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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사복음서

주여 원하시면

Gospel Barista 2021. 6. 22.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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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마치시고 산에서 내려오시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한다. 산상수훈은 구약에서의 십계명과 같은 말씀이다. 우리 삶의 방향을 이끌어주는 나침반과 같은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 말씀 직후에 이어지는 이 사건, 그리고 마태복음 8장의 말씀들은, 이 나침반을 웅켜쥐는 우리들이 어떤 마음가짐과 어떤 믿음을 갖고 나아가야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마태복음 8 : 2~3]


마태복음 8장 2~3절 말씀에는 나병을 치료받은 자의 모습이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자들을 치료해주신 치료자이시다. 이 사람은 수많은 치료함을 받은 자들 중 한 사람이지만, 굳이 이 산상수훈 직후에 이 사건을 배치가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중요한 이유를 살펴보자.

우선, 나병은 단순히 코감기 수준의 병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구렁텅이로 빠뜨릴 수 있는 병이다. 주변사람들은 이들을 저주받은 자들로 인식하고, 이들과의 접촉도 하지 못하도록 율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저주받은채로 살아가던 이 한 사람이 예수님 앞에 무릎꿇고 나아왔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부분은 이 나병환자의 고백이다. 내가 이 사람이었다면, "저 이 병 치료해주세요! 낫고싶어요!" 라고 예수님 앞에서 외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나병환자는 치료자 되시며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의 상황과 심정을 내세우지 않았다. 이 자의 고백은 "주여 원하시면..." 으로 시작된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Lord, if you are willing, you can make me clean."

이 나병환자에게 있어서 최우선은 '주님의 뜻' 이었다. 율법으로도 저주받은 자의 삶을 살아가고있는 자의 고백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해주시는 예수님이 온다고 하는데, 당연히 자신의 '치료' 가 목적이 되지 않겠는가? 이 가운데 '주여 원하시면...' 이라는 고백이 쉬워보이는가? 예수님이 만약에 원하지 않으시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병환자의 고백은 '주여 원하시면...' 으로 시작했다.

자. 생각해보자. 예수님이 이 나병환자의 치료를 원하셨을까? 바로 앞 산상수훈에서의 오버랩이 되는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 : 31~33]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계시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 이 말씀에 입각해서 이 상황을 바라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나병환자에게 필요하신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계신 것이다. 이 나병환자는 이 말씀의 원리대로 정확하게 예수님께 고백한 것이다. 그러기에 이 나병환자의 고백이 "주여 원하시면" 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께 다양한 기도를 한다. 이 기도 가운데 우리가 필요한 부분을 구하는 기도는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이보다도 '먼저' 구해야하는 기도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먼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기도!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명확하게 알고 계신다!

더 나아가 이 자의 고백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나병보다도 크시고, 이 병을 가볍게 치유하실 수 있음을 믿음으로 선포하고 있다. 나병이 얼마나 진행이 되었고, 이 나병환자의 병력이 어떠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예수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이 나병은 물론이거니와 더 나아가 자신을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선포하고 있다.

이 믿음의 선포를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이 나병환자에게 손을 얹으셨다. 이는 율법에 위배되는 행위이다. 예수님께서는 율법보다도 위에계심을 나타내신 것이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무법자로 살아가신것은 아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하시며 준법정신을 정확하게 가르치셨다.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마태복음 22 : 21]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만진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율법의 기초는 십계명에서 시작되었다. 즉,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을 강조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발전된 것이다. 이를 예수님께서는 '목숨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과 '내 몸과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 2가지로 압축시키셨다. 이 관점에서는 이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고 치료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하나님께서 정하신 정의대로 행하시는 공의의 모습인 것이다.

마태복음 8장에서의 예수님의 모습을 잠시 살펴보자.


- 나병을 치료하심
- 율법보다도 더 크심(나병에 손을 얹음)
- 백부장의 하인을 말씀으로 치료하심
-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심
- 귀신을 내쫓으심
- 바람과 바다도 잠잠하게 하심


예수님은 병, 율법, 귀신, 자연들 마저도 순종하는 대상이다. 즉, 이 모든 것들이 순종할 수 밖에 없는 진정한 왕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이 왕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삶 이라는 지도에서 나아가야하는 방향을 명확하게 이끌어줄 산상수훈이라는 나침반을 쥐어주신 것이다. 이정도면 이 나침반의 방향을 신뢰할 만하지 않겠는가? 이 나침반이 향하는 곳으로 전력질주 하자. 그 길의 끝에서 두팔벌려 우리를 맞이해주실 주님을 기대하며.

우리 삶의 나침반 되는 말씀. 산상수훈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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