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량'이라는 단어는 교회에서 설교시간 또는 대표기도 등에서 종종 들리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일상 대화에서는 익숙하게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속량'의 뜻을 설명하라고 하면,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속량'이라는 단어는 영어로는 'Resemption', 헬라어로는 '아폴뤼트로시스', 히브리어로는 '파다'이다. 영어와 헬라어에는 '구원'의 의미가 있는데, 히브리어는 '몸값을 받고 석방하다' 또는 '풀어주다'라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이 단어는 어떻게 쓰이는 단어일까?
이 단어는 로마시대에 시장에서 많이 사용됐다고 한다. 어머니들이 장을 보는 재래시장이 아닌, 노예시장에서 사용된 단어이다. 즉, 노예에 대한 값을 치르고 노예를 사는 순간 노예는 "속량 되었다"라고 했다고 한다.
로마시대 때 노예는 어깨 등에 노예의 표시를 인두로 지졌다고 한다. 노예로 살다가 일이 너무 고돼서 못 견디고 도망가면 어떻게 될까? 일단 도망친 노예는 어깨 등에 있는 노예의 표식을 칼로 도려냈다고 한다. 하지만, 로마에는 도망친 노예를 찾아내서 잡는 기관이 있었다고 한다. 즉, 웬만한 도망친 노예는 붙잡힌다는 뜻이다.

다시 붙잡힌 노예는 어떻게 될까? 이마나 볼 등 얼굴에 '도망친 노예'라는 표식을 인두로 지졌다고 한다. 그리고 노예시장에서 팔리기 전까지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환경에서 지내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누가 도망친 이력이 있는 노예를 사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굳이 도망친 노예를 사겠다고 생각해 보라. 그것도 제값도 아닌, 정상가보다 몇백 배의 값을 주고 그 노예를 속량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라. 노예를 파는 사람 입장에서는 호구하나 붙잡았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이런 호구짓을 하면서 수차례 도망쳤던 노예를 엄청 비싼 값을 주고 속량 하신 분이 계시다. 감이 오는가?
우리는 끊임없이 죄를 지으며 살아간다. 즉, 죄의 노예가 되었다가, 회개하고 돌이켰다가도 다시 죄의 노예가 되기를 반복하는 것이 우리네 삶의 모습이다. 즉, 수차례 도망친 죄의 노예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이런 우리를 우리의 값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신 분이 계시다. 즉, 죄의 노예였던 우리를 '속량'해주신 분이 계시다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이시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고린도전서 7 : 23]
이것이 바로 '속량'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왜 '속량'해주신 것일까? 그 이유는 신명기 말씀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신명기 7 : 8]
신명기 말씀은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직전의 광야생활을 한 이스라엘 백성 2세를 향한 말씀이다. 이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속량'하신 이유를 2가지로 선포하고 계신다. 첫째는 이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둘째는 이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한국교회는 대부분 첫째 이유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웬만하면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두 번째 이유를 '언약'으로 명확하게 선포하고 계신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언약'은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과 모세에게 주셨던 언약 2가지로 바라볼 수 있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언약인데, 어떻게 이 언약이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로마서 11 : 17]
그 비결은 바로 믿음으로 인한 '접붙임'이다. 우리가 이스라엘 민족에 접붙임바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듯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맺으신 언약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언약'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는 본 블로그에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글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의 노예로부터 속량 시켜주신 이유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속량 된 자답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은 계속해서 죄의 유혹을 통해 우리를 또다시 죄의 노예로 만드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이런 죄의 유혹에 넘어가서 또다시 죄의 노예가 되는 이가 없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라는 값을 지불하고 사신바 되어, 우리는 죄의 노예로부터 속량 되었다는 것은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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