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녀를 키우면서 자녀의 성장상태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주기적으로 자녀의 신장, 체중, 머리둘레 등을 측정하며 자녀가 또래 나이대의 성장률 대비 어느 수준인지를 점검한다. 평균보다도 높으면 뿌듯한 안도감이 부모를 따뜻하게 감싸고, 평균보다도 낮으면 자녀를 잘못 키우고 있는 듯한 죄책감이 부모의 두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이렇게 사람들은 신체의 성장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그렇다면 영적인 성장에는 관심이라도 있을까?
신체의 성장과 관련해서는 이미 수많은 통계자료를 통해서 자녀의 성장률을 비교할 수 있도록 기준표가 구비되어 있다. 그렇다면 영적인 성장률은 기준표가 없을까? 공교롭게도 히브리서에 영적 성장 기준표가 정확하게 명기되어 있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Anyone who lives on milk,
being still an infant, is not acquainted
with the teaching about righteousness.
But solid food is for the mature,
who by constant use have trained themselves
to distinguish good from evil.
[히브리서 5 : 13~14]
우선, 영적 젖먹이들은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이다. 여기서 '의'는 'righteousness'로 '공의'이다. 아모스 선지자의 '공의'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면, '공의'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정의(Justice)'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But let justice roll on like a river,
righteousness like a never-failing stream!
[아모스 5 : 24]
한글 성경 기준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정의', 다른 말로 '법'대로 실천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영적 젖먹이들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경험은 지식적으로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다. 몸소 삶 가운데 겪는 것이 경험인 것이다. 즉, 성경말씀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공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은 영적 젖먹이에 머물러 있는 상태인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 토마토와 같은 슈퍼푸드를 비싼 값을 치르면서 먹는다. 젖먹이 아이들에게 있어서 모유는 슈퍼푸드를 넘어선 완전한 식품이다. 영적 젖먹이들에게 있어서 '의의 말씀'은 완벽한 식품인 것이다. 이를 섭취하고 소화시켜서 우리 삶 가운데 녹여내며 '의의 말씀'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낼 때 신앙이 성장하고 젖을 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의의 말씀'의 값어치를 얼마 정도로 생각할까? 슈퍼푸드 토마토 정도로는 생각을 할까? '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해지기까지 수많은 피의 값이 치러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토마토 보다도 못한 말씀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값진 말씀을 삶에 녹여내며 몸소 경험하는 삶을 통해 영적으로 성장하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를 거창하게만 생각하지 말자. 아픈 곳에 손 얹고 기도하는 것, 우리의 창조된 목적대로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는 것, 어두운 곳을 밝히 비추는 빛과 같이 어둠 속에서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해 말 한번 더 걸어주는 것, 하나님께서 허락하여 주신 24시간의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 등이 모두 실질적으로 우리의 삶 가운데 '의의 말씀'을 경험하는 것들이다. 물론, 이는 이런 삶의 중심에 '의의 말씀'이 자리 잡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영어 성경 기준으로 보면 '경험'이 아닌 '공의에 대한 가르침을 익히지 않은 자'가 '영적 젖먹이'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정의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공의이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을 때의 공의와 하나님을 화나시게 했을 때의 공의, 즉, 심판에 대해 모두 배우고 익혀야 한다. 하지만 은혜와 사랑에만 초점을 맞추고 심판에 대한 공의에는 소홀했다면, 반쪽짜리 가르침만 익힌 것이다. 은혜와 사랑만 오랜 기간 선포한 교회가 있다면, 공의의 반쪽만 익힌 것이므로 선포한 기간과는 상관없이 영적 젖먹이에 머물러 있을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교회에서 교역자들은 올바른 공의의 말씀을 치우침 없이 선포를 하고, 성도들은 이를 실질적으로 삶에 녹여내며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는 영적 걸음마의 첫걸음을 내딛는 기쁨을 맛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렇게 영적 젖을 떼었다면, 단단한 음식까지도 소화시킬 정도로 성장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장성한 자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다. 여기서 '선악을 분별'한다고 하니, '모두 선악과를 먹은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라고 이단적인 궁금증을 가질 수도 있겠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And the LORD God made all kinds of trees
grow out of the ground
--trees that were pleasing to the eye
and good for food.
In the middle of the garden were the tree
of life an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창세기 2 : 9]
히브리서는 '선을 악으로부터 분별하는 것(distinguish good from evil)'을 의미하고, 창세기의 선악과는 '선악을 아는 것(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을 의미한다. 이 미묘한 차이를 간과하면 이단이 될 수 있다.
우선 선악과의 개념을 오해하지 말자. 선악과를 먹으면 눈에서 빛이 나오면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경험을 하면서 '선'과 '악'의 모든 것을 알게 되어 마치 하나님과 같이 되는 열매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정확하게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날렸던 멘트이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For God knows that when you eat of it
your eyes will be opened,
and you will be like God,
knowing good and evil."
[창세기 3 : 5]
선악과는 동산에 있던 나무로 하나님께서 그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있는 것 자체가 '선(Good)'이고, 이 열매를 먹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악(Evil)'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선과 악을 알게 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5장 14절의 말씀은 이 선악과를 먹어서 선과 악을 분별하라는 것이 아니라, '악'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선'을 행하며 '악'으로부터 분별되라는 것이다. 선악과가 눈앞에 있다고 해도 따먹는 '악'을 행하지 말고 '선'을 택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악'으로부터 '선'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악'에 대해서 100% 알아야 한다고 착각하기 쉽다. "알아야 피할 거 아니야!"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지 않은가? 그래서 '악'에 대해서 연구를 하다 보면 이 세상은 '악'에 의해 끌려가는 세상으로 인식되고, 악이 만들어내는 공포에 휩싸이며 두려움 속에 삶을 살아가게 된다.
착각하지 말자. 우리는 '악'보다는 '선'을 연구하고 익혀야 하는 자들이다. '선'이 아닌 것은 그저 '악'으로 인식하고 '선'을 택하는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이런 삶을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것들이 '악'인지를 경험적으로 알게 된다. 괜히 영적 젖먹이들에게 '선'인 '의의 말씀'을 익히고 경험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세상의 역사는 '악'의 세력이 아닌 하나님께서 이끄신다. 이 역사의 파도 가운데 '악'으로부터 '선'을 분별하여 안전한 방주 속에서 거할 것인지, 아니면 이 파도 가운데 휩쓸리는 자가 될 것인지 옳은 선택을 하자.
우리 모두 단단한 음식까지도 거뜬하게 소화시킬 수 있는 영적 장성한 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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