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제목을 보는 순간, '마지막 때'에 대한 인식이 있는 기독교인이라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짐승의 표, 666'이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요한계시록 13 : 16~18]

이 말씀으로 인해 다양한 짐승의 표 후보군이 등장했다. 오른손에 박는 베리칩, 뇌에 칩을 심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꼭 이 대표적인 2가지 예가 아니더라도 세상에서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이것이 짐승의 표인지 아닌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이지곤 한다. COVID-19 백신에 대해서도 누군가는 팔뚝도 '손'으로 바라봐야 하므로 오른손에 백신을 맞는 것은 짐승의 표라고 주장을 하기도 했다. 실제 백신패스가 없으면 마트 출입이 불가능한 기간도 있었기에 '매매가 불가능한 조건'으로 인식하여 충분히 이런 주장을 할 당위성은 있어 보인다. 하지만 COVID-19 백신이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이고, 결론적으로 이를 세어보면 666이 되는지에 대한 근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COVID-19 백신을 옹호하고 맞아도 된다고 주장할 의도는 전혀 없다. 이미 본 블로그에도 수차례 언급했듯이,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기술이며, 인체에 엄청난 부작용을 야기한다는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COVID-19 백신 접종 이후 심정지 사례, 치매환자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를 그저 기후변화에 의한 환경 탓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쨌든 짐승의 표의 정체에 대해서 주장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물론, '짐승의 표'에 대한 주제가 중요하기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황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요한계시록의 말씀 이전에 선포된 '손목'과 '이마'에 기호(Symbols)로 삼고 붙여야 하는 것에 대해서 주목해 보자.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신명기 6 : 8]
신명기 6장 8절에 보면 정확하게 손목과 미간에 기호로 삼고 붙여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그것'인데, 여기서 '그것'은 무엇일까?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명기 6 : 6~7]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선포하신 말씀인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손목과 이마에 묶어서 기호가 되게 하는 이유는 신명기 6장 7절에 명기된 대로 자녀에게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며 어떤 상황에서도 이 말씀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하기 위함이다. 심지어 집의 문설주와 바깥문(Gate)에도 이 말씀을 기록하라고 하셨다.
이를 정리해보면, 우리는 우리의 손목과 이마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호(Symbols) 삼아 붙여야 한다. 여기서 '붙이다'는 영어로 'Tie'와 'Bind'가 쓰였다. 이는 '묶는 개념'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손목과 이마에 항상 묶고 다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마에 하나님의 말씀을 종이에 적어서 묶고 다닌다고 생각해 보라. 일단 이마에 붙인 말씀을 통해 어디에서든지 확실한 존재감이 생길 것이다. 더 나아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정체성도 확실히 자리매김할 것이다. 즉, 가나안 땅에서 확실한 피아식별이 되고, 다른 사람들이 이들을 바라볼 때 이마에 적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기준으로 삼고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머리로는 주로 생각을 한다. 이마에 말씀을 묶는다는 것은 생각을 말씀으로 묶어서 말씀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가나안땅에서 치를 전쟁을 생각해 보면, 손목에 묶은 말씀은 방패로 상대방의 공격을 막고, 상대방을 칼로 공격할 때마다 자신의 눈에 보이고 인식이 될 것이다. 즉, 이 싸움과 전쟁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전쟁임을 매 순간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손목의 말씀은 전쟁과는 무관하게 자기 스스로 보고 싶을 때마다 볼 수 있다. 즉, 남들의 시선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꼭 지키고자 하는 말씀을 손목에 묶고 다니면서 이를 매번 확인하고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손은 주로 행동을 할 때 많이 사용한다. 손목에 말씀을 묶는다는 것은 모든 행동을 말씀을 기준 삼아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게 행하라는 뜻도 될 수 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테필린'이라는 것을 손목과 이마에 묶어서 매단다. 이는 성경의 일부를 새긴 양피지 조각을 넣은 가죽상자이다. 이는 이마와 손목에 각각 1개씩 총 2개를 차게 되어있기 때문에 복수형 단어인 '테필린'이라 부른다.

이 성경구절을 자신의 소견대로 '말씀을 새기는 것'으로 인식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문신할 생각은 하지 말자. 이는 명확하게 '묶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근거삼지 말자.
이 기준으로 우리네 삶을 점검해야 한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생각을 말씀으로 묶어서 말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을까? 우리는 과연 우리가 행동함에 있어서 말씀으로 우리의 손을 묶어서 말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을까? 이것은 가나안땅을 점령할 광야 2세의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리고 악한 자가 공중권세 잡은 어두운 세상 가운데 빚을 밝히 비춰야 하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말씀이기도 하다.
마지막 때, 휴거 되지 않고 666 짐승의 표를 우리의 이마와 손에 받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되는가? 이를 이겨낼 비법은, 우리의 이마와 손목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묶어서 매달아 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마지막 때에 비굴하게 악한 권세 앞에 무릎 꿇으며 이 땅에서의 생명을 구걸하는 삶을 살지 않을 것이다. 이마와 손목에 묶은 말씀은 전쟁터에서 확실한 피아식별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물론, 로마의 네로 황제나 도미티안 황제와 같이 기독교인들을 핍박한다면 두렵고 무서울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더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이마와 손목에 더 세게 묶고,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말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유일한 방법임을 명심하고, 이 마지막 때를 매 순간 승리하며 살아내는 크리스천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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