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이방인 할례 의무화 논란에 대해 철저하게 반박하며 갈라디아서를 마무리한다. 이 마무리 멘트에 의미심장한 구절이 녹아들어 가 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갈라디아서 6 : 17]
이 구절에서 2가지 의문점이 든다. 첫 째는 '무엇을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인가?', 둘 째는 '예수의 흔적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 2가지 의문점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며, 이에 따른 다양한 설교들이 선포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찬양사역단체인 마커스(Markers) 또한 이 구절에서 '예수의 흔적(The marks of Jesus)'의 '흔적(Mark)'이라는 단어를 이용하여 '예수님의 흔적을 가진 사람들', '예수님의 흔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2가지 의문점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어 성경 중 '확대역 성경(Amplified Bible)'을 참고하고자 한다.
참고로 확대역 성경은 성경 언어의 풍부한 뉘앙스와 의미의 음영에 대한 향상된 이해를 제공하는 것으로 독자들에게 알려져 있다고 한다. 성경 원문의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더 자세히 진술하여 원래의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뒤에 숨겨진 완전한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성경으로 평가받는다.
그렇다면 갈라디아서 6장 17절의 말씀을 확대경 성경(Amplified Bible) 은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From now on let no one trouble me
[by making it necessary for me
to justify my authority as an apostle,
and the absolute truth of the gospel],
for I bear on my body
the branding-marks of Jesus
[the wounds, scars,
and other outward evidence of persecutions
—these testify to His ownership of me].
이를 직역하면 이렇다.
지금부터는 그 어느 누구도
[나의 사도권에 대한 정당성과 복음의 절대적 진리를
증명하게 만듦으로써]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
나는 나의 몸에 예수님의 흔적
[박해의 상처, 흉터, 그리고 다른 외적인 증거들
-이것들은 그가 나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을 지녔다.
이 구절을 통해 위의 2가지 의문점을 해결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을 괴롭게 하는 것은 사도권과 그가 선포하는 복음의 진리에 대한 시빗거리들을 의미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바울은 처절하리만큼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면서 사역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번 묵상의 핵심인 '예수의 흔적'의 정체에 대해서 확대역 성경은 사도 바울이 받았던 박해의 상처와 흉터들을 지목하고 있다. 이는 마치 누아르 영화에서 깡패 두목이 자신들의 부하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깡패 두목이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두목으로써의 자격이 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온몸에 박혀있는 칼에 베인 흉터와 총알이 관통한 상처들을 보여주는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하다.
우리도 그렇다면 예수의 흔적을 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상처와 흉터를 만들어야 하는가? 때마침 '예수님의 흔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사역단체가 있으니, 그 집회에 찾아가서 상처나 흉터 좀 만들어 달라고 애원해야 하는가?
성경을 단편적으로 바라보지 말자.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 율법과 믿음, 그리고 할례와 성령에 대해 정확하게 개념정리를 한다. 특히 율법을 앞세워 이방인에게 할례를 의무화하려는 움직임을 경계하며 성령에 이끌리어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권면하고 있다. 여기서 할례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의미하는 '흔적'이다. 바울은 베냐민 지파 유대인이었으므로 할례를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율법의 흔적인 할례가 아닌, 예수를 전하다가 받은 핍박의 흔적을 '예수의 흔적'으로 여기고 이를 내세우며 자신의 사도권을 다시 한번 변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 흔적에서의 핵심은 상처나 흉터가 아니다. '이것들은 그(예수님)가 나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라는 설명이 핵심이다. 즉, 자극적인 상처나 흉터에 집중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나를 소유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라는 것이다.
'흔적'의 원어는 '스티그마'로, 로마시대 때 주인이 노예의 이마나 팔에 인두로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것을 의미했다. 즉, 우리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지울 수 없는 예수님의 이름을 새겨주시는 것이 '흔적'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이 새겨진 자는 성령에 이끌리는 삶을 살아간다. 이런 자는 육체를 거스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세상을 거스를 수밖에 없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5 : 17]
세상을 거스르며 세상에서 예수쟁이로 낙인 되어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상처를 받게 되고 흉터가 남기 마련이다. 이런 상처들을 두려워하지 말자. 이것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길이니,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자.
참고로 한국교회는 이미 이런 영광스러운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쓴 '한국교회핍박'이라는 책을 보라. 이 책은 일본이 한국의 기독교를 핍박하기 위해 조작한 105인 사건을 중심으로 일본이 저지른 한국교회를 향한 만행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그 목적은 일본을 비판하고자 함이 아닌, 우리(한국교회)가 잘한 일을 알리고자 함이라고 명확하게 선포하고 있다. 그 책의 일부를 발췌해서 공유하고자 한다.
"일본이 조선을 먹었지만 정신을 먹지 못했다는 것을 욕심많은 자가 고깃덩이를 한입에 먹었지만 소화시키지 못했다는 비유를 섞어 설명하면서 일본이 아무리 한국교회를 핍박해도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에 일본인이 세상권력으로 기독교회를 타파하려 함은 과연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며 기독교가 독립운동의 정신적 원천임을 통쾌하게 설명했다."
"이번에 윤치호씨 등 223명의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미국 태네시주의 남감리교 선교회에서 서울에 파송한 선교회 총무 핀슨씨가 재판석에 참석하여 감옥에 감힌 이들을 일일이 만나 보고 작년 9월 29일에 보고한 글에서 말하길 수개월을 고초와 형벌을 받는 사람들이 조금도 낙심하거나 겁에 질린 표정이 없었으며 정직한 모습과 엄격한 기개로 법관들을 대하니 미국에서도 이와같은 처지에서 이토록 굳센 모습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미국에서도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 사람들은 모두가 무뢰한이나 난류배가 아니라 태반이 장로교회의 교리와 문답으로 무수히 단련된 교인들이니 이 사람들의 겉모습을 볼지라도 큰 뜻을 품고 위태로운 일에 처했을 때도 용맹스럽게 나갈지언정 어리석은 생각으로 범죄에 빠질 자는 결코 없었던 것이다."
"그 여학생들의 마음이 이렇듯 새로운 사상으로 개명했으니 제사를 지내고 우상에게 절하는 것을 어리석은 일로 여길 뿐 아니라 곧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줄로 알아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일제히 고개를 들고 있었던 것이다. 교사들은 '이것은 그 그림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경례하는 것에 불과하니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 고 설명도 하고 타일러 보니, 어떤 학생들은 그 말에 수긍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말하길 '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할수 없으니 차라리 공부를 그만 두겠다' 고 하며 자퇴했으니, 이런 일들이 전국 각지에서 허다하게 일어났다."
위와 같은 결단을 했던 한국교회 성도들은 일제의 고문을 견뎌냈어야 했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지닌 '예수의 흔적'의 극히 일부이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이 흔적들을 조금 과장하면 사도 바울이 지닌 '예수의 흔적'에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누가 이런 '예수의 흔적'을 지닌 한국교회의 신앙을 이어가겠는가? 우리 모두가 한국 교회의 일원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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