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학교 단골 성경이야기 중 하나인 '씨뿌리는 자' 비유에 대해서 묵상해보고자 한다. 마태복음 13장, 마가복음 4장, 누가복음 8장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로 표현하신 말씀이다. 비유란, 어떤 대상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다른 비슷한 현상이나 사물에 빗대어 설명하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과연 무엇을 설명하기 위한 비유였을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마태복음 13 : 11]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마가복음 4 : 11]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누가복음 8 : 10]
그렇다면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녹아있는 천국의 비밀은 무엇일까?
우선,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살펴보자.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 가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었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져서 흙이 깊지 않아 곧 싹이 나오지만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져서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어떤 것은 백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맺었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이 비유를 듣고 이해를 못하고 예수님께 물어본다. 이에, 예수님께서 상세하게 설명해주신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3 : 19~23]
천국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을 깨닫고, 결론적으로 결실을 맺는 땅이 좋은 땅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우리의 마음 밭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의 밭의 상태가 중요하다' 는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다시 이 비유의 근본적인 목적을 살펴보자. 이 비유의 목적은 '천국 비밀' 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 밭의 상태가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를 판가름 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의 비유 중 첫 번째 비유이다. 이는 우리의 마음 밭의 상태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의 최종적인 형태는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이다. 나머지 세 땅에 뿌려진 씨앗은 결실이 없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천국문을 허락하실 때에는 우리의 밭은 상태는 기본이거니와 우리의 삶의 결실을 보신다는 것이다.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마태복음 21 : 19]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을 정리하시고 나오시면서 행하신 일이다.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잎사귀만 있고 어떤 열매의 결실도 없는 것을 보시고 저주하신다.
잊지 말자. 복음의 씨앗이 우리의 삶을 통해 결실을 맺어야 한다는 것을! 이것이 천국과 지옥을 판가름하는 첫 기준이라는 것을!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나의 마음의 밭을 개간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열매맺는 삶을 살자!
그렇다면 좋은 밭이 되면 바로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바로 이어지는 비유가 알곡과 가라지이다. 좋은 밭에는 그 원수가 가라지를 덧뿌리고 간다.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마태복음 13 : 25~26]
우리는 이 비유를 추수하는 추수꾼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하지만 이 말씀에서 우리는 알곡이 되어야 하며, 알곡 입장에서 이 말씀을 바라봐야한다.
그렇다면 이 말씀에서 알곡의 사명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알곡은 알곡으로 남아있는 것' 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알곡은 그저 좋은 땅의 영양분을 목숨다해 흡수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가라지가 이 영양분을 훔쳐가기 때문이다. 즉. 알곡이 흡수해야하는 영양분을 가라지가 흡수해버려서 알곡이 말라비틀어진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랴?
하나님께서는 가라지를 추수때까지 내버려두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신다.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시 다칠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알곡은 영양부족인 상태로 추수때까지 생명을 겨우겨우 연명하라는 것인가? 너무 잔인하지 않는가?
하나님께서는 당당하고 자신있게 가라지를 내버려두라고 선포하신다. 이는 알곡이라면 가라지따위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알곡이 목숨다해 영향분을 흡수한다면 추수때까지 무럭무럭자라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땅의 영양분을 모조리 흡수해서 오히려 가라지를 말라 비틀게 만들어버리겠어!" 라는 각오로 최고의 영양분인 하나님 말씀을 흡수하자! 이것이 알곡의 사명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시대의 성도들은 가라지가 누구인지에 집중을 많이한다. 물론, 적을 알아야 싸워 이길 수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는 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기본적인 사명인 '좋은 땅의 영양분을 흡수해서 무럭무럭 자라 열매 맺는 것' 을 소홀히 하지 말자. 가라지를 구분해내고 심판하는 것은 추수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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