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You hypocrite,
first take the plank out of your own eye,
and then you will see clearly
to remove the speck from your brother's eye.
[마태복음 7 : 5]
들보를 우리 눈에서 빼내는 치료를 받았다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내어야 한다. 나 혼자 깨끗해지고, 거룩해진다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형제의 눈에 들어간 작은 먼지를 뗀 다고 가정해보자.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옆에서 바람을 불어주거나, 휴지를 건네는 정도가 전부이다. 당사자가 손을 씻은 후 손으로 먼지를 떼어내든지, 안약으로 씻어내든지, 병원을 가야한다. 형제의 눈에 있는 먼지를 내 손으로 직접 떼어낼 수는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형제의 눈의 티도 본인 스스로 주의 이름을 경외함으로 나아갈 때에 주님께서 치료해주신다. 즉, 형제의 눈 속의 티를 제거하는 방법은, 함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비판하며 잘못을 지적하고 후벼파는 것이 아니라, 함께 여호와를 경외하기 위하여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눈에 있는 티를 빼 내야하는 대상에 대해서 살펴보자. 예수님께서는 '형제' 의 눈에서 티를 빼내라고 하신다. 예수님께서 어떤자들을 형제로 인식하실까?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2:50]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형제라는 것이다. 산상수훈의 대상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인 것을 감안하면, 이 말씀은 결국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 뜻대로 행하는 자들끼리 어떻게 잘못된 점들을 바로잡으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야하는지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형제' 가 아닌 이들에게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바로 레위기 19장 17절 말씀에 정확히 나와있다.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 'Do not hate your brother in your heart.
Rebuke your neighbor frankly
so you will not share in his guilt.
[레위기 19:17]
한국어 성경에는 하나의 문장으로 되어있지만, 영어성경은 2개의 문장이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마라.' 와 '네 이웃을 견책해라. 그러면 그의 죄를 너가 같이 담당하지 않을 것이다.' 이다. '형제' 는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고, 그 눈에서 티를 빼줘야 한다. 즉, 함께 하나님 앞에 경외함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형제가 아니 '이웃' 을 향해서는 반드시 '견책' 하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는 말씀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견책' 과 '사랑'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내 몸과 같이 내 이웃을 사랑' 해야한다. 우선, 이 말씀에서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 을 생각해보면, 단순한 '자기애' 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죄' 와 '구원' 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차있다. 즉, 여기서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 을 내가 구원받고 천국에 가는 관점에서 보면, 내 이웃도 함께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야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이웃이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죄' 에서 벗어나야한다. '죄' 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죄' 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알아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죄인' 이 '죄'를 알고 끊어낼 수 있도록 '견책' 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내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이다.'죄' 가운데 있는데, 그저 "하하호호" 품어주기만 하는 것은 이웃을 향한 사랑이 아니다. 이 견책의 사랑을 몸소 실천한 이가 있다.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유다서 1 : 14~15]
에녹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비방하는 이들을 향해 거침없이 예언을 쏟아냈다. 하나님께서 곧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행실과 하나님을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인해 이들을 정죄하러 오실것이라는 것이다. 에녹이 이렇게 예언하고 선포할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의 아들의 이름인 '므두셀라' 이다. 하나님께서 이 아들의 이름을 통해 '이 아이가 죽으면 심판하겠다' 라는 말씀을 주신 것이다. 이 말씀을 들은 이후의 이 땅에서의 에녹의 삶을 자세히 다룬 성경말씀은 위의 유다서 1장이 전부이다. 즉, 에녹은 이 말씀 이후 "하나님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심판하러 오신다! 하나님께로 돌아와라!" 라고 견책하고 다닌 것이다. 이런 에녹을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동행했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을 있는 그대로 선포하는 것이며, 이웃을 견책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삶이다.
에녹 입장에서는 아담의 칠대손 이므로, 노아와 아브라함보다도 훨씬 이전세대이다. 즉, 전설적인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이야기와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 정도를 들으면서 자랐을 것이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에녹의 아들의 이름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셨고, 에녹은 하나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을 천번, 만번 나눠주셔도, 그 뜻대로 행하지 않으면 아무소용 없다. 에녹은 하나님께서 나눠주신 마음 한 가지를 품고, 선포하고 다닌 것이다. 자신이 보기에 잘못된 것을 쑤시고 후벼파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나누는 것' 이 바로 올바른 견책인 것이다. 이런 견책을 하는 자가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 임을 잊지 말자.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세기 5 : 21~24]
또 다른 예로 퀴어축제를 살펴보자. 해마다 전국적으로, 아니, 전 세계적으로 퀴어축제가 열리고 있다. 이와 동시에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퀴어축제 반대집회가 거의 동시에 열린다. 이 반대집회를 하는 시들을 향해, 다양한 비판이 쏟아진다.
"성경에 비판하지 말라고 되어있는데,
너희가 뭔데 퀴어축제를 비판하냐!"
"이미 대세는 넘어갔다! 네 눈의 들보나 먼저 빼라!"
"자기들은 죄가 없나?
똑같은 죄인끼리 꼰대같이 굴지마라!"
퀴어축제에 참가하고 동성애를 즐기는 자들은 기본적으로 '형제' 라고 볼 수 없다. 하나님께서 '죄' 로 명확하게 지목한 것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반드시 견책해야한다. 다양한 견책의 방법이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죄' 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죄' 임을 선포해야한다. 착각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명확하게 '죄' 로 여기시는 것에 대해서 '죄' 라고 선포하는 것은 '죄인' 을 향한 비판이 아니다. 하나님 말씀인 진리의 선포인 것이다. 물론, 이 선포를 듣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비판을 넘어서 비난으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이 견책을 통해 단 한 사람이라도 생명길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기꺼이 생명의 선포를 날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이들이 하나님의 뜻 대로 행하기를 결단하고 '형제' 로써 나아온다면, "너 과거에 동성애자였지?" 라고 비판하지 말고, 함께 하나님 앞에 경외함으로 나아가 우리 눈의 들보와 티를 빼내야 하는 것이다.
즉, '반드시 견책해야 하는 것' 과 '비판하지 말아야하는 것' 은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큰 흐름안에 있는 것이다. 성경의 내용이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오묘하게 하나의 말씀으로 융합되어, 단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와 뜻을 이루어 나가는 방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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