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는 데살로니가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임박한 종말 사상으로 신앙의 혼란을 겪고 있는 성도들을 위해 바른 재림관과 종말관을 가르칠 목적으로 기록된 교리서이다. 이런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의 특징 중 한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말씀이 눈에 띈다.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Make it your ambition to lead a quiet life,
to mind your own business and
to work with your hands, just as we told you,
[데살로니가전서 4 : 11]
이 말씀의 영어 성경을 직역하면 이렇다.
우리가 너희에게 이야기한 것과 같이,
조용한 삶을 이끄는 야망,
너의 일을 신경 쓰는 야망
(남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것에 대한 의지),
너의 손으로 직접 일하는 야망을 가져라!
"to mind your own business"를 "너의 일을 신경 쓰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영어 속담으로 "남의 사생활을 존중하라"라는 의미도 있기에 두 가지 뜻을 다 반영했다. 이 내용을 보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가지 않고, 자신의 일에 대한 인식이 없거나 남의 사생활을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일을 하는 이들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잘못된 종말론에 사로잡힌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의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 이 모습은 굉장히 익숙한 모습이지 않은가?
그렇다. 현재 대한민국 청년들의 모습과 유사하다. (대한민국의 모든 청년이 다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스스로 이끌어가지 않는다. 자신의 일에 대한 인식도 없고, 개인주의를 표방하면서 남의 사생활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 일을 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잠시 일자리를 구했다가 백만 가지의 힘든 이유를 찾아내어 사직서를 던진다. 그리고 실업급여를 받고, 취업 준비를 위한 각종 보조금 등으로 한 달에 200~300백만 원씩 정부로부터 돈을 받아가며 그 생활에 자연스럽게 젖어든다. 이런 생활 가운데 자신의 삶을 건설적으로 계획하고, 그 계획에 따라 차근차근 자신의 실력을 쌓아나기는 청년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이 많기에 실업률은 높으나, 실제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회사들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이 땅 대한민국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었다면 굉장히 잘 적응했을 것 같지 않은가? 반대로 현재 대한민국 청년들이 데살로니가교회에 다니고 있었다면, 당시의 문화를 주도하는 핵인싸들이 됐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두 부류에도 큰 차이점이 있다.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곧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 같으니 이 땅에서의 삶에 대한 의미부여를 상실했다. 이와 동일한 행동을 하는 대한민국 청년들도 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보고 준비하고 있던 것일까?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대한민국 청년들은 예수님의 재림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 그저 정부에서 공짜로 주는 듯한 돈의 맛에 중독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정부 의존적인 삶의 형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과 대한민국 청년들의 큰 차이점은 바로 '동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조용한 삶을 이끄는 야망, 자신의 일을 신경 쓰고 남을 존중하는 야망,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일하는 야망을 가지라고 했을까? 이는 바로 다음 구절에 명확하게 설명이 되어 있다.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so that your daily life
may win the respect of outsiders and
so that you will not be dependent on anybody.
[데살로니가전서 4 : 12]
이 말씀의 영어 성경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래서 너의 하루하루의 삶은
외인에게 존경을 받고,
네가 다른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적으로 되지 않아야 한다.
공교롭게 바울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적인 삶을 살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의 삶에 거룩한 야망을 가지라고 선포하고 있다. 대한민국 청년들은 정확하게 이 말씀에 반대방향으로 전력질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이런 대한민국의 청년들을 보고 있었다면 그 심정이 어땠을까? 아니, 현재 대한민국 청년들을 바라보고 계신 하나님의 심정은 어떨 것 같은가?
교회 내에서도 청년부끼리 정부 보조금 타먹는 방법이 SNS를 통해 공유되고 있고, 보조금을 타먹지 않는 이들은 바보취급 당하고 있다. 정부 보조금을 의지하지 않고 성실하게 공부하며 실력을 쌓는 청년은 그저 세상의 파도에 올라타지 못하는 실력 없는 서퍼로 낙인이 찍혀 하루아침에 바보가 되어있는 실정이다. 그 파도가 자신을 지옥으로 이끌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독립운동을 할 당시에 하와이에서 숯 사업을 벌였다. 그 목적은 하와이 한인 동포들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서였다. 물론 사업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먼 미국 땅에서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적인 삶을 살지 않게 하기 위한 사업이었다. 다시 말해 데살로니가전서 4장 11~12절의 말씀을 붙들고 발버둥을 치며 이를 실천하기 위한 간절함으로 벌인 사업이었던 것이다.
성경은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의존적인 삶을 추구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을 지향한다. 이 진리의 말씀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행복한 미소를 띠며 공짜 같은 정부의 각종 지원금을 탐내고 그 돈을 어디에 사용할지를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야말로 한국 교회의 현주소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공짜와 같은 지원금 남발 등으로 인해 이전정부에서 400조가 넘는 국가부채를 쌓아 올렸다. 결국 이 부채는 부메랑이 되어 국민들이 그대로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것이 성경적인 관점이다. 군것질을 먹는 행복감에 빠진 사람들은 충치 등의 부작용을 감당해야 한다. 반대로 군것질의 유혹을 참아내고 끼니마다 밥을 먹은 사람들은 유혹을 이긴 성취감과 건강 유지 등 부작용이 없는 행복감에 심취하게 된다. 이 마지막 때에 세상은 계속해서 우리 눈앞에 달콤한 사탕을 뿌려놓을 것이다. 누군가는 친절하게 사탕의 껍질을 벗겨서 우리가 입만 벌리면 바로 사탕을 먹을 수 있도록 유혹을 하기도 할 것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 우리는 어떤 행복감에 심취하고 싶은가?
잘못된 종말론에 의한 잘못된 행동은 종말론을 바로잡아줌으로써 개선이 가능하다. 하지만 부작용이 큰 잘못된 물질에 중독이 된 행동은 뼈를 깎는 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며 우리가 누군가에게 의존적이 된 영역이 없는지를 점검하고, 그런 것이 있다면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서라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으로 돌아가자. 성경대로의 삶을 휴거 되는 그 순간까지 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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