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에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기도' 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태복음 6:5]
예수님께서 기도의 동기에 대해서 정확하게 지적하신다.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이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들은 사람들에게 잘보이는 곳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했다. 그곳이 바로 회당과 큰 거리 어귀다. 큰 거리 어귀는 지금으로 말하면 강남역의 교보사거리같은 유명하고 큰 사거리이다. 외식하는 자들은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서서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봐주기를 바라면서 기도한 것이다.
큰 사거리는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회당에서 기도한 이들은 무엇일까? 회당은 성전이고 예배를 드리는 곳이다. 이곳에서 기도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는 것인가?
잊으면 안되는 것이, 이 말씀은 기도의 '동기' 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구절이다. 회당에서 기도한다고 다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는 기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회당에서 기도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이 자신을 봐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실 상은 없다고 하신다. 이들은 이미 사람들이 쳐다봐주고 주목받음으로 자신의 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을 높여야하는 우리가, 스스로의 이름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주기도문의 2번 째 구절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조차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과연 기도만의 문제일까? 그리고 지금의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기도를 하고, 말씀을 듣고, 찬양을 하고, 헌금을 낸다. 목사님들은 설교를 하고, 성도들을 심방하고, 상담도 해준다. 이 모든것들의 '동기' 가 무엇인지 점검해야한다. "내가 남에게 잘보이고 싶어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이 나를 신실하게 봐주지 않을까?", "사람들이 나를 멋있게, 또는 예쁘게 봐줄까?" 이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섞여있다면, 뿌리째 뽑아버리자. 하나님께 상받기를 기대하며, 남의 시선에 내 마음을 두지말자. 하나님의 상은 이땅의 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소탐대실하는 미련한 자가 되지 말자.
그렇다면 기도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누구에게 보이려고 해야하는 것인가? 다시말하면, 누구에게 기도해야하는 것인가?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But when you pray, go into your room,
close the door and pray to your Father,
who is unseen.
Then your Father,
who sees what is done in secret,
will reward you.
[마태복음 6:6]
아주 유명한 말씀이다. 기도할 때에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라고 하신다. 한글 성경에는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 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성경은 '보이지 않으시는 아버지' 라고 되어있다. 그리고, 한글성경에는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 라고 되어 있으나, 영어성경에는 '비밀리에 행해진 것들까지 보시는 아버지' 라고 되어있다. 즉, 기도할 때에는 골방에 문닫으므로, 주변 사람들 및 세상과 단절을 시키고, 나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비밀리에 행한것 까지 보시는 하나님께서 상을 베푸신다는 것이다. 이런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하나님이 계심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이 하나님이 나의 신음소리까지도 집중하고 계시고 반드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작은 골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이 없이는 이런 기도는 불가능하다. 이런 믿음은 하나님을 모르고는 갖을 수 없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여호와를 알아가며,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나의 모든것을 지켜봐주시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하자.
이 말씀은 소리내어 기도하기 싫어하는 이들을 아주 강력하게 합리화 시켜주는 말씀이기도 하다. 한글 성경에 '은밀한 중에' 라는 구절이 2번이나 나오기 때문에, 말씀을 대충 보면 "골방에 문닫고 들어가 은밀하게 기도하라는 것이군!"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씀을 자세히 보자. '은밀한 중에' 는 하나님을 설명하는 단어이지, 은밀하고 조용하게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영어 성경을 보면 더욱 더 명확하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비밀리에 하는 것까지 보시는 하나님께 골방에서 문닫고 기도하라" 라는 것이다. 즉, 기도의 대상을 명확히 해주는 말씀이지, 조용히 묵상기도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물론, 조용히 묵상기도를 해야하는 상황도 있다. 하지만, 이 말씀이 "무조건 기도는 은밀하게 하는 거야!" 라는 잘못된 생각과 행위를 정당화해주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기도의 내용과 기도의 모습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6 : 7~8]
이방인의 기도는 우상숭배하는 자들의 기도이다. 이런 이방인의 기도와 같이 기도할 때 '중언부언' 하지 말라고 하신다. 우선, 이방인들은 그들의 신이 이렇게 중언부언 말을 많이해야 기도에 응답해준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왜 이렇게 생각할까? 그들의 기도를 듣는 자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기도를 듣고 응답해줄 수 있는 대상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그럴 능력도 없는 자신들이 만든 대상에게 기도하고 있으니, 기도가 응답받을 리가 없다. 자신이 빌었음에도 불구하고 응답이 없으니, 초조해지고 뭔가라도 해야하니, 중언부언 계속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것저것 계속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마귀가 이런 기도에 응답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마귀의 응답을 기대하며 계속해서 중언부언 이런저런 말을 많이 하는 것이 그들의 기도가 된 것이다. 이런 기도를 본받지 말라는 것이 예수님께서 명령하시는 바 이다.
그러면 우리가 믿고 기도해야하는 대상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우리가 기도로 구하기 이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을 정확하게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이방인들의 기도의 대상과는 비교도 안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 즉, 우리가 필요한 것을 이미 아시는 하나님께는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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