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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사복음서

아무나 행할 수 없는 용기

Gospel Barista 2021. 7. 1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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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이미 제자들은 도망갔고 몇몇의 여인들만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가운데 한 사람이 빌라도에게 가서 당돌하게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하였다. 이 자는 바로 '아리마대 사람 요셉' 이다. 이 자에 대해서는 사복음서에 각각 한 절씩 표현되어 있다.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마태복음 27 : 57]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마가복음 15 : 43]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누가복음 23 : 51]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요한복음 19 : 38]


이를 정리해보면, 유대인의 동네인 아리마대에 사는 부자인데, 예수님의 제자였다. 이 자는 존경받는 산헤드린 공회의 공회원이었으나, 유대인이 두려워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숨기고 살던자였다. 하지만 이 자는 산헤드린공회에서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는 아예 당돌하게 빌라도에게 나아가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하였다. 유대인이 두려워 예수님의 제자임을 숨기던 자가 어떻게 당돌히 빌라도에게 나아갔을까? 그것은 바로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 이기 때문이다.

아리마대 요셉의 심경변화를 유심히 살펴보자. 이 자는 존경받는 산헤드린 공회의 공회원이었다. 산헤드린 공회의 공회원 자격은 순수 유대인이어야 하며, 출신과 명망, 그리고 재산에 근거해서 선정이 된다. 더 나아가 이는 평생회원이며, 의장을 포함해서 71명 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으로 말하면 국회의원보다 더높은 자리였을 것이다.

이 자는 유대인이 두려워 예수님의 제자임을 철저하게 숨기던 자였다. 이런 자가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되를 뒤집어 씌우는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않았다. 이는 모든 안건을 만장일치로 의결하는 산헤드린 공회의 특성상 목숨을 건 행위였다. 이 목숨을 건 결정으로 인해 아리마대 요셉은 자신의 공회원으로써의 지위와 존경과 권력과 부와 명예를 다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의회에서, 이에 찬성하지 않는 것은 마치, 북한의 공산당 회의에서 모두가 박수를 치며 찬성의 오른손을 들 때, 홀로 양손을 무릎위에 살포시 얹고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과 같은 것이다. 북한의 최고 통수권자가 "애미나이 동무는 오른팔이 없는기요?" 라고 물어볼법한 상황인 것이다. 이것이 쉬워 보이는가? 이는 목숨을 건 행동이다. 아니,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을 포함하여 사돈의 팔촌까지 목숨이 걸릴만한 행동이다. 일등 제자 베드로도 한 여인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냐며 추궁하자 아니라고 하며 도망쳤던 모습과 비교해보라.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하기 위해 빌라도에게 나아갔다. 이 모습을 마가는 '당돌히' 라고 묘사하였다. 예수님의 제자임을 숨기던 자가, 이제는 예수님의 시신을 당돌히 요구한 것이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벌써 죽었냐며 의아해하며 백부장에게 확인을 했다. 즉, 십자가형을 받는 사람들에 비해 예수님은 일찍 돌아가셨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것을 끝까지 보고, 돌아가신 후에 곧 바로 빌라도에게 가서 시신을 요구한 것이다. 결국 예수님을 아리마대 요셉에게 내주었고, 요셉은 니고데모와 함께 아직 아무도 장사한 적이 없는 새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하였다.

십자가에서의 예수님의 모습을 본 아리마대 요셉의 심정은 어땠을까? 유대인을 두려워하던 자가, 이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관점이 변하자, 악을 향해 '당돌히'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떤가? 우리가 속한 곳에서 예수님을 쫓는 자임을 숨기고 그들과 동화되고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이를 점검했으면 한다.

입으로는 누구나 고백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을 장사한 자는 예수님을 따르던 일등 제자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던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 였다. 목숨을 건 용기를 행한 자들의 비법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갈망' 임을 명심하자.

이 말씀 내용을 읽고 "내가 저 시대에 살았으면 내가 예수님 장사했을거야!" 라고 우길 수 있기에,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결단인지 우리나라의 사례와 비교해보고자 한다.

대한민국의 모 교단에서는 자신들의 교단을 빛낸 역사적 인물들을 자랑스럽게 리스트를 만들어 놓았다. 그 중에 유관순 열사가 들어가있다. 하지만, 유관순 열사의 시신은 어디있는지 알지도 못한다. 일제의 고문으로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던 유관순 열사. 일제가 유관순 열사의 시신을 정성스럽게 처리했겠는가? 석유상자에 담겨 이화학당장 서리인 월터에게 인도되었고, 이태원의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그 이후 시신이 훼손되어 지금은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이다. 자신의 교단을 빛낸 위인이라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교단에서도 그의 시신에는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유관순 열사가 예수님은 아니지만, 저 시대에 유관순 열사의 시신을 "제가 장사하겠습니다!" 라고 하며 일제에 그 시신을 '당돌히' 요구할 수 있는 자가 몇 이나 될 것 같은가? 대한민국의 한 교단도 이를 하지 못했다. 이것이 아직도 쉬워보이는가?

이 결단의 비법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갈망' 임을 명심하자. 하나님이 왕되시고 통치하시는 그 나라를 갈망하며, 이 땅에서 악을 두려워하지 말고 악에게는 '당돌히' 맞써 승리하며 나아가는 우리가 되자.

돌 무덤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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