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빌립보서 1장에 자신이 빌립보 사람들을 향해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지를 표현하고 있다. 이 기도를 통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점검하고자 한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And this is my prayer:
that your love may abound more and more
in knowledge and depth of insight,
so that you may be able to discern
what is best and may be pure and blameless
until the day of Christ,
filled with the fruit of righteousness
that comes through Jesus Christ
--to the glory and praise of God.
[빌립보서 1 : 9~11]
이 말씀의 영어 구절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것이 나의 기도이다.
너희의 사랑이 지식과 통찰력의 깊이 가운데
풍성해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무엇이 최고(최선)인지를 분별하고,
그리스도의 날까지 순결하고 흠이 없기를 원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의의 열매로 가득차서
하나님의 영광과 찬양이 되기를 원한다."
바울은 빌립보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순결하고 흠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날'은 언제일까? 이 날은 예수님이 주인공이 되시는 날이다. 바울이 빌립보서를 쓴 시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고, 우리가 거할 처소를 예비하러 승천하신 이후이다. 즉, 예수님이 주인공이 되시는 날은 신랑으로써 신부를 데리러 오시는 날인 것이다. 교회가 휴거 되는 그 순간까지 이방인이었던 빌립보 사람들이 순결하고 흠이 없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바울의 기도대로라면, 무엇이 최고(최선)인지 분별하고 그리스도의 날까지 흠 없이 순결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풍성해야 한다. 더 나아가 예수님을 통한 의의 열매로 가득 채워져서 하나님의 영광과 찬양이 되기 위해서도 사랑이 풍성해야 한다. 단, 조건이 있다. 그저 단순하게 사랑이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통찰력의 깊이 가운데' 풍성해져야 한다. 그냥 무작정 사랑만 풍성해지면 안 되는 것인가?
무엇이 최고(최선)인지 분별하라는 것은 우리 스스로 나름의 기준을 갖고 선택을 하라는 것이다.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기준이 있어야 한다. 올바른 기준은 스스로 우긴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기준이 올바르다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순결하고 흠이 없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 가운데 어디까지가 순결한 영역이고 흠이 없다고 할 수 있는 영역인지 명확한 '경계선'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간음이라고 하셨으니, 음욕을 품고 음란한 소설을 오디오 북으로 들으면 간음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이는 우리의 삶이 순결하고 흠이 없기 위한 경계선이 아니라, 불결하고 흠 투성이의 영역에 머물면서 이를 합리화하는 사이코패스적인 경계선인 것이다. 즉, 우리의 삶의 경계선에도 올바르다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 근거는 물론 첫째로 성경말씀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에덴동산에 살고 있다면 이 성경말씀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악한 자가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술 취하지 말라'라는 말씀만 보더라도,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취하지만 않으면 돼!!!" 라며 술에 취한 개가 되어 개독교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첫째 되는 근거 외에도 악한 세상에서 최고(최선)를 분별하고, 순결하고 흠 없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지식'과 '깊은 통찰력'인 것이다.
여기서의 지식은 어느 한 분야로 국한되어있지 않다. 세상의 지식에 관심도 없으면서 "성경만 보면 되지!!"라고 자기 합리화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애초부터 모든 사람이 신학교에만 진학하도록 만들지 않았겠는가? 왜 우리는 초, 중, 고등학교의 의무교육을 받아야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으로 진학을 할까?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 지식을 쌓고, 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며 알아가는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을 공부하며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알아가고, 법을 공부하며 십계명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법치를 통한 통치의 개념을 알아가라는 것이다. 수학을 공부하며 얼마나 하나님께서 체계적이고 오차 없이 이 세상을 이끌어가시는지를 증명해 보고, 역사를 공부하며 매 순간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느끼라는 것이다. 즉, 각자의 분야에서 지식을 쌓고 이를 통해 세상을 꿰뚫어 보는 깊은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지식과 깊은 통찰력이 있어야 악한 자들의 의도를 꿰뚫어 볼 수 있다.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기 위한 법을 만들려고 하지는 않은지, 신실한 기독교인들을 죄의 길로 유혹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은 아닌지를 분별해야 하지 않겠는가? COVID-19 기간에 교회에서 백신패스를 적용해서 거룩한 이들의 모임이 아닌 백신러들의 모임을 만들어버린 교회들을 보라. 이에 대한 지식과 통찰력이 없으니 이렇게 무너지는 것이다.
이런 지식과 통찰력의 깊이 가운데 사랑이 풍성해져야 한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이런 지식과 깊은 통찰력이 있어야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다. 그저 추상적인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실질적인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느끼고 알아가면서 풍성해진 사랑과는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지식과 통찰력의 깊이 가운데 있는 사랑은 따뜻한 핑크빛의 사랑이 아닌 냉철하고 차가운 색상의 사랑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한 가지만 물어보자. 십자가 사랑은 핑크빛처럼 느껴지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모든 인류의 죄의 삯을 치르셨다. 이 장면이 핑크빛 기류의 사랑으로 느껴지는가?
동화 속 판타지에서 헤어 나오라. 이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한 세상이 아니다. 정신 차리고 최선을 다해서 지식을 쌓고 이를 통한 깊은 통찰력을 통해 악한 세상을 꿰뚫어 보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며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더욱더 풍성해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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