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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바울서신

푯대를 향하여

Gospel Barista 2023. 6. 1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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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자신의 삶의 태도와 모습을 빌립보 교회에게 상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삶의 모습을 통해 권면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제시하는 자신의 삶의 태도와 모습은 어떤 것일까?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립보서 3 : 13~14]


푯대


이 말씀만 보면 과거의 모습은 다 잊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보이는 푯대를 잡으려고 달려가고 있는 바울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그렇다면 과거의 우리의 삶은 다 잊어야 하는 것인가?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에 소금기둥이 된 것과 같이, 과거를 기억하고 있으면 바울과 우리도 소금기둥이 되어버릴 것 같은가? 물론 과거의 부정적인 상황만 기억하며 우울증에 빠지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과거의 삶이 부정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Only let us live up to
what we have already attained.
[빌립보서 3 : 16]


이 말씀의 영어 구절을 살펴보자. 'Live up to ~'는 '~에 부응하다, ~에 부끄럽지 않게 살다'라는 뜻이다. 즉, 이 말씀은 우리가 지금까지 이룬 것에 부응하며 부끄럽지 않게 살자는 것이다. 이는 과거의 삶은 무조건 잊으라는 뉘앙스가 아니라, 오히려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한결같은 현재의 삶을 살아내라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과거의 삶의 모습에 대한 존중의 의미도 느껴진다.

그렇다면 위의 빌립보서 3장 13절 말씀에서 과거의 것은 잊으라고 한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립보서 3 : 7~8]


자신에게 유익하던 육체의 자랑거리들을 배설물로 여기라는 것이다.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의 베냐민 지파에, 바리새인인 자신의 육체의 자랑들을 잊고,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사도 바울이 권면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것이다.

목표(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자!!


죄의 헬라어는 '하마르티아'로 '과녁에서 벗어나다'라는 뜻이다. 간혹 어디까지가 과녁의 경계인가를 살피며 어떤 생각과 행위들이 죄가 아닌 범위 내에서 허용되는 지를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 바울은 이런 고민을 하지 말고, 과녁의 정 가운데에 있는 푯대를 향해 달려가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삶의 '방향성'에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나침반'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나침반'은 정해진 방향만 가리키는 도구이다. 이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막이 눈앞에 펼쳐지기도 하고, 낭떠러지와 같은 곳을 만나기도 한다. 심지어 적군이 심어놓은 지뢰밭을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으로 위축되지 말자. 지뢰는 원래 밟을 만한 곳에 묻는다. 살면서 지뢰밭을 만났다면 잘 가고 있다는 증거로 삼자.

인생에서의 지뢰...


그렇다면 사막과 낭떠러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 대한민국 법무부장관의 말을 빌려보자면, 이런 곳을 뚫고 전진하는 것을 '실력'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즉, 나침반을 따라 전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전진할 수 있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푯대를 향하여 전력질주를 하고 싶은가? 영적인 실력과 더불어 각자가 속한 영역에서 세상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실력을 쌓자. 이것이 푯대를 향하여 전력질주 할 수 있는 비법이다.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는 실력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푯대를 잘못 설정했다면? 즉, 푯대를 엉뚱한 곳에 설정하고, 그 푯대를 향해 전력질주를 하기 위해 엉뚱한 실력을 쌓고 있다면?

"검사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상식에 맞게 사건을 정리해야 한다. 상식에 어긋나도록 사건을 정리하고, "당신이 법을 몰라서 그래!!"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검사의 모습이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 법무부장관이 신임 검사들에게 당부한 이야기이다. 검사는 법을 이용해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상식에 맞게 사건을 정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푯대를 엉뚱한 곳에 세워놓고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성경을 인용하며 "당신이 성경을 몰라서 그래!!"라고 우기고 있지는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패한 검사와 다를 바 없다.

"당신이 성경을 몰라서 그래!!!"


혹시 '부패해도 좋으니 검사가 되고 싶다'라고 잠깐이라도 생각했는가? 아니면 '나는 어차피 사법고시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인데 무슨 검사랑 비교하냐'라고 생각했는가?

그렇다면 질문 하나를 던져보겠다. 북한에서 검사로 살아가는 것과 미국의 시민권을 갖고 미국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중 어느 것을 택하고 싶은가? 착각하지 마라. 우리는 이 땅의 검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립보서 3 : 20]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답게 푯대를 제대로 꽂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푯대는 어디에 꽂아야 할까?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립보서 3 : 14]


우리의 푯대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에 꽂혀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푯대를 향해 전력질주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실력을 쌓고 전진해야 한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삶의 모습이자, 빌립보 교회와 더불어 우리들에게 던지는 사도 바울의 메시지인 것이다.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에 대한 시상식이 열릴 것이다. 이를 잘 준비해서 이 기쁨 넘치는 시상식의 주인공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푯대를 제대로 꽂아 놓고 이를 향해 전력질주 하자. 누구 하나 다른 방향으로 뛰거나, 뒤쳐지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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