘에 있다고 선포하고 있다. 즉,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 나라를 대표하는 하나님 나라 대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확실하게 뒷받침 해주는 말씀이 다음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We are therefore Christ's ambassadors,
as though God were making his appeal
through us. We implore you on Christ's behalf:
Be reconciled to God.
[고린도후서 5 : 20]
바울은 대놓고 "We are therefore Christ's ambassadors(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이다)" 라고 선포하고 있다. 즉, 에베소서에서의 바울의 "Ambassador in chain" 표현은 '로마 감옥에 있는 하나님 나라 대사' 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대사는 외국의 정부를 상대로 자신의 나라를 대표하여 소통하는 창구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그 나라에 있는 자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 대통령이 대만에 대해서 언급하자, 중국 외교부에서 주중 한국 대사를 불러 강력히 항의했다. 이와 반대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미국에서 영어로 연설을 마치자 주한미국대사는 이에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을 하며 미국의 메시지를 한국에 전달하기도 했다. 나라를 대표하여 항의도 듣고,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는 것이 대사의 중요한 역할인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써 무엇을 로마에 선포하고자 했을까?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6 : 19~20]
'복음의 비밀' 이 바로 바울이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써 선포하고자 한 내용이다. 자신의 재판을 앞두고 비록 가택연금이지만 감옥에서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써 선포할 내용을 비장하게 준비하고 있는 바울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러면서 "빛의 자녀로 행하라" 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챙기는 모습을 보라. 대사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이보다 더 훌륭한 하나님 나라 대사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이 대한민국 땅으로 파송된 하나님 나라의 대사는 누구이겠는가? 어둠이 몰려오는 이 땅을 향해 빛의 자녀로 행하라고 외칠 수 있는 하나님 나라 대사는 어디에 있는가? 복음의 비밀을 선포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 대사는 어디에 있는가? 한국판 사도 바울이 등장하기를 기다리고 있는가? 잊지 말자.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로써 이 땅으로 파송되었다는 것을. '주한 천국 대사' 의 임무를 잘 완수하고 본국으로 휴거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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