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6:10]
그 다음으로 우리가 기도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한다는 것은 어떤것일까? 그것은 바로 뒤에 이어서 나오는 내용으로,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이 땅의 모든 분야가 하나님의 뜻대로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또 하나의 특징이 로마서에 명기되어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로마서 14:17]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는 먹고 마시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고, 성령 안에서의 '공의' 와 '평강' 과 '희락' 에 초점을 맞추는 나라이다. "어떻게 하면 내가 돈을 잘 벌지?", "무엇을 해야 내가 편하게 살아가지?" 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방향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행동일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평강이 유지될 수 있을까?", "나의 욕구와 쾌락이 아닌, 주 안에서 참된 기쁨이 무엇일까?" 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의인 10명만 있으면 심판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다. 이 말씀은 "의인 10명만 있으면 그대로 죄 짓고 살아도 되!" 라는 의미가 아니다. "의인 10명이 있으면 소돔과 고모라는 변화될 수 있다!" 는 말씀이다. 내가 먼저 하나님 나라에 삶의 초점을 맞추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입은자로써 하루하루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기도하라는 것이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내 안에 성령이 임하여 성령충만함으로 성령님의 다스림에 순종해야 한다. 이런자들이 10명만 있으면 나라가 뒤집힌다. 세상의 어둠이 이 땅을 덮었다고 해도, 죄가 이 세상을 뒤덮었다고 해도, 내가 보기에 이 땅이 죄악으로 물들어 회복이 불가능해 보인다 할지라도,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해야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 이다.
더 나아가 궁극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다시 오실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시는 나라이다. '마라나타' 를 선포하고 기도하며 순결하고 거룩한 신부의 모습으로 다시 오실 우리의 신랑되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자.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Give us today our daily bread.
[마태복음 6:11]
이어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바로 '일용할 양식(Daily Bread)' 을 구하는 기도이다. 양식문제는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다음에 먹을 것들을 주신것 같이, 양식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세기 1 : 29~30]
즉, 우리가 먹을 양식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알고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면서 "교회와서 기도하고, 봉사해! 먹고사는 문제는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시니깐 걱정하지 말고!" 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맞는 말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 분명히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신다. 어차피 양식은 하나님께서 주시는데 굳이 왜 기도를 하게하시는 것일까? 그 이유는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불평불만이 터져나왔다.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출애굽기 16 : 2~3]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먹을것이 없어지자,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히 애굽에서 비참한 노예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고기와 떡을 배불리 먹었다고 우긴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이 광야에서 굶어죽게 하려고 자신들을 출애굽 시켰다고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대한 하나님의 대응책이 바로 만나와 메추라기인 것이다.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보내서 고기를 먹게하시고, 아침에는 만나를 내려주셔서 떡을 먹게 하신 것이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출애굽기 16:4]
다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고프다고 하니 아무 조건없이 만나를 내려주신 것이 아니다. 이를 주신 목적은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인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배고파서 하나님을 못섬기겠다고 하는 이들이 일용할 양식을 주면 제대로 하나님을 섬기는지 보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시려고 하는 율법은 바로 출애굽기 16장에 이어서 나오는 '안식일' 이다.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그의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그러므로 백성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니라
[출애굽기 16 : 29~30]
결국, 안식일은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서 먹고자고 쉬는 날이 아니라, 6일 째 되는 날에 미리 만나를 가져와 보관함으로 안식일에는 별도로 만나를 줍는 일을 안해도 되는 것이다. 즉, 안식일에도 먹을 양식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는 것이다. (물론, 평일에도 하나님께서 다 주시는 양식인 만나로 살아간다) 그렇다면 그것을 받아먹는 우리는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만나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만나는 조금 특별한 음식이다. 평일에는 하루 먹을 양만 가져와야했다. 즉, 일용할 양식만 가져와야 했다. 만약에, 평일에 이틀치를 가져오면, 하루치 먹고 남은 것들은 냄새가 나고 벌레가 생겼었다.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출애굽기 16:20]
그런데 안식일 전날에는 하나님께서 이틀치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안식일에는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전날에 미리 안식일날 먹을 양을 고려해서 가져와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참된 안식을 하게 하기 위해서, 만나를 주워오는 수고까지도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주신 것이다.
안식일에 이런 만나를 먹으면서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일용할 양식을 공곱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단순히 안식하고 쉬는 것이 아니라, 매주 안식일에 하나님께 "나를 입히시고 먹이시는 분은 하나님 입니다" 라는 것을 고백해야한다는 것이다. 먹을 것이 없다고 광야에서 난리치던 자들이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만나와 메추라기가 자신들이 있는 곳을 뒤덮는 것을 매일매일 경험하게 되었다. 이런자들이 해야하는 것은 일용한 양식을 공급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오늘 뿐만 아니라 내일도 일용할 양식을 주실 것을 믿음으로 구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안식일에 대한 율법이며,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는지를 시험하시려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일용할 양식으로써 공급해주셨던 것이다.
즉, 우리도 예수그리스도를 쫓는 자라면, 일용할 양식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믿음으로 구하며, 우리를 이끄시고 입히시고 먹이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해야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으로 시험하시는 것에 대한 우리가 갖춰야 할 모습이며,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양식은 정확히 어떤것일까? 아직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나?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8:3]
우리는 영적인 존재이다. 단순히 육체를 살게하기위한 음식만 먹는다고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닌,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자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일용할 양식은 하루하루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주시는 은혜인 것이다.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존재들이며, 은혜입은 자 답게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은혜입은 자 답게 사는 것은 어떤 삶일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My food," said Jesus,
"is to do the will of him who sent me
and to finish his work.
[요한복음 4:34]
이는 예수님께서 깔끔하게 정리해주셨다. 예수님의 양식은 바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 이라는 것이다. 적당히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이루는 것(to finish his work)' 이다. 끝까지 완성한다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양식을 위해서 습관처럼 기도하셨기에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 라고 고백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삶, 이것이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은혜입은 자의 삶이다.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 구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를 입히시고 먹이시고 이끄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하며, 오직 그분께 순종함으로 죽는 그 순간까지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삶을 살아내기를 기도로 간구하며, 그 기도대로 살아내는 것이다.
가끔씩, "나라의 상황과 정치관련된 기도는 안해도 되! 너 자신이나 돌아보면서 믿음생활 똑바로 해!" 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기도문의 순서를 보면,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한 후에 이어서 우리의 일용한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하라고 하신다. 제대로 된 나라가 있어야, 일용할 양식을 구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는 엉망진창이 됐는데, 나 혼자 일용할 양식을 은혜가운데 먹을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를 위해 기도함 없이 개인적인 일용할 양식만 구한다면, 주기도문에서 내가 보기에 좋고, 덜 귀찮고, 내가 편한 기도만 하겠다는 것과 같다. 예수님이 명령하신 기도 중 한글자도 빠뜨리지 말고 다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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